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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 Sep 26. 2021

[책리뷰]-<깊이에의 강요>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 자존감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북토크 리뷰]-<깊이에의 강요>

*내 삶의 주인공이 되어 자존감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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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깊이에의 강요]          

✅작가 :  파트리크 쥐스킨트          

✅출판사 : 열린책들     

✅북토크 일시 : 2021, 9, 25, 토, pm12:30~4:30 (브런치 + 독서토론)       

✅북토크 장소 : 강남 모임처          

✅준비물 : 마스크 착용 필수, 책, 능동적이고 즐거운 마음          

✅참여자 : 책친구님 4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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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써머리]         

9월 ‘함께 읽기’ 책은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 소설집 『깊이에의 강요』였습니다.

3편의 재미있는 단편소설과 1편의 의미 있는 에세이로 구성된 작품인데요, 얇은 두께감이나 간단해 보이는 분량이 무색할 만큼 인간과 삶의 본질을 차분하게 되돌아보게 하여 묵직한 사유의 세계로 인도하는 지극히 철학적인 내용의 이 책을 여러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별점과 함께 읽은 소감을 나눠봅시다. (1점부터 5점까지 별점을 주세요.)      


✅북토크 참여자들이 준 책의 평점과 이유, 그리고 독후 소감(5점 만점)          

✔4.5

내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좀머씨 이야기’였다. 독자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는 일,  그가 겪어온 어떤 삶의 여정 속에서 입은 정신적인 상흔으로 인해 도저히 현실 생활인으로 살아갈 수 없어서, 현실의 외부세계를 매일 걸어다닐 수밖에 없었던 좀 이상한 동네 아저씨 ‘좀머씨’를 바라보며 성장해 가는 주인공 소년의 청순한 눈을 통해, 세상살이를 힘겹게 만드는 우울과 혐오를 천연덕스럽게 표현했던 작가의 맑은 영혼을 느낄 수 있어서 참 흥미로웠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번에 ‘9월 함께읽기책’으로 다시 만난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너무 반가웠고, 그의 단편 소설집 ‘깊이에의 강요’를 통해 작가에 대한 독자로서의 팬심이 더욱더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짧은 세편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를 통해 인간과 삶의 모순을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슬쩍 비껴가듯 무심히 건드려 주는 듯한 작가의 글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해 면밀히 관찰하고 깊게 사유하면서 삶의 아이러니에 대해 조용히 성토하며 소극적인 반항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읽는 나 또한 삶의 이치와 진리를 조용히 깨달아가게 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참 의미로웠다. 그런데 <승부>에서는 체스의 규칙을 잘 모르는 내가 이해하기에는 좀 지루한 디테일들이 있어서 인터넷을 검색해 가며 읽느라 다소 성가셨던 탓에 0.5점을 깎아서 4.5점을 주었다.     


✔4.5

이 책의 첫 작품 ‘깊이에의 강요’를 제일 먼저 읽었을 때 처음에는 이야기 구조가 좀 가벼운가? 싶은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는데, 두 번째 작품 ‘승부’를 읽으면서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해서 세 번째 작품 ‘장인 뮈사르의 유언’으로 넘어갔을 때에는 작가의 상상력과 이야기꾼으로서의 ‘끼’에 반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에세이를 읽고 이 책을 완독한 시점에서는 이 책의 가치를 확실하게 알아보게 되었다. 세 편의 단편소설의 읽으면서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한껏 고조되고 흥분되는 감정이 네 번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차분하게 정리가 되게끔 만들어 주는 묘한 매력이 있는 목차 구성이 참 좋게 느껴졌다.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고 난 후에 묵직한 여운이 길게 남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해준 좋은 책을 만나게 되어 참 좋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독일 문학을 우리나라 말로 옮긴 번역서이다 보니 직역이나 의역의 양쪽 적용 모두 번역자 개인의 역량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작의 감동을 완벽하게 옮겨 놓을 수는 없었을 듯한 어색한 부분들이 다소 보여서 그 점이 좀 아쉬움으로 느껴졌기에  –0.5점을 뺐다.     


4.2

책 분량이 얇아서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스토리에 담고 있는 의미가 책 분량만큼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는데 ‘승부’에서는 체스의 규칙도 잘 모르겠고 해서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들도 많아 다소 지루하게 읽었던 단편이었다. 반면 ‘장인 뮈사르의 유언’은 흥미로운 발상 속에 삶의 진실을 꿰뚫게 만드는 은유적인 내용이 잘 이해가 되었다. 솔직히 매일 짧은 인터넷 기사만 읽다가 분량의 압박이 있는 장편은 내용이 장황하게 느껴지고 이해가 좀 늦되는 면도 있어서 읽고 또다시 읽고 하며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등 좀 버겁게 느껴지는 면이 있기도 한데, 이 책은 책 두께도 얇고 소설의 길이가 짧아서 부담 없이 잘 읽었다. 단편소설이라서 분량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장편 이상의 깊이가 있는 좋은 책이었다.     


✔4.8

예전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 중 처음으로 접해 보았던 것이 ‘향수’였는데, 그때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예리하고 독창적인 시선에 충격에 가까운 자극을 받았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이번에 우리 독서토론의 책이 쥐스킨트의 책이어서 반갑기도 하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그림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각 분야를 망라하여 모든 예술가, 즉 창작을 한다는 것의 어려움과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동경하는 사람이기에 작가의 재능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장인 뮈사르의 유언’은 이야기의 발상이 신기할 만큼 신선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남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편 ‘승부’는 읽으면서 다소 지루함을 느꼈으나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잘 알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훌륭한 책이었기에 높은 평점을 주고 싶었다.          



✅본토론 내용은 너무 방대해서 정리 불가함.        



✅오늘 책과 토론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 및 마무리 발언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함께읽기 하고 책수다를 나누게 되는 일은 참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독자로서 사심과 팬심 가득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을 다룬 9월의 북토크 시간은 평소보다 더욱더 즐거웠다.


오늘은 토론시간의 제약이 없이 책모임을 진행하게 되어 여유롭기도 했고, 독서토론 장소가 바뀌니 분위기도 변화도 있어서 신선했다. 읽고 난 후 길게 사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참 괜찮은 책을 오랜만에 만난 듯해서 정말 좋았다.     


✔같은 논제에 대해서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다르며 책 안에서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늘 흥미롭고, 그래서 책토론 시간이 즐겁고 좋다. 오늘은 독서토론 장소를 바꾸어서 색다른 장소에 와서 책모임을 하게 되었는데, 장소 덕분인지는 몰라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져서 좀 더 편안한 대화가 가능했었던 것 같아 더 즐거웠다.    

 

✔나는 원래 책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주어진 현실을 열심히 살다 보니 책을 등한시 한 지가 오래되어서 내심 책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다. 그런데 의무적으로라도 다시 책을 잡고 독서에 집중하게 되는 시간을 갖는 계기를 마련해 준 이 독서토론 모임이 고맙다. 무슨 일이든 물고를 터주는 터닝포인트를 만난다는 게 중요하지만, 그게 참 어려운 일인데 책모임에 참여하기 위해서 반강제 독서라도 꾸준히 하게 된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독서토론을 통해 책친구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사람마다 생각이 참 많이 다르구나’ 하는 차이점을 느끼기도 한다. 아무리 대화를 주고받아도 자신의 고정관념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생각의 방향이 항상 변함없는 나 자신을 통해서도 자각 할  수 있었다. 누구나 그렇듯이 한 사람의 모습이 단편적일 수는 없고 여러 가지 면모를 ‘다중이’처럼 갖고 있는데,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는 것을 책수다 시간을 통해서도 재확인하게 된다. 한편, 어떤 모임이든 종교와 정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사람들마다 천차만별인 그 갭을 메꾸어 나가기가 너무 어려운 주제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민감한 주제에 있어서는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되 불필요하게 깊이 들어갈 필요 없이 살짝 피해 가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핵심 메시지 또는 한 줄 총평          

✔모처럼 마음이 벅차오르는 책을 만났다.

✔즐거운 삶이 좋고 지나치게 진지한 것은 부담스럽고 싫다.

✔사람은 겪어봐야 알 일이다.

✔내 자존감을 스스로 높여야 한다.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다.

✔선입견을 가지면 안되겠다.

✔타인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아이러니’로 가득 찬 삶을 문학의 아름다움으로 극복해 나가자.

✔‘비유와 상징’은 ‘여운과 파장’을 남긴다.

✔삶의 작은 변화라도 도모하기 위해서는 늘 읽고 쓰고 소통해야만 한다.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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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파트리크 쥐킨트’의 작품 중 ‘좀머씨 이야기’가 몇 년 전 독서토론의 함께읽기 책이었기에 재미있게 읽고 책수다를 나누었던 덕분에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개인적으로 성장소설류의 스토리를 좋아하기도 했어서 주인공인 어린 꼬마가 유년 시절에 같은 마을에 살고 있었던 ‘좀머 아저씨’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풀어내면서, 어린아이가 청년으로 자라나면서 어느새 철이 들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였는데, 이야기 전개의 평범한 일상성과 등장인물들의 순수함이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때 이런 어여쁜 작품을 쓴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에 대해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면서 독일 작가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고 ‘지극히 자발적인 은둔형 외톨이’라는 그의 특이한 특징과 독특한 작품세계에 빠져들어서 팬심이 생기게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때마침 그 시점에서 참 좋은 책친구님으로부터 책선물을 받았었는데 그 책이 바로 ‘깊이에의 강요’였고 책분량도 얇고 간단해 보이는 단편 3편과 에세이 1편이 수록되어 있었던지라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인 줄 지레짐작하며, 언제든 짬이 날 때 후딱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책꽂이 한 켠에 꽂아 두었다가 다른 책들에 밀려 잊혀진 책이 되었다.

그러다가 ‘깊이에의 강요’가 독서토론 모임의 ‘9월 함께 읽기책’으로 결정된 덕분에 이 책을 다시 찾아 진지하고 깊이 있게 일독하는 계기가 되어 참 좋았다.

[깊이에의 강요]는 4편의 짧은 단편들로 구성인데, 부담 없는 페이지수의 책 분량과 얇은 책 두께가 무색해질 만큼 내용상의 그 무게감에 있어서는 여느 두꺼운 책들과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을 만큼 생각할 부분이 상당하고 메시지가 깊은 책이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재성과 삶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여운을 남기고, 그 공감의 파장이 아주 길게 느껴지는 지극히 철학적인 작품이었다.


철학의 본고장이라 일컬어지는 독일의 작가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인 이 책에는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匠人) 뮈사르의 유언」과 에세이「문학의 건망증(... 그리고 하나의 고찰)」등 총 네 편의 각기 다른 주제의 작품이 한데 묶여져 있었지만, 사실 네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맥락은 신기하게도 상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큰 주제를 정해 놓고 네 작품을 써서 한 책 안에 엮어 낸 것인지, 아니면 이미 써 놓았던 짧은 이야기들 중에서 일맥상통하는 주제의식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들을 골라서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책 한 권에 담긴 네 작품들을 읽고 난 이후에 그 후에 남겨지는 기나긴 여운 속에서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으며 어떤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는 작품집이다.     


첫 번째로 수록된 단편소설인 「깊이에의 강요」는 한 젊은 여성 미술가를 등장시켜서 예술가와 평론가의 문제적 관계를 전개하면서 ‘삶과 예술의 아이러니’를 예리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작품에 깊이가 없다.’라고 어느 평론가가 무심하게 던진 한 마디의 말을 듣고 한 젊은 예술가는 끝없이 고민하고 고뇌하다가 결국에는 자살해 버리고 마는데, 그녀가 죽고 난 후 그 평론가는  평론의 관점을 호떡 뒤집듯이 후딱 뒤집어서 ‘그녀의 그림에는 삶의 본질을 파헤치고자 하는 끝없는 열정과 깊이에의 강요를 느낄 수 있다’며 전혀 상반된 평론을 한다. 소설의 이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 평론가 참 대책 없이 무책임하네. 평론이란 게 뭐 말장난하는 거야 뭐야.’ 하며 어이없는 실소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또한 여기서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삶의 허무’와 ‘인생의 아이러니’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이렇듯 냉소적인 주제의식을 웃기고도 슬프다 라는 뜻의 ‘웃프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슬쩍 내던지듯이 독자들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능력이 있는 작가가 바로 ‘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두 번째 수록작인 「승부」는 동네에서 범접할 자가 없을 챔피언과도 같은 체스 고수와 패기 넘치게 도전장을 내민 젊은이라는 두 명의 체스꾼을 등장시켜서 이 두 사람 간의 체스 게임판과  주변 구경꾼들의 반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되었다. 늙은 체스 고수 ‘장’은 기존 사회의 규칙과 관습을 원래 하던대로 따르고 지키며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정작 최고점을 찍은 자의 행복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게도 그 알량한 챔피언의 자리를 고수하고 지켜내기 위해 늘 속을 끓이고 조마조마해하는 괴로운 마음속에서 결국은 불행한 상태였다.

그러한 늙은 체스 고수 <장>에게 겁도 없이 도전장을 내민 한 젊은이는 인습이나 관습에 대한 개념도 없는 사람처럼 깡그리 무시하며 결과가 어찌 되든 젼혀 상관없다는 듯이 자유롭고 호기롭게 체스판에 뛰어들어 배짱도 두둑한 도전 게임을 전개하며 여태껏 듣도 보도 못한 과감한 방식으로 체스게임을 전개해 나간다.

체스판에서 한참 승부를 불사르고 있는 체스꾼 당사자인 고수 ‘장’과 도전자 ‘젊은이’ 말고도 또 한켠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바로 ‘구경꾼’들이었다. ‘장’처럼 인습과 관습, 기존 룰을 충실히 지키면서 열심히 노력하여 실력을 갈고닦은 결과로 고수가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젊은이’처럼 기존 룰을 과감하게 무시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열정적으로 게임에 달려 들어서 용기 있게 돌격하는 정열과 두둑한 배짱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찌질한 시기심과 욕망은 있어가지고, ‘누가 저 고수를 좀 꺾어서 고꾸라치게 만들어 주면 좋겠다.’ 하는 심술통 대리만족의 욕구만 가득해서 ‘어디서 온 사람인지, 얼마나 능력이 있는 것인지.’ 근본도 모르는 젊은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구경꾼’들의 모습에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인 ‘너와 나와 우리’의 부끄러운 단면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어떤 일이든 그 과정 속에서 속단하거나 선입견을 갖게 되면 그 결말을 예측하면서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하고 실수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세상 일이란 게 그 어떤 것도 미리 결과를 단정 짓거나 추측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생각했던 것과는 180도 다른 것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거나, 명확한 근거도 없는 섣부른 선입견과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해 나중에 뜻밖의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 맞는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 번째 단편소설인 「장인 뮈사르의 유언」은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인데, 아마도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경험이 있어서 작품의 배경으로 프랑스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뮈사르’는 ‘보석 세공사’로서 뛰어난 기술력을 인정받아 오를레앙 공작의 궁중 보석 세공사로 임명되는 등 사회적으로 성공하게 되는데요, 보석 세공 장인 ‘뮈사르’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이 성공한 보석 세공업자가 되기까지의 인생 여정과 삶에 대한 통찰을 유언의 형식으로 비유적이고 함축적으로 토로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보석 세공 장인 ‘뮈사르’는 기술자로서의 정점을 찍고 성공한 상황에서 현업에서 은퇴하는 시점이 되어 현업을 내려놓고 자연 속으로 귀의하고자 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자기 집의 정원에서 우연히 돌조개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돌조개의 발견을 계기로 ‘뮈사르’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통찰을 어떤 논리로 구성하여 맹목적으로 믿어버리게 된다. 인간과 세상은 살아 숨 쉬고 있는 부드럽고 유연한 속살을 절대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개껍데기 속에서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조개와 같고, 세상과 인간이 점점 돌조개로 변화해 가고 있고 언젠가는 모두 다 석화되어 부서져 버릴 거라는 자신만의 확신을 갖게 된다.

무엇이든 진실을 알아간다는 것은 통쾌하고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그것이 ‘불편한 진실’인 경우엔 차라리 그 진실을 알지 못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또한 맹목적인 믿음과 근거 없는 자기 확신은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인도하기도 하는 것이니만큼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좀 더 근거가 확실하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다듬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고, 어떤 학설이 구축될 때에는 최소한의 객관성이 담보되어야 바람직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하는 소설이었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에세이 [문학적 건망증]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책에 대한 고찰을 담은 에세이로 ‘...그리고 하나의 고찰’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으며 초판본에서는 목차 제목에 부제가 명시되어 있었는데, 개정판에서는 빠져 있었다. ‘문학적 건망증’에서 작가가 독서생활에 대해 느끼는 솔직하고 현실적인 상황을 익살스럽게 표현하고 있는데,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일 듯하다. 수시로 책을 읽으며 참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무슨 책을 읽었는지, 그 책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막상 떠올려 보려고 하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 또 내용은 대략 기억이 나더라도 결말이 어떻게 되었던지 헷갈리기는 경험을 안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작가는 이런 증상을 ‘문학적 건망증’이라고 규정하며 자신이 수많은 독서를 했고 웬만한 도서를 읽었으나 기억이 나지 않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비록 그 책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느낌만큼은 생생하게 남아 있고, 책을 통해 아마도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라고 강력하게 외치고 있는 점이 ‘맞아 맞아! 나도 그래! 나도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말아. 문학적 건망증...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라구!’ 하며 맞장구를 치고 싶은 심정이 저절로 올라오게 만들었다.      


‘9월 북클럽’에서는 북토크 멤버님들과 함께 다양한 토론논제들을 발제하여 활기찬 의견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여류화가’처럼 타인의 평가에 휘둘려서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렸던 경험이 있는지, 남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로 정신이 피폐해져서 불행하다는 절망감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지, 예술가들의 정서적 예민함에 관한 이야기, 우리 사회의 병폐 중 하나인 ‘자살률 증가’에 관하여, 챔피언(1등)의 자리에 있는 자의 고독과 불안, 그리고 사람들의 시기, 질투에 관한 이야기.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 은퇴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나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인연이나 나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사람에 관하여, ‘진실’에 직면하여 소름 끼치며 절망했던 경험에 관한 이야기,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거나 내 삶을 변화시킨 ‘내 인생의 책’, ‘최고로 애정하는 책’의 소개, ‘재미와 흥미’ 또는 ‘감동과 교훈’ 중 어떤 종류의 책을 더 선호하는지에 대한 생각들 등 다양한 논제들로 2시간의 책수다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활발하고 적극적인 북토크 시간이 되었다.      

나는 사실 아주 오래전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인 ‘좀머씨 이야기’를 처음 읽고 너무 좋았어서, 이후로 부지불식 간에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에게 작가에 독자로서의 대한 큰 팬심이 생겼다. 그가 우리가 흔히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일상의 소재를 아주 독특한 관점으로 ‘비틀어보기’, ‘낯설게 보기’를 하는 면이 참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럽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함이 느껴질 만큼 익살스럽게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얼핏 읽으면 별 내용이 없어 보이는 간단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다시 한번 곱씹어 볼수록 내면에 깔린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철학적인 사유를 하게끔 자연스럽게 이끈다. 문체가 간결하면서도 사건 전개에 있어서는 휘돌아치듯 긴박감을 주면서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인간의 본성과 모순된 현실을 인식하게 하면서 ‘이 세상 사람들아~ 쫌! 뭣이 중헌지 생각 좀 하고들 살지?’ 하는 돌직구를 날리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니, 작가로서 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인가? 그의 관찰력과 상상력, 작가로서의 필력, 그리고 인간적으로 고매한 철학적 고찰력.... 여러모로 흠모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작가였다.

단지 사람 만나기를 극도로 싫어해서 각종 문학상을 준다고 해도 수상하러 안가며 상을 거부해 버리고, 소수의 지인들과만 교류하면서 자신에 대해 발설하는 자는 그 상대가 가족들이라 할지라도 절연해 버리는 기이한 운둔자라는 점은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그런 고독을 수반하기에 삶을 철학적으로 고찰하고 깊이 있는 작품들을 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이해는 간다.     


9월 북클럽 모임은 멤버님들과 북토크 시간에 앞서 조금 일찍 만나 브런치를 함께 한 이후에 책수다를 나누었다. ‘밥수다 2시간+책수다 2시간’을 하고도 못내 아쉬워하는 상황이라니... 역시 책친구님들과의 수다는 ‘무한궤도’를 질주하는 것과 같이 네버엔딩이 가능하고, 수다로 스트레스를 날려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하는 9월의 행복한 북토크 시간이었다.

특히 이번에는 책모임 장소를 홍대에서 강남으로 이동했는데 남산까지 바라다 보이게 시야가 탁 트인 스카이라운지 뷰 맛집에서 눈도 입도 즐거운 브런치도 하고, 이어서 우리 북토크 팀이 전세 낸 듯 편안하게 책수다를 나눌 수 있는 카페로 안내 해 주신 책친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또한 9월의 책모임을 함께 즐겨 주신 4인의 책친구님들께 모두 모두 감사드리며 10월의 북토크 모임을 기약한다.       

   

[의미로운 구절]         

p11

「당신 작품에는 재능이 보이고 마음에도 와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p14

「그녀를 돌봐 주어야겠어. 그녀는 위기에 빠져 있어. 인간적인 위기이거나 그녀의 천성이 너무 예술적이어서 그런지도 몰라. 아니면 경제적인 위기일 수도 있어. 첫 번째 경우라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고, 두 번째 경우는 그녀 자신이 극복할 문제야. 세 번째라면 우리가 그녀를 위한 모임을 개최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것조차 그녀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몰라.」     


p16~17

거듭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사람이 상황을 이겨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을 다 같이 지켜보아야 하다니, 이것은 남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또 한 번 충격적인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관심과 예술적인 분야에서의 사려 깊은 동반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국가 차원의 장려와 개인의 의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결국 비극적 종말의 씨악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리저리 비틀고 집요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p24

그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위대한 천재적 재능을 타고난 비범한 인물을 대하고 있다는 거역할 수 없는 확신에 압도되었다. 그것은 그 젊은이의 매력적이면서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외모, 우아한 옷차림, 아름다운 몸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거동에 깃들여 있는 침착성과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를 에워싸고 있는 특별한 낯선 분위기 탓일 수도 있다.     


p35

그들에게 체스가-이 체스가- 가진 의미와 유일한 관심사는, 낯선 젊은이가 승리하고 고수가 바닥에 고꾸라지는 장면을 보는 것뿐이었다.     


P42

마침내 그는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모든 사람을 물리쳐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났을 것이며, 마침내 구경하고 있던 악의에 찬 군상들, 이 시기심 넘치는 패거리들에게 만족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평온을 찾았을 것이다. 마침내....     


P43

이것을 마지막으로 체스를 영영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그는 다른 퇴직자들처럼 불레(야외에서 하는 프랑스의 공놀이), 도덕적인 요구가 별로 없고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사교적인 놀이를 할 것이다.     


P49

뮈사르는 끊임없이 특이한 것을 발견하고자 열심이었으며, 이러한 생각들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이성에는 다행이라 할 수 없고 그를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한 친구들에게는 슬프게도, 아주 기이하고 참혹한 병의 모습으로 죽음이 찾아와 그를 앗아 가지 않았더라면, 그 생각들은 결국 그의 머릿속에서 하나의 체계로, 즉 엉뚱한 것으로 압축되었을 것이다.

(루소『고백록』)     


P51~52

우리 사회 고상한 계층과의 교분은 내 정신적인 능력의 함양과 성격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읽은 책을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P53

공방을 확장하고 사업 규모를 늘린 덕택에 나는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 그런데도 나이를 먹어 갈수록 금과 보석이 갖는 매력은 의미가 없어지고, 대신 서적과 학문을 더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오! 고요한 행복과 기쁨에 넘쳐 파시에 도착했던 그 봄날을 오늘 되돌아보면! 바쁘게 돌아가는 사업, 약속, 독촉과 걱정거리가 기다리는 아침에서 오는 압박 없이 평생 처음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던 그날 밤을 생각하면. 정원의 살랑거리는 오리나무 소리만이 들려왔었다. 그 얼마나 달콤하게 잠을 잤던가.    

 

P54

진실의 얼굴은 소름 끼치고, 메두사의 머리처럼 그것을 본 사람은 죽음을 면할 수 없다.     

진실을 알게 되었으며, 이 진실이 최후의 진실이라는 위안 말고는 어떤 위안도 출구도 기대하지 마라.      

마음의 평화가 소중하게 생각되면 내가 하는 말에서 도망쳐라. 무지는 수치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으로 여긴다. 그리고 사실 이 세상에서 가능한 유일한 행복은 그것뿐이다. 행복을 경솔하게 버리지 말라!     


P68

해가 거듭될수록 네 몸이 화석처럼 굳어가고 무감각해지며 육체와 영혼이 메말라 가는 것을 너 자신은 깨닫지 못하는가?     


P71

내 생각은 몇 년 전부터 한자리에서 맴돌고 있었으며, 삶은 괴롭게도 늘 같은 궤도를 지나갔다.

    

P74

인간은 희망 없이는 살 수 없다고들 말한다.     


P79

어떤 책이 내게 감명을 주고 인상에 남아 마음 깊이 아로새겨지고, 송두리째 뒤흔들어 <인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거나>, <지금까지의 생활을 뒤바꾸어 놓았는가>      


P81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P82, P89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은 훌륭한 것으로, 문장 하나하나에서 얻는 바가 크다.      

    

P86

나는 이 책을 최소한 세 번은 읽었다. 그런데도 일말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P86~87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의 수천 시간을 책을 읽으면서 보냈는데도, 망각 이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니. 그리고 이 불행은 나아지기는커녕 반대로 악화되고 있다. 지금 책을 한 권 읽으면, 결말에 이르기도 전에 나는 처음을 잊어버린다. 때로는 기억력이 책 한쪽을 기억하기에도 부족한 때가 있다.     


P88

그보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일 수 있다. 의식 깊이 빨려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학적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도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P92

첫째로 쥐스킨트는 거리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묘사하면서 긴장감 있게 극적으로 사건을 전개시켜 독자는 부지중에 사건에 깊이 빨려 들어간다.

두 번째로 그에게 있어 문학은 삶의 제문제를 밀도 있게 다각적으로 파헤치는 또 다른 삶의 무대이다. 다시 말해 그의 문학은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관조가 뒷받침되어 있다.  

   

P93

상황에 따라 너무도 쉽게 자신의 견해를 뒤집는 그의 일관성 없는 행동과 그런 그의 말 한마디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죽음에 이르는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 이 웃지 못할 모순과 희극 앞에서 독자는 무거운 마음으로 씁쓸한 미소를 짓게 된다.     

<승부>에서 두 명의 체스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삶의 축소판이다. 삶과 사회의 규칙을 곧이곧대로 지키기 위해 늘 전전긍긍하는 늙은 체스의 고수 쟝, 인습을 과감하게 무시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서 정열적으로 용기 있게 도전하는 젊은 도전자. 그리고 쟝처럼 확실하게 무엇을 이룬 것도 아니면서, 젊은 도전자처럼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는 뱃심도 없는 나머지 구경꾼들.     


P95

삶과 인간이라는 공통의 주제를 중심으로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다. <삶>이란 중심축을 각기 다른 방향에서 조명하며 비추면서, 독자로 하여금 삶에 대해 한번쯤 사고하도록 유도하는 신랄한 기지가 엿보인다.     

문학 작품과 우리의 삶은 어떠한 함수 관계에 있으며, 삶은 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무엇을 읽든지 그 내용이 뇌리에서 깡그리 사라져 우리의 삶에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삶을 일거에 변화시키지는 않을지라도 무의식에 남아 삶에 면면히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누구도 간단히 답변할 수 없는 이 문제는 문학이 갖는 의의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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