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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Mar 19. 2016

시골의사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홍성광/ 열린책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급히 여행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10마일이나 떨어진 마을에서 어떤 중환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서였다. 나와 그 환자 사이의 먼 공간에는 세찬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나에겐 가볍고 바퀴가 큰 마차가 있어서 이 지역의 국도를 달리기에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털외투로 몸을 감싸고, 진찰 가방을 손에 든 나는 여행 준비를 마치고 이미 뜰에 나와 있었다. 하지만, 말이, 마차를 끌고 갈 말이 없었다. 나에게 딱 한 마리 있었던 말은 살을 에는 이러한 겨울 추위에 너무 부려먹는 바람에 간밤에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나의 하녀가 말을 한 마리 빌리려고 온 마을을 뛰어다녔지만, 그래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눈은 점점 더 깊이 쌓여 가고, 나는 점점 더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어쩔 줄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다. 등불을 이리저리 흔들며 대문에 하녀가 혼자서 나타났다. 보나 마나 빤한 일이다. 눈보라 치는 이런 밤중에 먼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 자신의 말을 빌려 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는 또 한 번 뜰을 가로질러 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좋은 방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멍하니 고통에 사로잡혀, 나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사용하지 않는 돼지우리의 다 쓰러져 가는 문짝을 발로 걷어차 버렸다. 문이 열리면서 돌쩌귀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말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온기와 냄새가 뿜어져 나왔다. 우리 안에는 침침한 마구간용 등불이 줄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나지막한 칸막이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사내 한 명이 푸른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드러냈다. 

「마차를 대령할까요?」네 발로 기어 나오며 그가 물었다.

난 뭐라고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리 안에 뭐가 또 있는지 보려고 그냥 허리를 구부렸을 뿐이었다. 하녀는 내 옆에 서 있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 이런 것들이 있는 줄 몰랐네요.」

우리 둘은 소리 내어 웃었다.

「어이, 요 녀석들아!」 마부가 소리쳤다.

그러자 옆구리가 튼실하게 생긴 두 마리의 억센 말이 한 마리씩 떠밀려 나왔다. 두 다리를 몸에 바짝 붙이고, 잘생긴 머리를 낙타처럼 숙인 채 몸통만을 이리저리 돌리며 몸이 꼭 끼는 비좁은 문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밖으로 나오자마자 말들은 두 다리를 쭉 뻗고 벌떡 일어섰다. 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부를 도와줘라!」 내가 이렇게 말하자 온순한 하녀는 마부에게 마구를 건네주려고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하녀가 다가가자마자 마부는 그녀를 껴안고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마구 비벼 대는 것이다. 하녀는 비명을 지르며 나한테 도망쳐 온다. 그녀의 뺨에 두 줄의 이빨 자국이 벌겋게 새겨져 있다.

「이 짐승 같은 놈!」 난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른다.

「채찍을 좀 맞아야겠느냐?」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난 그가 어디서 온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다 거부하는데 그는 자발적으로 나의 일을 거들어 주고 있다. 나의 생각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그는 내가 위협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한 번 내 쪽을 힐끗 뒤돌아볼 뿐, 말에 마구를 매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올라타십시오!」 그가 이렇게 말해서, 보니 정말 준비가 다 되어 있다. 나는 이렇게 멋진 마차에 타 본 적이 없었으므로 즐거운 마음으로 마차에 올라탄다.

「그런데 마차는 내가 몰겠네. 자네는 길을 모르니까.」 내가 말한다.

「그러시죠. 전 결코 같이 가지 않을 겁니다. 전 로자 곁에 있겠어요.」 그가 말한다.

「안 돼요.」 로자는 이렇게 소리치며, 자신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정확히 예감하고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간다.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는 소리, 자물쇠가 찰칵하고 채워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게다가 그녀는 복도며 방 안을 돌아다니며 불이란 불은 모조리 꺼 버리고 자신을 찾아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나랑 같이 가세.」 나는 마부에게 말한다.

「같이 안 가면 난 여행을 포기하겠어. 아무리 긴급한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야. 그 대가로 저 소녀를 자네에게 헐값으로 넘겨주고 싶지는 안아.」

「이랴!」 마부는 이렇게 외치며 손뼉을 친다.

그러자 목재가 물결에 휩쓸려 가듯 마차가 갑자기 움지기이기 시작한다. 마부가 마차를 우악스럽게 모는 바람에 우리 집 대문이 우지끈 부서지고 쪼개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고 나서 나의 귀와 눈에는 모든 감각을 앗아 갈 정도로 쏜살처럼 내달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다. 마치 우리 집 대문 앞에서 곧장 환자 집의 뜰이 열리기라도 한 듯, 벌써 그곳에 와 있었기 때문이다. 말들은 다소곳이 서 있다. 어느덧 눈보라는 그치고 사방에 달빛이 그득했다. 환자의 부모들이 집 안에서 부리나케 달려 나오고, 그의 여동생도 뒤따라 뛰어나온다. 그들은 거의 들어내다시피 나를 마차에서 내리게 한다. 나는 그들이 당황해서 하는 말들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 병실의 공기는 거의 들이마실 수 없을 정도이다. 아무렇게나 내버려 둔 화로에서 연기가 자옥하게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창문을 열어젖히고 싶지만, 우선 환자를 보고 싶다. 비쩍 마른 그에게는 열이 없어, 몸이 차갑지도 덥지도 않다. 퀭한 눈으로 셔츠도 입지 않고 누워 있던 소년은 깃털 이불 아래에서 몸을 일으켜 나의 목에 매달리며 이렇게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 저를 죽게 내버려 두세요!」

난 주위를 둘러본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모는 아무 말 없이 허리를 앞으로 구부리고 나의 진단을 기다리고 있다. 여동생은 나의 진찰 가방을 올려놓을 의자를 가져왔다. 난 가방을 열고 진료 기구를 찾아본다. 소년은 침대 밖으로 손을 내밀어 줄곧 내 쪽을 더듬으며, 아까 나에게 한 부탁을 떠올려 주려고 한다. 난 핀셋을 집어 들고 그것을 촛불에 검사한 다음 다시 내려놓는다.

〈그래.〉나는 신을 모독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경우엔 신들이 도와주시는구나. 말이 없으니까 말을 보내주시고, 그것도 급하다고 한 마리 더 끼워 주셨어. 거기에다가 덤으로 마부까지 보내 주시다니!〉

그제야 다시 로자 생각이 났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서 그녀를 구하지? 어떻게 그녀를 이 마부의 손아귀에서 빼낼 수 있을까? 그녀는 내게서 10마일이나 떨어져 있고, 내 마차 앞에는 마음대로 다룰 수 없는 말들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말들이 가죽 끈을 어떻게 해놓았는지 느슨하게 풀려 있다. 그리고 어찌 된 노릇인지 알 수 없지만 창문들을 밖에서 열어젖혀 버린 것이다. 말들이 각기 다른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환자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지 않은가. 가족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는데도 끄떡없이 말이다.

「곧 다시 되돌아가야겠구나.」 나는 말들한테서 떠나라는 재촉을 받은 것처럼 속으로 중얼거린다. 하지만 너무 더워서 내가 얼이 빠졌다고 생각한 여동생이 나의 털외투를 벗겨 주는 것을 나는 묵묵히 참고 있다. 나보고 마시라고 럼주 한 잔을 건네주면서 노인은 내 어개를 두드린다. 자신이 아끼는 보물을 내놓음으로써 친밀감을 정당화하려는 모양이다. 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노인의 속 좁은 생각에 내 기분이 상할지도 모른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사양한 것은 오직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환자의 어머니는 침대 옆에 서서 나에게 오라고 한다. 난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말 한 마리가 천장을 향해 큰 소리로 울부짖는 동안 내 머리를 소년의 가슴에 갖다 댄다. 나의 축축한 수염이 그의 몸에 닿자 소년은 전율하며 몸을 부르르 떤다. 나는 그러리라 짐작했던 사실을 확인한다. 소년은 아픈 데 없이 건강한 것이다. 안 좋다고 해봐야 혈색이 좀 안 좋아 보인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걱정한 나머지 어머니가 준 커피를 잔뜩 마셨기 때 문이다. 하지만 그는 건강한 몸이라, 한 대 걷어차면 금방 침대에서 쫓아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난 세계 개혁자인 척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를 그냥 누워 있게 한다. 군청에 고용된 의사인 나는 사실 너무 지나치다 할 정도로 멀리 변두리까지 다니며 나의 의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 보수는 얼마 되지 않지만, 나는 남에게 잘 베푸는 성격이라 언제라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자세가 되어 있다.

난 로자를 위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고 보면 죽고 싶다는 소년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도 죽고 싶은 심정이다 이 끝없는 겨울에 내가 여기서 무얼 한다는 말인가! 내 말을 죽어 버렸고, 이 마을에서 나에게 말을 빌려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난 돼지우리를 뒤져 마차를 끌 짐승을 찾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어쩌다 그곳에 말들이 없었더라면 난 암퇘지가 끄는 마차를 타고 올 뻔하지 않았는가. 세상 이치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난 가족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했다. 그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설령 그런 사실을 알았다 해도 그걸 믿지 않았을 게다. 처방전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 밖에 이 집 사람들과 말이 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제 그러니까 이곳에서의 나의 왕진이 끝날지도 모른다. 또 한번 나는 쓸데없이 헛수고만 한 셈이다. 난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다. 군내의 모든 사람들이 야간 비상벨을 누르며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로자마저도 넘겨주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우리 집에 살았지만 내가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이 아름다운 소녀를 말이다 - 이러한 희생은 너무 큰 것이다. 정말이지 아무리 그렇게 하고 싶더라도 로자를 나에게 되돌려줄 수 없는 이 가족에게 매달려 있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 안 될지라도 임시로 내 머릿속을 어떻게든 정리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내가 진찰 가방을 닫고 털외투를 달라고 손짓하자 가족들이 모여 선다. 아버지는 킁킁거리며 손에 든 럼주의 향내를 들이 맡고 있고, 어머니는 아마 나에게 실망한 모양으로- 아니, 이 사람들이 대체 나에게 무얼 기대하고 있단 말인가? - 눈물을 글썽이며 입술을 깨물고 있으며, 누이는 피에 젖은 손수건을 흔들고 있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나는 사정에 따라서는 어쩌면 소년이 아플지도 모르겠다는 걸 인정할 용의가 되어 있다. 내가 그에게 다가가니, 그는 나에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내가 마치 그에게 만병통치용 수프라도 가지고 온 것처럼 말이다. 아, 이때 두 마리의 말이 울부짖고 있다. 그 소음은 아마 저 높은 곳의 배려로서 나의 진찰을 알기 쉽게 해주기 위한 것이리라. 드디어 난 알게 된다. 정말로 소년은 아픈 것이다. 그의 오른쪽 옆구리의 허리 부이에 손바닥만 한 상처가 나타난 것이다. 장밋빛을 띤 그 상처는 짙기가 다른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안쪽으로 갈수록 짙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보다 옅어진다.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핏덩이가 도톨도톨하게 맺혀 있는 그 상처는 노천 광산처럼 벌어져 있다.

좀 멀리 떨어져서 보면 이런 모습이고, 가까이서 보면 상태가 더욱 심각해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보고 누가 나지막하게 휘파람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굵기와 길이가 내 새끼손가락만 하고, 그 자체가 장밋빛인 데다가 더욱이 피가 묻어 있는 벌레들이 상처의 안쪽에 달라붙어서는, 하얀 머리를 쳐들고 수많은 다리들을 꿈틀거리며 밝은 곳으로 나오려고 한다. 불쌍한 소년아, 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구나. 난 너의 커다란 상처를 찾아냈어. 너의 옆구리에 피어난 이 꽃으로 넌 파멸을 맞이하고 있구나. 가족은 내가 일하는 것을 보고 행복해하고 있다. 여동생은 그런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하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양팔을 벌려 몸을 균형을 잡은 채 열린 문으로 달빛을 받으며 발끝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몇 사람의 손님들에게 말한다.

「저를 구해 주시겠어요?」소년으느 흐느끼며 이렇게 속삭이다가, 그의 상처에서 살아 움직이는 벌레들을 보고 완전히 질색을 해버린다. 이 지역 사람들은 다 이렇다. 언제나 불가능한 일을 의사한테 요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옛날에 가졌던 믿음을 잃어버렸다. 사제는 자기 집에 죽치고 앉아 사제복들이나 하나하나 쥐어뜯고 있지만, 의사는 외과 수술을 하는 섬세한 손으로 모든 일을 해내지 않으면 안 돼. 뭐, 저들 마음대로 생가하라지. 난 스스로 자청하고 나선 것이 아니었어. 너희들이 날 성스러운 목적에 쓰고 있는 것이며, 난 그것도 그냥 가만히 놓아두고 있어. 자신의 하녀를 빼앗긴 늙은 시골 의사가 더 이상 무슨 일을 바라겠는가! 그들, 가족과 마을의 최고 연장자들이 와서 내 옷을 벗긴다. 선생님은 맨 앞에 세운 학교 합창단이 집 앞에 서서, 멜로디가 아주 단순한 노래를 부른다.

「그의 옷을 벗겨라, 그래야 치료할 것이다,

그가 치료하지 않으면, 그를 죽여라!

그것이 의사일 뿐이다, 그것이 의사일 뿐이다.」

난 옷이 벗겨진 다음, 손가락으로 수염을 만지며 머리를 기울이고 그들이 하는 일을 가만히 지켜본다. 난 이런 상황에 더없이 차분하고 침착하게 대처하며, 이런 일이 나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도 그대로 머물러 있다. 이제 그들은 나의 머리와 발을 붙잡고 나를 침대로 끌고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울타리 삼아 상처의 옆에 눕힌다. 그러고 나서 모두 방에서 나간다. 문이 닫히고, 합창 소리도 잠잠해진다. 구름들이 움직이며 달을 가리고, 침구가 내 몸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다. 말의 머리들이 창의 열린 공간에서 그림자처럼 어렴풋이 일렁이고 있다.

「알겠어요?」 누가 내 귀에 대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전 선생님을 별로 믿지 않아요. 선생님은 두 발로 걸어서 온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내동댕이쳐진 것일 뿐입니다. 선생님은 사람을 도울 생각은 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저의 자리르 비좁게 만들고 있어요. 전 선생님의 두 눈을 후벼 파고 싶은 심정입니다.」

「맞는 말이다.」 내가 말한다.「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야. 하지만 난 의사가 아닌가. 날더러 어떡하란 말인가? 나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내 말을 믿어 주게.」

「그런 핑계에 제가 만족할 것 같습니까? 아, 참아야 하겠지요. 언제나 전 만족하지 않을 수 없거든요. 전 아름다운 상처를 안고 이 세상에 태어났어요.  제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은 그게 다였어요.」

「이보게!」 내가 말한다.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게 자네의 결점이야. 난 여기저기서 온갖 환자들을 다 보고 다녔네. 내 말하는데, 자네의 상처는 그리 심한 것이 아니야. 예리한 각도에서 도끼로 두 번 내리찍어 생긴 상처일세. 많은 사람들은 숲 속에서 옆구리를 드러내고 있으면서, 도끼 소리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거든. 하물며 그 소리가 보다 가까이서 들려도 마찬가지야.」

「정말로 그런 건가요, 아니면 열에 들뜬 저를 속이려는 건가요?」

「정말 그렇다네. 공직에 있는 의사의 명예를 걸고 하는 말이니 믿어주게.」

그러자 그는 그 말을 받아들여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살아남을 방도를 생각할 때였다. 말들은 아직 그 자리에 충실히 서 있었다. 나는 옷들이며 털외투며 진찰 가방을 한꺼번에 움켜쥐었다. 옷을 입느라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말들이 이곳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쏜살같이 달린다면, 말하자면 난 이 침대에서 나의 침대로 단번에 뛰어들 것이다. 말 한 마리가 창에서 순순히 물러났다. 나는 나의 옷 뭉치와 가방을 마차 안으로 집어던졌다. 털외투는 너무 멀리 날아가서 한쪽 소매만 달랑 마차에 걸렸을 뿐이었다. 그 정도면 됐다. 나는 말 등에 뛰어올랐다. 가죽 끈들이 느슨하게 매여 있어, 한 말과 다른 말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모양인지 뒤에서 마차가 덜커덕거리고 있고, 털위투는 맨 끝에서 눈 위로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이랴!」 내가 외쳤다. 하지만 마차는 신나게 달리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노인처럼 느릿느릿 눈 덮인 벌판을 이동해 가고 있었다. 우리 뒤에는 아이들이 부르는, 새롭지만 잘못된 합창이 오랫동안 울려왔다.


「기뻐하라, 환자들아,

의사가 너희들과 함께 누워 있으니!」


이래서는 난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도 못할 것이다. 문전성시를 이루던 나의 진료실도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어져 버렸다. 내 후임자가 훔쳐가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가 나를 대신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는 그 역겨운 마부가 위세를 부리고 있고, 로자는 그의 제물이 되어 버렸다. 난 그 일을 생각해 내고 싶지 않다. 비참하기 그지없는 이 시대의 엄동설한에 늙은 나는 발가벗긴 채로, 저 세상의 말이 끄는 이 지상의 마차를 타고 끝없이 떠돌고 있는 것이다. 나의 털외투는 마차 뒤에 매달려 있지만, 난 그것에 손이 닿지 않는다. 그리고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환자들 무리 중에 아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속은 거야, 속은 거야! 잘못 울린 야간 비상벨 소리에 덜컥 응했다가 -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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