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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Mar 09. 2016

죽음에 담담하게 대비하는 방법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이런 주장이 나만의 독특한 생각인지 아닌지 확실치는 않지만, 죽음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하는 것은 인간의 주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 문제가 자기들을 기다리고 있는 무(

無)

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하는 식으로 제기된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러 통계가 입증하듯이 죽음은 결코 비신앙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신앙인들 역시 죽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무제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사후에도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죽기 전의 삶이 무척 마음에 들기 때문에 그것을 당장 놓아버리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들은 천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가능하면 나중에 가기를 바란다.

<죽기 위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제기할 수 있으려면 우선 인간은 모두 죽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아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말하기는 쉽다. 죽는 게 내가 아니고 소크라테스라면. 그러나 바로 나 자신의 문제가 되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지금은 내가 여기에 있지만 얼마 후에는 더 이상 여기에 존재하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아주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최근에 크리톤이라는 걱정 많은 제자 하나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죽음에 제대로 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방법은 하나 뿐이야. 모든 사람들이 다 바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지.」

크리톤이 얼떨떨해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가 말귀를 알아듣도록 이렇게 설명했다. 「생각해 보게. 만일 자네가 이승을 떠나려는 순가에, 젊고 매력적인 남녀들이 나이트클럽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즐기고, 지혜로운 과학자들이 우주의 마지막 신비를 밝혀 내며, 청렴결백한 정치가들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신문과 텔레비전은 유익한 정보 제곡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건전한 기업가들은 마셔도 좋을 만큼 맑으 시냇물과 푸르른 수풀이 우거진 산과 오존층의 보호를 받는 청명한 하늘과 단비를 뿌려 주는 솜털 구름으로 이루어진 자연을 우리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네가 아무리 신앙인이라 해도 어떻게 미련 없이 죽음을 향해 걸어갈 수 있겠는가? 자네가 이승을 떠나려는 참에, 그렇게 멋진 일들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정말 견딜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경우를 한번 생각해 보게. 자네가 이 눈물의 골짜기를 곧 떠나게 되리라고 느낄 때, 인간 50억 이 모여 사는 이 세상이 온통 바보들로 가득 차 있다고 확신하는 경우를 말일세. 즉,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연놈들도 바보고, 우주의 신비를 풀었다고 믿는 과학자들도 바보고, 우리 사회의 모든 질병을 치유할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가들도 바보고, 우리의 신문들을 쓸모없는 기사와 하찮은 가십으로 가득 채우는 기자들도 바보고, 지구를 파괴하는 탐욕스런 기업가들도 다 바보라고 말일세. 그렇다면 이승을 떠나는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자네는 매우 만족해서 마음 놓고 이 바보들의 골짜기를 떠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자 크리톤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선생님, 그런 생각은 언제쯤 하는 것이 좋을까요?」

「너무 일찍 하면 안 되네. 스무 살이나 서른 살쯤에 세상 놈들이 모두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바보나 하는 짓일세. 그래서는 절대로 지혜에 도달할 수가 없네. 서둘면 안 되지. 우선은 남들이 자기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그러다가 마흔 살쯤에 미심쩍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품고, 쉰에서 예순 살 사이에 이제까지의 생각을 수정한 다음, 백 살에 이르러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날 때가 되었을 때, 그 확신에 도달하면 될 걸세.

다만, 명심할 것이 있네. 우리 주위에 있는 50억의 사람들이 모두 바보라는 확신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심하고 서려 깊은 노력의 결과라는 것일세. 귀고리 코걸이 달고 찢어진 청바지 입고 껄렁대는 날라리들은 꿈도 못 꿀 일이지. 재능도 있어야 하고 땀도 흘려야 하는 게야. 모든 걸 한꺼번에 이루려고 하면 안 되네. 조급하게 굴지 말고 천천히 나아가야 해. 시간에 딱 맞추어 담담하게 죽을 수 있게 말일세. 하지만 죽기 전날까지는 이 세상에 바보가 아닌 존재, 우리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존재가 하나쯤은 있다고 생각해야 하네. 그러다가 적절한 순간에- 미리 하면 안 되고- 그 사람 역시 바보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지혜일세.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가 담담하게 죽을 수 있을 걸세.

그러한 지혜를 얻는 방법은 보편적인 사상을 조금씩 조금씩 공부해 가면서 세태의 변화를 세심하게 살피고, 미디어의 정보와 자신만만한 예술가들의 주장과 제멋에 취한 정치가들의 발언과 비평가들의 난햏ㄴ 논증을 매일매일 분석하고, 카리스마적인 영웅들의 제안과 호소와 이미지와 외양을 연구하는 것일세. 그래야만 결국 그자들 모두가 바보라는 놀라운 계시를 얻게 될 테니까. 그러고 나면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는 것이지.......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 견딜 수 없는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야 하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이치에 맞는 것을 더 좋아한다라든가, 어떤 책이 다른 책들보다 낫다라든가, 어떤 지도자는 진실로 공동선을 추구한다라는 식의 생각을 어떻게든 고집해야 하네. 남들은 하나같이 다 바보다라는 믿음을 거부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인간적인 본성일세. 긇지 않다면 인생을 살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크리톤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성급한 판단을 내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선생님께서 혹시 바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자네 벌써 죽을 때가 되어가는구먼.」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당신과 한 시대에 살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당신의 별세 소식을 들었을때, 가슴이 철렁했었지요. 이 세상에 또 다시 없을 지성인이 한명 사라졌구나. 세상이 한결 어두워지겠구나.


당신의 글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습니다. 글쓰기로는 당신의 발끝도 쫒아가지 못하지만, 당신은 항상 저의 우상입니다. 언젠가 학식과 지식이 쌓이면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될리라 다짐합니다. 따듯하고 유머러스한, 하지만 언제나 날카롭고 화낼 줄 아는 지식인 말입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들', ' 미네르바 성냥갑', '장미의 이름','푸코의 진자(다 읽진 못했지만)', '가재걸음','프라하의 묘지', '번역하는 것(번역수업 과제로 선택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묻지 맙시다' , 그리고 그 외의 많은 단편집, 또 아직 읽지 못한, 읽을 능력이 안되는 수많은 책들. 당신 덕분에 많이 웃을 수 있었고, 사회에 대해, 기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당신과 같은 시대에 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누가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생각하느냐 묻는다면, 전 주저없이 당신의 이름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건 오래도록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죽은 작가들의 까페'에 더이상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작품이 올라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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