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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Oct 25. 2021

1. 코인 자동 매매를 시작하다

나는 투자에는 영 소질이 없는 편이다.

언제 그걸 가장 크게 느꼈냐면, 친구가 추천해준 코인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대번에 20% 정도의 손실을 봤을 때였다. 저녁 12시쯤 그 코인(지금은 이름도 기억 안 난다)을 300만 원 정도 다 털어서 샀다. 확실하댔으니까. 그리고 '내일 아침 되면 올라 있겠지~'하면서 한숨 푹 잤다. 일어나니, 차트는 파란색으로 박살이 나있었다. 카톡에는 새벽 4시쯤 일어나서 팔라고 외치는 그 친구의 외침만 남아 있었다. 전화도 열댓 통 와 있었다. 알고 보니 3시~4시까지 오를 대로 오른 다음, 밑도 끝도 없이 떨어졌던 것이다

그러니까, 난 한마디로 진지하게 투자하기에는 게으르다. 블록체인이니, 레이어니 하는 것들을 공부할 마음도 없고, 시간도 없다. 24시간 차트만 보고 있자니 귀찮았다. 그렇다고 안 하자니 나만 뒤쳐지는 느낌이 들고, 지금 이렇게 떨어지고 있을 때 뭐라도 해야 부자가 될 텐데, 나는 순식간에 벼락 거지가 되는 건 아닌 불안하고 말이다. 게으르지만 행동할 생각은 없는 사람이랄까.

 

그래서 생각해낸 게 자동 투자였다. 만약 24시간 쉬지 않고 모든 코인(업비트에만 100개가 넘는다)을 다 감시하면서 로직에 따라 사고, 팔고를 해준다면? 조금씩이라도 계속 돈을 벌어준다면? 게으른 나에게 딱 맞지 않을까? 난 정말 천재야! 실제로 간단한 로직을 짜고, 실행했을 때 매일 1~2%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만약 하루에 1%씩 365일 벌 수 있다면, 복리 효과에 의해 1년 후에는 약 4800%의 수익을 올릴 수 도 있는 정도였다. 내 망상에서 나는 벌써 경제적 자유를 얻었다. 비싼 위스키를 막 마시고, 좋은 차를 타고, 멋진 건물에 살고.......

이 매거진의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 망상은 첫 번째 시스템을 만들고 나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아니 이걸 왜 지금 사?'

'아니 이걸 왜 팔아?'

'아니 이게 왜 떨어져?'

일주일 정도 코드를 돌렸을 때, 100만 원으로 8만 원을 벌었다. 108만 원이 찍힌 걸 보고, 나는 야호~! 하고 소리쳤다. 생각만큼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내 로직이 통한다는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코인 고수 친구에게 이걸 자랑했을 때, 친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그거밖에 안됐어? 지금 다들 20% 이상은 벌었는데."

알고 보니 시장 전체가 따땃하게 올라서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실제로 그다음 주, 모든 코인의 차트에 겨울이 오면서 수익률은 -를 찍었고, 안 하느니만 못한 상태가 되었다. 24시간 꾸준히 돈을 버리는 미친 기계를 만들었달까.


이때부터, 이 코딩 작업에 미친 듯이 집착하게 되었다. 코드(파이썬을 사용한다)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보조지표들을 막 찾아보고, 쓸만한 로직들을 짜고,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코드를 실행하고, 오류를 잡아내고...... 본업인 대학원 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깊게 몰입한 것이다. 아침에 가자마자 코드부터 뜯어봤다. 밥을 먹으면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생각하고, 잔고 한번 보고, 다시 코딩하고. 잘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안되면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고.

버전 1부터 버전 17까지...... 난 무엇을 위해 이 미친 짓거리를 한것이었을까.

그렇게 3달 정도 미친 듯 몰입하가, 갑자기 현타가 왔다. 문득 세상살이가 그렇게 쉽지 않겠지-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진작에 이렇게 할 수 있었으면 누구나 다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좀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같은 사람이 브런치에 한 명 정도는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만약 내가 그런 사람의 글을 접했다면, 아예 발도 들여놓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3달이나 걸리면서 힘들게 코딩할 필요도 없었겠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류가 후퇴, 전진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기록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원 수업에서, 논문을 쓰는 것의 의미는 실패 역시 기록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누군가 전문가가 본다면 코웃음 칠 정도로 간단하고 허접한 코딩이지만, 공개하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본업은 건축/토목 공학 박사과정이다. 따라서 진짜로 허접한 코딩 실력을 지니고 있다. 자동 투자를 위해 급하게 공부한 파이썬은 매 한 줄 칠 때마다 오류가 뜬다. 경제적인 부분, 트레이딩과 관련한 상식은 처참할 수준이다.

이건 실패담이다. 지금도 물론 계속해서 하고 있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 기술적인 부분도 설명을 할 거고, 코드도 올려놓을 생각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기쁠 것 같고, 만약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혹은 아무도 관심이 없을 수도...... 그냥 한 페이지로 잊힐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오랜만에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어서 재미는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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