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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데 Jun 11. 2017

동방박사의 선물/ The Gift of the Magi

오헨리/O. Henry/ 고정아 옮김

1달러 87센트. 그게 다였다. 그중 60센트는 1센트짜리 동전들이었다. 동전은 식품점과 채소 가게와 정육점에서 우격다짐으로 1,2센트씩 깎아 모은 것이었다. 그렇게 빡빡하게 흥정하다 보면 자신의 궁핍함에 대한 상대의 말 없는 비난에 얼굴이 벌게지곤 했다. 델라는 돈을 세 번 셌다. 1달러 87센트였다. 그리고 내일은 크리스마스였다.

낡은 소파에 주저앉아 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델라는 그렇게 했다. 울다 보면, 인생은 흐느낌과 훌쩍임과 미소로 이루어졌고 그중 훌쩍임이 지배적이라는 격언을 떠올리게 된다.

집의 여주인이 아래로 천천히 가라앉는 동안 집 안을 살펴보자. 주당 8달러의 집세를 내는 가구 딸린 아파트. 딱히 형언 불가능한 상태라고 할 수는 없어도, 그런 말을 듣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수준인 것은 분명했다. 

1층의 공동 현관에는 편지가 오지 않는 편지함이 있고, 산 자의 손으로는 울릴 수 없는 전기초인종이 있었다. 그리고 그위에 ‘제임스 딜링햄 영’이라는 이름의 카드가 붙어 있었다.

그 ‘딜링햄’이라는 글자는 주급 30달러를 받던 풍요의 시절에는 바람에 나부꼈지만, 수입이 20달러로 줄어든 지금은 윤곽이 흐릿해져서 마치 겸손하게 D만 남기고 사라져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제임스 딜링햄 영 씨가 귀가해서 위층에 있는 자기 아파트에 도착하면, 조금 전에 델라라고 소개한 제임스 딜링햄 영 부인은 그를 ‘짐’이라고 부르며 다정하게 포옹해 주었다.

델라는 울음을 멈추고 두 뺨에 분첩을 두드렸다. 그리고 창가에 서서 잿빛 고양이가 잿빛 뒷마당의 잿빛 울타리 위를 걷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데 짐의 선물을 살 돈은 1달러 87센트뿐이었다. 그녀는 여러 달 동안 가능한 모든 동전을 모았고, 이것이 그 결과였다. 주급 20달러로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지출은 그녀가 계산한 것보다 컸다. 원래 그런 법이다. 짐의 선물을 살 돈이 1달러 87센트뿐이었다. 그녀의 짐. 델라는 그에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멋지고 흔치 않고 순도 높은 것, 짐이라는 주인을 만날 자격이 있는 것이라야 했다.

두 개의 창문 사이에 틈새 거울이 있었다. 독자 여러분 가운데도 주당 8달러짜리 아파트 벽에 걸린 틈새 거울을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몸집이 가는 사람이 날래게 움직이면, 거울 속에 연속적으로 등장하는 세로로 잘린 형상들을 통해 자신의 전체 모습을 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날씬한 델라는 그 기술에 통달해 있었다.

그녀는 불현듯 창가를 벗어나 거울 앞에 섰다. 두 눈은 반짝였지만 얼굴은 20초도 지나지 않아 핏기를 잃었다. 그녀는 긴 머리를 확 풀어서 아래로 늘어뜨렸다.

제임스 딜링햄 영 부부의 소유물 가운데 두 사람이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물품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짐이 아버지와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금시계였다. 다른 하나는 델라의 머리카락이었다. 시바 여왕이 중앙 통로 맞은편에 살았다면, 델라는 창밖에 머리카락을 널어서 여왕의 보석과 선물이 빛을 잃게 했을 것이다. 솔로몬 왕이 그 건물 수위로 와서 지하실에 보물을 쌓아 두었다면, 짐은 그가 지나갈 때마다 시계를 꺼내 들어서 그가 질투심에 수염을 잡아 뜯게 했을 것이다.

델라의 아름다운 머리가 길게 늘어져서 갈색 폭포처럼 물결치며 반짝거렸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그 자체로 그녀의 옷 같았다. 잠시 후 델라는 불안하고 빠른 동작으로 다시 그것을 말아 올렸다. 잠시 손이 떨렸고, 그녀는 가만히 서서해 어진 붉은 카펫 위로 눈물 몇 방울을 떨구었다.

델라는 낡은 갈색 재킷을 입었다. 낡은 갈색 모자도 썼다. 그리고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빙글 돌더니 여전히 눈물이 반짝이는 눈으로 문밖으로 나가, 계단을 내려가 거리로 뛰쳐나갔다.

델라가 발길을 멈춘 곳에는 ‘마담 소프로니. 모발 제품 일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델라는 2층으로 달려 올라간 뒤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스렸다. 마담은 덩치가 큰 데다 피부는 싸늘해 보일 만큼 새하애서 ‘소프로니’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제 머리를 팔고 싶어요.” 델라가 말했다.

“좋아요. 머리를 좀 보게모자를 벗어 봐요.” 마담 소프로니가 말했다.

갈색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20달러 쳐드리죠.” 마담이 능숙한 손으로 풍성한 머리채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네, 얼른 주세요.” 델라가 말했다.

그런 뒤 장밋빛 날개를 달고 날아다닌 두 시간이여. 하지만 엉터리 비유는 그만두자. 델라는 짐의 선물을 사려고 상점들을 샅샅이 훑었다.

그리고 마침내 원하던 것을 찾았다. 그것은 분명 다른 누구도 아닌 짐 만을 위한 것이었다. 어떤 상점에도 그런 것은 없었다. 그녀는 모든 상점을 이 잡듯이 뒤졌기에 그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간소한 디자인의 백금제 회중시계 사슬로, 요란한 장식 없이 재료만으로 제 가치를 빛내고 있었다. 좋은 물건은 그런 법이다. 그것은 심지어 그 시계의 가치에도 걸맞았다. 사슬을 보자마자 델라는 짐이 그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짐과 비슷했다. 그녀는 21달러를 지불한 뒤 남은 87센트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계에 그 사슬을 걸면 짐은 어떤 사람들 앞에서도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 질 것이다. 시계가 그렇게 훌륭한데도 거기에 번듯한 사슬 대신 낡은 가죽끈이 달려 있는 까닭에 그동안 그는 사람들 눈을 피해 시계를 볼 때가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델라의 환희는 약간 누그러들고 그 자리에 신중함과 분별력이 들어섰다. 그녀는 고데기를 꺼내고 가스 불을 켜서 사랑의 희생이 일으킨 파괴를 복구하는 작업을 했다. 그것은 언제나 엄청난 일이다. 친구들이여, 막대한 일이다.

델라의 머리는 40분 안에 촘촘한 곱슬머리가 되었고, 그 모습은 학교를 빼먹는 남학생과 놀라울 만큼 비슷했다. 그녀는 거울 속 자기 모습을 오래, 꼼꼼히, 까다롭게 바라보았다.

“짐이 나를 죽이지 않고 다시 한번 봄다면,” 그녀가 혼잣말을 했다. “나더러 코니 아일랜드 공연장의 무희 같다고 말하겠지. 하지만 1달러 87센트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7시가 되자 커피가 끓었고, 델라는 프라이팬을 스토브 뒤쪽 버너에 올려 고기를 요리할 준비를 마쳤다. 

짐은 늦는 법이 없었다. 델라는 시계 사슬을 손에 쥐고 그가 늘 들어오는 문 옆의 탁자 모퉁이에 걸터앉았다. 곧 그가 1층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고, 그녀는 잠시 얼굴이 하얘졌다. 그녀는 평범한 일들에 대해 말없이 기도하는 버릇이 있었고, 이제 이렇게 속삭였다. “하느님, 제발, 제가 아직도 그이 눈에 예뻐 보이게 해주세요.”

문이 열렸고, 짐이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그는 여윈 체격에 진지한 표정을 한 젊은이였다. 불쌍한 친구,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인데 가장의 짐을 지고 있다니! 외투도 새것이 필요했고 장갑도 없었다.

짐이 문 안쪽으로 들어왔다가 메추라기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는 델라에게 눈을 고정했는데, 델라는 그 표정을 읽을 수가 없어 겁이 났다. 그것은 분노도 아니고, 놀라움도 아니고, 나무람도 아니고, 공포도 아니고, 그녀가 마음속으로 대비하던 어떤 감정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특이한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델라는 탁자에서 내려와 그에게 다가갔다.

“짐, 그런 눈으로 날보지 마.” 그녀가 소리쳤다. “오늘 머리를 잘라서 팔았어. 당신한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지 않고 지나갈 수가 없어서. 머리는 다시 자라날 거야. 괜찮지?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어. 난 머리가 정말 빨리 자라.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말하고 기뻐해 줘. 내가 얼마나 멋진……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선물을 준비했는지 모를 거야.”

“머리를 잘랐다고?” 짐이 힘겹게 물었다. 아무리 열심히 머리를 굴려도 그 명백한 사실을 이해하기가 힘든 것 같았다.

“잘라서 팔았어.” 델라가 말했다. “그래도 전과 다름없이 나를 좋아하지? 머리카락이 없어도 나는 여전히 나잖아.”

짐은 기묘한 눈길로 방을 둘러보았다.

“이제 머리카락이 없다고?” 그는 거의 바보처럼 말했다.

“그걸 찾아봐야 소용없어.” 델라가 말했다. “말했잖아, 팔았다고. 이제 없어졌어.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야. 화내지 마. 당신을 위해 한 일이니까. 내 머리카락 개수는 셀 수 있다고 해도,” 그녀의 애정 어린 목소리에 진지함이 담겼다. “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어. 저녁을 차릴까, 짐?”

짐은 이제 몽환 상태에서 깨어나는 것 같았다. 그는 델라를 끌어안았다. 10초 동안 우리는 눈길을 돌려 다른 방향에 있는 시시한 물걸들을 보자. 일주일에 8달러짜리 방과 1년에 100만 달러짜리 방은 무엇이 다를까? 수학자나 재담꾼은 틀린 답을 줄 것이다. 동방박사는 보배로운 선물을 여럿 가져왔지만, 그중에도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다. 이 모호한 주장의 뜻은 잠시 후에 밝혀질 것이다.

짐은 외투 주머니에서 꾸러미를 꺼내서 탁자에 가볍게 내려놓고 말했다.

“오해하지 마, 델라. 머리 모양이 어떻건, 아예 삭발을 하건, 어떤 샴푸를 쓰건, 그런 걸로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이 줄어들 수는 없어. 하지만 그 포장을 뜯어보면 내가 처음에 왜 얼떨떨해했는지 알게 될 거야.”

희고 날랜 손가락이 끈과 포장지를 풀었다. 그리고 기쁨의 탄성이 터졌지만 아! 그것은 즉시 안타까운 눈물과 울음으로 변했고, 남편 은성심을 다해 아내를 위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장식 빗핀이었기 때문이다. 델라가 오래전부터 브로드웨이의 상점 창문들에서 보고 감탄하던 옆머리와 뒷머리용 빗핀 세트였다. 거북 등껍질로 만들고 가장자리에 보석을 박은 아름다운 빗핀. 색깔도 이제는 사라진 아름다운 머리에 딱 어울렸다. 그녀는 그것이 비싸다는 걸 알았기에 그걸 소유할 희망을 품지 않으면서도 그에 대한 열망을 떨치지 못했다. 그런데이제 그것이 손에 들어왔지만, 그 탐내던 장신구가 장식해 줄 머리채는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빗핀을 가슴에 댔고, 마침내 흐릿해진 눈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머리는 아주 빨리 자라, 짐!”

그런 뒤 델라는 불에 덴 고양이처럼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아, 아!” 

짐은 아직 그를 위해 준비한 아름다운 선물을 보지 못했다 델라는 손바닥을 펼치고 기대감에 차서 그것을 그의 앞에 내밀었다. 그 귀금속의 창백한 빛은 그녀의 밝고 뜨거운 영혼을 반사하며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멋지지, 짐? 온 시내를 다 뒤져 찾은 거야. 이제 하루에 시계를 수백 번씩 봐도 돼. 시계를 이리 줘봐. 사슬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게.”

하지만 짐은 그 말에 따르는 대신 소파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뒤통수를 잡고 빙긋이 웃었다.

“델라, 크리스마스 선물은 잠시 다른 데 넣어 두자. 너무 훌륭한 것들이라서 바로 사용할 수가 없어. 나는 시계를 팔아서 그 빗핀을 샀거든. 이제 고기를 불에 올려도 될 것 같아.”

동방박사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놀라운 만큼 현명한 사람들로,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에게 선물을 가져왔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는 풍습을 만들었다. 그들은 현명한 이들인 만큼 선물도 당연히 현명한 것이었다. 어쩌면 선물이 겹칠 경우를 대비해서 다른 것으로 바꿀 권리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작은 아파트에 사는 두 어리석은 젊은이가 현명치 못하게도 서로를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한 보물을 희생한 시시한 이야기를 어설프게 전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명한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선물을 주는 모든 이들 가운데 이 두 사람이 가장 현명했다. 선물을 주고받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이들이 가장 현명하다. 어디에도 이들보다 현명한 이들은 없다. 바로 이들이 동방박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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