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엘런 포 단편선
Edgar Allan Poe 전승희/ 민음사
내가 이제 써 나갈 이야기는 너무나도 괴이하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평범한 이야기인데, 나는 독자들이 그 이야기를 믿어 줄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고, 믿어 달라고 부탁하지도 않는다. 나 자신의 감각들조차 내가 직접 보고 들은 증거를 거부하는데, 남들이 그것을 믿어 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실로 정신 나간 일이리라. 하지만 난 분명 미친 것도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죽음을 목전에 앞두고 있으니, 오늘 내 영혼의 짐을 덜고자 하는 것뿐이다. 내 일차적인 목적은 한갓 집안일에 지나지 않는 아주 평범한 일련의 사건을 분명하고 간결한 언어로, 아무런 설명이나 덧붙임 없이 세상 사람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 사건들로 인해 나는 공포에 떨었으며 고통에 시달렸고 파괴되었다. 그러니 그 사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일은 자제하겠다. 내게 그 사건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에겐 그 사건이 바로크보다 덜 끔찍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또한 지금 내겐 환상적으로 느껴지는 사건이 사실은 평범한 사건임을 뒷받침할 만한 지식이 훗날 발견될지도 모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지식으로 인해 이 사건을 더 침착하고 더 논리적으로, 더 차분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지식 덕분에 지금 내가 경외심을 갖고 묘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때에는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로 인한 평범한 연쇄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내가 성격이 온순하고 사려 깊다고들 했다. 마음이 남다르게 여려서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다. 동물들을 특히 사랑하는 나를 위해 부모님은 애완동물을 이것저것 구해 주셔셨다. 나는 대부분 애완동물들과 시간을 보냈고, 그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고 그것들을 쓰다듬어 줄 때가 가장 행복했다. 이런 성격은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된 뒤까지도 유지되었다. 바로 그런 것들이 내 큰 즐거움이었다. 충성심과 총기가 넘치는 개의 주인으로서 그 개를 극진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느꼈던 그런 만족감의 성격이나 정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애를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무지한 짐승의 헌신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에는, 인간 따위의 보잘것없는 우정과 덧없는 충성심을 시험해 볼 기회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나는 결혼을 일찍 한 편인데, 결혼 후 아내도 나와 성정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고 행복했다. 내가 애완동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 아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이 눈에 띌 때마다 놓치지 않고 바로바로 구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새와 금붕어와 훌륭한 개, 토끼와 작은 원숭이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게 되었다.
그중 고양이는 몸집이 아주 크고 멋지게 생겼으며, 몸은 칠흑같이 까맸고 놀랍도록 영리했다. 녀석이 워낙 똑똑하다 보니 은근히 미신을 믿어 왔던 아내는 검은 고양이는 모두 마녀가 변신한 것이라는 옛부터 내려오던 미신 이야기를 넌지시 꺼내곤 했다. 물론 아내가 그 미신을 진짜로 믿은 것은 아니었고, 내가 그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단지 지금 우연히 그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플루토- 이게 바로 그 고양이의 이름이었다- 는 내가 가장 사랑하던 애완동물이자 놀이 친구였다. 오직 나만이 그 녀석에게 밥을 주었고, 내가 집 안의 어디로 가든지 녀석이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심지어 밖에 나갈 때까지 따라 나오려고 하는 바람에 애를 먹기도 했다.
그 녀석과 나 사이의 우정은 그렇게 몇 해 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그 몇 해 동안 내 성격과 심리는 악마 같은 폭음 때문에- 이 사실을 고백하자니 얼굴이 붉어진다- 급격히 악화되었다. 나는 하루가 다르게 더 침울하고 쉽게 화를 내며 다른 사람의 감정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성격으로 변했다. 나는 나쁜 줄 알면서도 아내에게 심한 말을 퍼부어 대기를 서슴지 않았고, 종국에는 손찌검까지 하게 되었다. 애완동물들은 물론 내 성격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나는 그들을 돌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학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플루토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존중심을 유지했기 때문에 그 녀석까지 학대하지는 않았다. 토끼나 원숭이, 심지어는 개까지도 우연히 혹은 나에 대한 애정으로 내 앞을 얼쩡거리면 전혀 주저치 않고 그 녀석들을 학대했지만, 플루토에게만큼은 달리 대했다. 그러나 내 병 -술만 한 병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은 점차 깊어졌고, 마침내 플루토도 내 사나운 심사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당시 노년에 접어들기 시작한 플루토의 성격도 다소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늘 가던 시내 술집 중 한 곳에서 만취한 채로 집에 돌아왔는데, 얼핏 고양이가 나를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홧김에 그 녀석을 확 낚아챘더니 내 난폭한 행위에 놀란 녀석이 이빨로 내 손을 물어 상처가 약간 났다. 갑자기 악귀와도 같은 격노가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었다. 본래의 영혼이 순간적으로 육체를 벗어난 것 같았다. 몸의 모든 섬유조직 하나하나가 술이 부추긴 극악한 증오심으로 전율했다. 나는 조끼 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 펼쳐 들고, 그 불쌍한 짐승의 목을 손으로 꽉 눌러 잡은 뒤 한쪽 눈을 천천히 도려냈다! 저주받아 마땅한 그 잔혹 행위를 이렇게 적어 나가자니, 얼굴이 붉어지고 화끈거리며 몸서리가 쳐진다.
아침에 잠이 깨어 이성을 되찾고 전날 밤의 방탕함에서 비롯된 흥분이 사라지자, 내가 지난밤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공포와 후회의 감정이 솟아났다. 그러나 그래 봤자 그런 감정은 희미하고 애매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며, 영혼 깊숙한 곳까지 미치지는 못했다. 나는 이내 다시 극단적인 타락으로 빠져들었고, 내 잔혹한 행위에 대한 기억은 모두 술 속에 잠겨 버렸다.
그사이 고양이는 상처를 서서히 회복했다. 눈을 잃은 자리에 생긴 텅 빈 구멍은 보기에 참으로 흉측했다. 그러나 녀석은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전처럼 집 안을 어슬렁거리기는 했지만, 내가 가까이 다가가기라도 하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극도로 겁에 질려 도망쳤다. 나에게도 옛날의 심장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 그 녀석이 처음엔 그런 모습을 보일 때는 한때 그리도 나를 사랑했던 짐승이 이젠 이렇게 대놓고 나를 혐오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그러나 이 서글픈 감정이 짜증으로 변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리고 나를 회복 불가능한 파멸에 결정적으로 몰아넣기 위해서 이기라도 한 듯 도착적인 심리가 나를 찾아왔다. 이 도착적인 심리에 대해 철학은 아무런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도착적인 심리란 인간 감정의 원초적 충동 중 하나, 즉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인간으로부터 결코 분리해낼 수 없는 본질적 기능 내지 감정 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내 영혼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만큼이나 분명히 믿고 있다. 해서는 안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사악하거나 어리석은 행위를 저질러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법에 어긋나는 짓임을 알면서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최상의 판단력을 무시하고 그 법을 위반하려는 충동에 끊임없이 사로잡히는 존재가 바로 인간 아니던가? 이 도착적인 마음이 마침내 나를 결정적인 파멸로 몰고 간 것이다. 바로 이 갈망, 스스로의 본성을 거슬러 혼동시키고, 오로지 잘못을 저지르기 위해 잘못을 저지르게 만드는 인간 영혼의 불가해한 갈망 때문에,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 짐승에게 내가 준 상처를 아물게 하기는커녕 그 녀석을 아예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나는 너무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그 녀석의 목에 올가미를 씌운 다음 나뭇가지에 매달았다. 그렇게 매달 때 내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나왔고, 마음은 회한으로 가득 차서 비통하기가 그지없었다. 그 짐승이 나를 끔찍이 사랑해 왔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짐승이 내게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녀석을 목매달았던 것이다. 그런 행위를 함으로써 내가 범죄를 저지르고 있음을, 가장 자비롭고도 가장 무서운 신의 가없는 자비심이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 내 불멸의 영혼을 쫓아낼- 만일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치명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 녀석의 목을 매단 것이다.
그런 잔인한 행위를 저지른 그날 밤 나는 갑자기 불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침대 곁의 커튼이 화염에 휩싸여 있었다. 집 전체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아내와 하인과 나는 이 대화재에서 몸만 간신히 빠져나왔다. 파괴는 완벽했다. 화재는 나의 전 재산을 완전히 삼켜 버렸고 그 이후로 나는 완전히 절망에 빠져 버렸다.
나는 물론 그 재난과 내 잔혹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연쇄적으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가능한 고리 중 어느 하나도 불완전하게 남겨 놓지 않으려 한다. 그 화재 다음날 나는 폐허가 된 집터를 찾아갔다. 무너진 다른 벽들 사이로 단 하나의 벽이 성하게 남아 있었다. 집의 정중앙 부분에서 방과 방 사이를 나누던 그리 두텁지 않은 벽이었는데, 내 침대가 바로 그 벽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있었다. 그 벽은 화재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는데, 아마도 얼마 전에 회반죽을 새로 두껍게 발랐기 때문인 듯했다. 벽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어 웅성거리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여러 사람들이 벽의 한 부분을 유난히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도 하다!", "참 희한하군!" 따위의 말들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엄청나게 큰 고양이의 모습이 하얀 벽에 엷은 부조처럼 조각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부조는 실로 경이롭다 할 만큼 또렸했다. 그리고 그 짐승의 목에는 밧줄이 둘러져 있었다.
내가 처음 이 유령- 이걸 유령이 아닌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으니까 말이다- 을 보았을 때, 나는 물론 극단적인 경악과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좀 더 곰곰이 생각해 본 뒤 나는 결국 그 같은 경악과 공포에서 놓여날 수 있었다. 고양이가 집에 딸린 정원에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이 기억났던 것이다. 화재 경보가 울리자 정원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들었으니까, 그중 한 사람이 나무에 매달린 줄을 자른 다음 열린 창문을 통해 그 짐승을 내 방으로 던져 넣었던 게 틀림없다. 자고 있던 나를 깨우려고 그랬을 것이다. 다른 벽들이 무너지면서 내 잔혹 행위의 희생자인 고양이의 몸을 짓눌렀고, 고양이는 얼마 전에 바른 회반죽 벽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화염과 고양이의 시체에서 나온 암모니아가 결합해 그때 내 눈앞에 있던 바로 그 초상을 석회 위에 새겨 놓은 것이다.
방금 묘사한 놀라운 사실을 비록 양심적으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성적으로는 납득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넘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이 내 마음에 남긴 깊은 인상까지 쉽사리 지울 수는 없었다. 그 후 여러 달 동안 고양이의 환영이 내 눈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회한 자체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반쯤은 회한을 닮은 감정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고양이를 잃은 걸 안타까워하면서, 내가 자주 드나들던 그 사악한 장소들에서 혹시 내 고양이를 대신할 같은 종이나 비슷한 외모의 다른 애완동물이 없을까 하고 둘러볼 정도까지 되었다.
어느 날 밤 내가 반쯤 멍한 상태로 악행 중의 악행들이 벌어지는 한 소굴에 있을 때였는데, 그곳의 주된 가구 역할을 하는, 진이나 럼주를 담는 커다란 술통 위에 턱 하니 앉아 있는 검은 물체가 갑자기 내 주의를 끌었다. 그러기 전 몇 분 동안이나 그 술통 위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제야 그 물체가 눈에 띈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나는 그 물체를 향해 다가가 손을 내밀어 만져 보았다. 그것은 몸집이 꽤 커서 크기가 플루토만 하다고 봐도 좋을 정도의 검은 고양이로서, 단 한 가지 점을 제외하면 생김새도 플루토와 아주 흡사했다. 플루토는 몸에 하얀 털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 고양이에게는 형태가 불분명한 아주 큰 하얀 반점이 있어서, 그것이 고양이의 가슴 전체를 거의 다 가리다시피 했다.
그 녀석은 내가 만지자 즉시 몸을 일으켜 큰 소리로 그르렁대면서 내 손에 몸을 비벼 댔는데, 마치 내가 관심을 가져 주는 걸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 녀석이야말로 바로 내가 찾던 고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술집 주인에게 그 녀석을 사겠다고 제안했더니, 그의 대답이 그 고양이는 자기 소유가 아니며, 자신은 그 고양이에 대해서 전혀 일자 못하고, 전에 본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계속해서 그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다가 집에 돌아가려 하자 그 녀석이 나를 따라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가끔씩 몸을 숙여 그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면서 나를 따라오도록 가만히 놔두었다. 집에 도착하자 고양이는 마치 자기 집에 귀가한 양 행동했고, 이내 아내의 사랑을 듬뿍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 경우엔 이내 그 고양이에 대한 혐오감이 내부에서 용솟음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기대와는 정반대로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고양이가 나를 따르는 것이 분명해지자 나는 점점 더 그 녀석이 싫어지고 녀석에 대해 짜증스러운 감정만 늘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같은 혐오감과 짜증은 점차 더욱더 강렬한 증오로 발전했다. 따라서 나는 그 고양이를 피했다. 그래도 일종의 수치심 때문에 , 즉 이전에 내가 저질렀던 잔혹 행위에 대한 기억 때문에, 녀석을 신체적으로 학대하는 일만은 피했다. 녀석을 때리거나 다른 식으로 학대하지는 않는 가운데 몇 주가 흘러갔다. 그러나 녀석을 바라볼 때 점차, 아주 서서히, 말로 표현할 길이 없는 혐오감을 느꼈고, 그 짐승의 존재가 너무나 가증스러워 녀석으로부터 역병의 숨결을 피하기라도 하듯 말없이 도망을 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짐승에 대한 나의 증오심은 내가 녀석을 집으로 데려온 다음 날 아침 내가 발견한 사실, 즉 그 녀석도 플루토처럼 눈을 하나 잃고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 심해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사실은 녀석에 대한 아내의 사랑을 공고히 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아내는 인도주의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도주의적 감수성은 한때는 내 특징이기도 했고, 그 시절엔 나도 그런 감수성 덕분에 참으로 단순하고도 순수한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그 녀석을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그 고양이란 녀석은 나를 더욱더 좋아하고 따르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이 내 발뒤꿈치를 어찌나 끈질기게 졸졸 따라다녔던지, 아마 독자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내가 의자에 앉아 있으면 녀석은 언제나 의자 밑으로 들어가 웅크리고 앉아 있거나 아니면 내 무릎 위로 날렵하게 뛰어올라 나한테 애무를 퍼부어 나를 소름 끼치게 했다. 내가 일어나 걸으려고 하면 내 두 발 사이로 끼어들어 나를 넘어질 뻔하게 만들었고, 아니면 길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내 옷을 짓밟으며 가슴께로 기어 올라갔다. 그럴 때 나는 주먹질로 그 짐승을 작살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꾹 참았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이전의 범죄행위에 대한 기억 때문이기도 했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 이 자리에서 고백하거니와-그 짐승에 대해 느끼던 절대적인 공포심 때문이기도 했다.
이 공포가 육체적인 위해에 대한 공포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러나 육체적인 위해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면, 다른 어떤 종류의 공포라고 정의하는 게 좋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짐승이 내게 불러일으킨 공포와 전율이 가공의 괴물에 대해 상상함으로써 더 커졌다는 사실을 부끄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중죄인 감방에 앉아있는 지금까지도 그걸 생각하면 창피하다. 아내는 내가 앞서 언급했던 그 흰 털 반점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해 내 쥐의를 환기시켰다. 내가 죽였던 고양이와 이 희한한 고양이 사이의 유일한 가시적 차이인 그 반점 말이다. 독자들은 그 반점이 비록 큰 것이긴 해도 윤곽은 아주 희미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 윤곽은 아주 서서히,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변하다가 마침내 분명한 형태를 띄게 되었다. 윤곽의 색이 너무나 서서히 변했기 때문에, 내 이성은 오랫동안 그건 나의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며 내가 목격했던 걸 애써 부인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반점은 그즈음 이름을 말하면 몸서리가 쳐지는 바로 그 물체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로 그 형태 때문에 나는 그 짐승을 더욱더 혐오하고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감히 그럴 용기만 있었다면 그 괴물 같은 짐승을 내 손으로 죽여 버렸을 것이다. 그 반점은 그때 아주 무시무시하고 소름 끼치는 것의 모양, 즉 교수대의 모양을 띠었던 것이다! 교수대, 오, 소글프고 끔찍한 공포와 범죄의 기계, 고뇌와 죽음의 기계여!
나는 정말 비참한 기분이었다. 그 비참함은 단순한 인간적 비참함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한갓 야수에 지나지 않는 그 존재가 지고하신 신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인간인 나에게 그렇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괴로움을 주다니! 그 녀석의 동료인 또 다른 야수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 버린 내게 말이다. 오호, 슬프도다! 나는 더 이상 낮에도 밤에도 휴식이라는 축복을 알지 못했다! 낮 동안에는 그 짐승이 나를 한시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그리고 밤에는 매시간 형용할 길이 없이 무시무시한 꿈에서 놀라 깨어나 보면, 그 존재의 뜨거운 숨결이 내 얼굴에 느껴졌으며, 떨쳐 버릴 수 없는 악몽의 현신인 그 존재의 엄청난 무게가 내 심장을 영원히 압박하고 있었다!
이 같은 격통의 무게로 인해 내 안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선한 마음이 항복을 선언했다. 사악한 생각, 더없이 어둡고 사악한 생각들이 내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평소에도 늘 우울했지만 이제는 모든 사물과 인간을 증오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늘 우울했지만 이제는 모든 사물과 인간을 증오하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이제 느닷없이 자주, 그리고 걷잡을 길 없이 분출하는 격노의 감정에 나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게 되었으며, 그 결과-참, 불쌍하기도 하지!- 온순한 아내가 늘 묵묵히 그것을 받아 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빈곤해진 형편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한 낡은 건물에 살림을 내어 지내던 어느 날, 필요한 물건을 가지러 아내와 내가 지하실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고양이가 가파른 계단을 바짝 뒤따라오는 바람에 나는 거꾸로 넘어질 뻔했고, 그 때문에 미칠 듯이 화가 치솟았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그때까지 내 손을 묶어 두었던 유치한 공포조차 잊고 도끼를 번쩍 쳐들어 고양이를 향해 내리쳤다. 도끼가 내가 원한 곳으로 떨어졌다면 고양이는 당장 즉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손을 들어 가격을 막았다. 방해를 받자 더욱 미칠 듯 화가 난 나는 그녀의 손에서 내 팔을 빼낸 뒤 그녀의 머리를 향해 도끼를 내리쳤다. 그녀는 신음 소리 한번 못 내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이 끔찍한 살인 사건이 벌어지자자마자 나는 즉시 온 정력을 기울여 시체를 감추는 작업에 착수했다. 시체를 집 밖으로 내간다면, 밤이든 낮이든 이웃들이 그 사실을 알아챌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해 보았다. 잠시 동안은 시체를 아주 잘게 토막내 불에 태워 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어서 지하실 바닥에 무덤을 파서 묻어 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뒤 다시 시체를 마당에 있는 우물에 빠뜨려 버릴까, 아니면 상품이라도 되는 양 상자에 담아서 짐꾼더러 가져가라고 하면 어떻까 등등 한참 이렇게 저렇게 머리를 굴려 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다른 어던 방법보다도 그럴싸한 방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시체를 지하실 벽 속에 넣고 발라 버리는 방법이었다. 중세의 수도사들이 희생자들을 처리했다고 전해지는 방법 그대로 말이다.
지하실은 그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벽이 대충 세워져 있던 데다 최근에 거친 회반죽으로 벽 전체를 새로 발랐는데, 공기가 습해 이 반죽이 아직 채 다 마르기 전이었다. 더욱이 한쪽 벽에 예전에 굴뚝 겸 벽난로 구실을 하던 바깥으로 돌출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을 다른 벽들과 똑같이 만들기 위해 그 앞에 벽들을 쌓고 거기에 회칠을 해 막아놓은 상태였다. 이 벽에서 벽돌들을 빼내고 시체를 집어넣은 뒤 다시 전처럼 회칠을 해 의심스러운 구석이 없더록 감쪽같이 되돌려 놓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계산은 딱 맞아떨어졌다. 쇠지레를 사용했더니 벽돌들이 쉽게 빠져나왔고, 그 벽 안쪽에다 조심스레 사체를 기대 놓은 뒤 벽돌을 원래 모양대로 다시 쌓아 올렸다. 그러고 나서 석회와 모래와 섬유재를 조심조심 구해서 회반죽을 원래의 것과 구별이 안 될 만큼 똑같이 쑨 뒤 새로 쌓은 벽돌 위에 조심스레 발랐다. 일이 끝났을 때, 나는 모든 작업을 완벽하게 끝낸 것에 아주 흡족한 기분이었다. 벽에서는 누가 손을 댄 흔적이 조금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바닥에 있던 쓰레기도 아주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여 치웠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주위를 둘러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 일에서만큼은 내 수고가 헛되지 않았군."
작업의 다음 단계는 나를 이렇게 고생시킨 원인인 그 짐승을 찾는 것이었다. 녀석을 죽일 수밖에 없겠다고 굳게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녀석이 내 눈앞에 나타났더라면 그 녀석이 맞았을 운명에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그 교활한 짐승은 내가 바로 얼마 전에 보인 폭발적인 분노에 크게 놀란 나머지 내 기분이 그런 상태에 있을 때 내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듯했다. 그 가증스러운 짐승이 사라지고 나서 내가 맛본 더할 나위 없이 깊고도 행복한 안도감을 묘사하거나 상상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 고양이는 그날 저녁 내내 내 눈앞에 얼씬거리지 않았고, 덕분에 나는 그날 밤 그 짐승을 집에 데리고 온 이후 처음으로 편안하고도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렇다, 난 잠을 잘 수 있었다. 내 영혼에 살인의 짐을 지고도 말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지만 내 고문자는 여전히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 번 해방된 인간이 되어 숨을 쉴 수 있었다. 그 괴물 같은 녀석이 공포에 질린 나머지 영원히 내 집을 떠났구나! 더 이상 그 녀석을 보지 않아도 되는구나! 난 너무나 행복했다! 내 흉악한 행위에 대한 죄의식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주위에서 더러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대답을 꾸며 대기는 쉬웠다. 가택 수색까지 있었지만, 그들은 물론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이제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고 굳게 믿었다.
아내를 죽인 지 나흘째 되던 날, 경찰관 몇 명이 예고 없이 들이닥쳐 집 안팎을 또다시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아무리 철저히 수색하다고 해도 시체를 은닉한 장소가 발각될 염려는 없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경찰관들은 수색을 진행하는 동안 나에게 입회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집 안 구석구석을 한 군데도 빠지지 않고 살펴보았다. 지하실에도 서너 번 내려갔다. 내 근육 중 어느 한 곳도 떨리지 않았다. 심장박동도 순진무구하게 잠든 사람처럼 고요했다. 나는 지하실의 끝과 끝을 가로지르며 어슬렁거렸다. 가슴께에 팔짱을 끼고 편안하게 오락가락했다. 결국 경찰은 수색의 결과에 완전히 만족해 떠나려 했다. 내 가슴속에서는 기쁜 감정이 억제하기 힘들 정도로 날뛰고 있었다. 나는 내 의기양양한 감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나의 무죄를 재차 확인시키는 말을 한마디라도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여러분." 경찰관들이 지하실 계단을 올라가고 있을 때 마침내 내가 말했다. "여러분의 의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여러분 모두 더욱 건강하시고 안녕하시기를 빕니다. 참, 그런데 여러분, 이 집, 이 집은 아주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입니다." (편하게 아무 말이나 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 때문에 나는 내가 무슨 말으 하고 있는지조차 거의 인식하지 못해다.) "아주 탁월하게 잘 지어진 건물이지요. 이 벽들 - 가시려고요, 여러분?- 이 벽들은 아주 단단하게 발라져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순수한 과시욕에 사로잡혀,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들어 지하실의 벽 중에서도 내 소중한 아내의 시체를 넣어 놓은 바로 그 지점을 탕탕 두들겼다.
그러나, 신이시여, 사탄의 송곳니로부터 저를 보호해 주소서! 내가 두들기는 소리에 대한 반향이 고요 속으로 잦아들자마자 갑자기 그 소리에 화답이라도 하듯 그 무덤 속으로부터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처음에는 어린아이가 훌쩍훌쩍 우는 소리처럼 낮고 단속적이다가, 이내 길고 요란하며 지속적이면서도 괴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소리 같지 않은 큰 고함 소리로 변했다. 그것은 공포와 의기양양함이 반반 섞인 듯한 통곡 소리, 울부짖는 듯한 비명 소리로, 고통에 사로잡힌 저주받은 자들과 그들에게 의기양양하게 고통을 가하는 악마들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가 합쳐진 듯한, 오로지 지옥에서나 들릴 것 같은 소리였다.
내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리라. 나는 정신을 잃고 비틀비틀 반대편 벽으로 쓰러졌다. 계단에서 서 있던 경찰관들은 극단적인 공포와 경악에 사로잡혀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열두 개의 건장한 팔이 벽을 부수기 시작헀다. 벽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이미 엄청나게 썩어 들어간, 굳은 피가 여기저기 얼룩진 시체가 똑바로 선채 목격자들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의 머리 위에는 붉은 입을 활짝 벌리고 이글거리는 외눈을 한 그 가증스러운 짐승이 앉아 있었다. 바로 그 교활한 짐승 때문에 내가 살인을 저질렀고, 또한 바로 그 짐승의 고자질 소리 때문에 내가 교수형 집행인의 손아귀로 떨어진 것이다. 내가 그 괴물을 무덤 속에 넣고 벽을 발라 버렸던 것이다!
그림- 악몽/ 헨리 퓌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