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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Aug 27. 2015

글을 빨리 쓰는 사람 이야기

글을 쓰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특이하게도' 글을 매우 빨리 쓸 줄 알았다. 남자에게 중요한 것은 질이 아니라 글 쓰는 것의  속도였고, 글 쓰는 속도에서는 그를 따라잡을 자는 없었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권의 책을 썼다. 그러나 단 한 권도 팔리지 않았고, 남자는 점점 곤궁해져 갔다. 전깃불을 밝힐 수 없어 양초를 사용했고, 그 양초마저 바닥을 드러냈다. 결국 그가 갖고 있는 마지막 양초의 불이 꺼지고, 그에게 남은 것은 성냥 한 개비와 종이뿐이었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쓴 글들을 태워 불을 밝히기로 하였다. 그는 마지막 성냥개비에 불을 붙이고, 자신이 쓴 글들의 첫째장에 불을 붙였다. 첫째 장에 붙은 불은 두 번째 장으로, 두 번째 장에 붙은 불은 세 번째 장으로 옮겨 붙었다. 종이에 붙은 불은 그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만큼의 자그마한 불꽃과, 시커먼 연기를 만들어내었다.


  아무리 글 쓰는 속도가 빠른 그였지만, 글을 없애버리는 불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마침내 그가 쓴 첫 번째 페이지부터 그가 쓴 마지막 페이지 까지 모두 타 버렸다. 불은 곧 그가 쓰고 있는 페이지 까지 옮겨 붙었다. 남자는 최선을 다해서 글을 썼지만, 불은  인정사정없이 타자기를 향해 옮겨 붙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불이 옮겨 붙는 동안에도 남자는 계속해서 타자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세상에서 최초로 자그마한 불꽃과, 시커먼 연기를 쓸 줄 아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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