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고래 이야기

by 엔데

제제가 사는 어촌 마을에는 어떤 할아범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할아범은 여느 마을에 흔히 보이는 할아범은 아니다. 그는 제제가 살고 있는 어촌 마을 뒤편의 산 꼭대기에 혼자 살았다. 할아범은 구부정하지만 떡 벌어진 어깨에, 빛바랜 금속처럼 탄 피부를 갖고 있었다. 그가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오랜 시간 거센 풍파를 거친 나무를 보는 것 같았다. 매 월 장날이면, 그는 자기 키만 한 지팡이를 의지해 마을로 휘걱휘걱 내려왔다.

하지만 할아범은 마을에서 그다지 환영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마을 사람과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기 때문인 것도 그랬지만, 제제가 사는 마을은 그 정도로 모진 곳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경계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가 장날에 내놓는 물건 때문이었다. 할아범은 낚싯대를 팔았다. 어촌 마을에서 낚싯대를 파는 게 뭐 대수겠냐마는, 그것도 보통 낚싯대는 아닌 것이, 낚싯대는 굵어도 너무 굵었다. 먼 물가 고래도 잡을 수 있을 듯 한 그 낚싯대에는 결정적으로 낚싯줄의 끝에 바늘이 아닌 정체모를 새의 깃털이 달려 있었다.

때문에 제제의 엄마는 제제와 그물코를 꿰면서 늘 제제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할아범과 말을 섞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저런 노망난 미친 늙은이가 꼭 마을 분위기를 흐린다니까. 도대체 무슨 이상한 짓을 할지 모르니....."

그렇지만 제제 또래의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제제는 엄마의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의 말 때문에 그 할아범에 대한 궁금증이 나날이 커졌다. 적어도 할아범에 대해 생각하는 건 이런 시시한 그물코 꿰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마을에 아무도 없었다. 제제의 뒷 집에 사는, 마을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영감 떼기조차도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 사람은 내가 어릴 때도 할아범이 었으니 암. 그때도 그 이상한 낚싯대를 팔았지."

그는 도대체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을까? 그 낚싯대는 왜 팔고 있는 걸까? 혹시 이 할아범에게 어떤 무시무시하고 큰 비밀이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할아범이 궁금한 건 제제뿐이 아니었다. 어느 날, 제제와 친구들은 결국 5월의 어느 하루, 할아범의 집을 조사해보기로 했다. 저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물건들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대게는 탐정 놀이할 때 쓰는 장난감 말이다- 만난 아이들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산을 올랐다.

아이들은 맞닥트릴 수 있는 이런저런 위험과 모험을 재잘거리며 산에 올랐다. 하지만 이런, 그들은 할아범의 집에 도착하고 나서 적잖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집은 필요 이상으로 소박했다. 악마의 문양이 그려진 현관문도 없었고, 비밀스러운 출입구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경기관총도 없었다. 할아범이 잠시 집을 비운 탓에 곳곳을 수색해 볼 수 있었던 아이들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어버렸다.

제제는 집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곤 할아범이 장에 내놓곤 하는 낚싯대을 발견하곤 만지작거렸다. 그 큰 낚싯대는 할아범의 집 현관 안쪽에 몇 대가 걸려있었다. 깎고 있었는 듯 표면이 거친 낚싯대는 나무 먼지와 함께 작업대 위에 놓여있었다. 그 옆으로 얇은 줄에 매달린 깃털이 천장에서부터 매달려 제제가 일으키는 작은 바람에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제제는 걸려 있는 낚싯대를 휘둘러 보려고 했지만 어림없었다. 제제는 조금 더 작은 낚싯대를 찾아보려고 집안 이곳저곳을 뒤졌다.

제제는 고개를 숙여 할아범의 침대 아래를 뒤졌다. 침대의 어두운 구석에 무언가 울깃울깃한 것이 보여 끌어내었더니, 제제에게 꼭 맞는 깃털이 달린 작은 낚싯대를 찾았다! 마치 제제에게 주려고 만든 것처럼, 제제가 휘두르기 딱 좋은 크기였다. 낚싯대는 수천번도 더 사용된 것처럼 손잡이가 반들반들했다. 먼지가 살짝 가라앉은 깃털 찌에는 어린 새의 파란색 솜털이 붙어있었다.

제제는 그 낚싯대를 휘둘러 보러 밖으로 나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었다. 제제 이외의 아이들은 할아범의 낚싯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다른 마을 아이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집 곳곳을 들쑤시고 있었다. 제제는 두 다리를 단단히 딱에 박은 다음, 크게 휘두르기 위해 낚싯대를 잡을 손을 뒤로 크게 저었다. 예전에 사진으로 본 낚시꾼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허리를 활처럼 크게 휘고, 양 손으로 돌을 던지는 것처럼 낚싯대를 던지면 된다……. 그때였다.

"이놈들!"

할아범이 그 키만 한 지팡이를 휘두르며 나타났다. 아이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제제를 제외하고 말이다. 제제는 그만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엉거주춤 뻗은 낚싯대가 불안하게 허공에 멈췄다. 찌 역시 저만치 날아가려다 그만 공중에 힘 없이 붙어버렸다.

찌가 허공에 붙어버렸다!

파란색 솜털 찌는 마치 누가 아래에서 계속 불어주는 것 마냥 허공에 계속 떠있었다. 멀리서 보면 작은 파란색 불꽃이 자꾸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찌와 연결된 줄은 솜털 찌가 움직이는 대로 흐느적흐느적, 바람이 불면 바람 따라 흔들흔들거렸다.

제제는 엉성하게 뻗은 낚싯대와 허공에 붙어버린 찌, 그리고 할아범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사람을 처음 보는 어린 사슴처럼 말이다. 그러다 그만 손에 힘이 빠져 낚싯대를 놓쳤다. 낚싯대가 땅으로 떨어지자 허공에 붙었던 깃털 찌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닥으로 툭 떨궈졌다. 그게 신호라도 된 것처럼 제제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대로 산 아래로 도망쳤다. 제제가 도망치다가 혹여 할아범이 따라오지 않을까 하여 뒤를 돌아보았을 때, 할아범은 고개를 숙여 제제가 떨어뜨린 낚싯대를 줍고 있었다.


다음날, 제제가 마을 아이들 사이에서 일약 스타가 된 것은 두 말할 필요 없을 것이다. 먼저 도망친 아이들이 산 아래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뒤늦게 내려온 제제가 얼빠진 표정으로 내려와서는 집에 먼저 가버렸기 때문에, 아이들은 모두 할아범과 제제 사이에서 일어난 모험을-사실상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듣고 싶어 했다. 제제는 얼마간 얼떨떨한 느낌이 들다가도, 아이들이 자꾸 모험가라고 칭하자 우쭐대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제제의 설명은 아이들을 퍽 실망시켰다. 제제가 아무리 부풀리려고 해도 '겨우 낚싯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스릴 있는 내용이 없었다. 낚싯대 끝에서 악마의 하수인이라도 걸려있었다면 모를까, 겨우 찌가 공중에 떠 있는 것 정도로는 아이들을 긴장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실망한 아이들은 하나둘씩 제제의 집 앞에서 떠나갔다. 결국 제제가 뭔가 큰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마지막 아이조차 커다란 실망을 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쳇, 결국은 그냥 다 거짓말이잖아. 뻥쟁이 같으니라고."

마지막 아이가 제제 집 앞의 짱돌을 발로 뻥 차며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제제가 겪은 일은 모두 사실이었다. 정말로 찌가 허공에 붙어있었다고! 제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허공에 붙은 깃털 찌가 머릿속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아이들을 만나서 놀 때도, 밥 먹을 때도,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을 볼 때 마다도 그 낚싯대 생각이 났다. 답답한 나머지 집 뒤켠에 있는 닭장에서 어린 닭의 솜털을 뽑아 막대기에 실로 연결한 다음 허공으로 던져보았지만 이 깃털은 허공에 붙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할아범의 집에 모험을 떠났다 도망친 지 사흘째 되던 날, 그리고 마을에서 열리는 유일한 장날이 되었다. 제제는 먼발치에서 팔리지 않는 낚시대를 팔고 있는 할아범을 훔쳐보았다. 제제는 장이 파하는 저녁까지 할아범을 훔쳐보고 있다가, 산 위로 올라가는 할아범의 뒤를 밟았다. 할아범은 할아범의 키보다 두 배는 더 큰 낚싯대를 성큼 지고, 바람이 산을 타듯이 빠르게 산 위로 올랐다. 제제는 탐정 소설에서 보던 것처럼 나무 뒤에 숨어서 '엄폐'하려고 했지만-제제와 아이들은 이 단어를 쓰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곤 했다- 할아범이 너무 빠르게 올라가는 탓에 엄폐는커녕 자신의 소리마저 죽일 수도 없었다.

결국 할아범을 따라서 산을 다 올라갔을 때, 제제는 자신의 기척을 숨길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땀으로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다리는 후들거려서 단 한 걸음도 못 뗄 지경이었다. 그때 할아범은 낚싯대를 잘 끌러놓고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컵에 물을 한 사발 컵에 담아 나왔다. 옅은 갈색이 도는, 기분 좋은 단맛이 나는 물이었다.

제제는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도 할아범이 주는 물을 덥석 받아먹었다. 제제가 숨을 좀 돌려 정신을 차렸을 때 할아범은 말없이 나무 밑동을 베어 만든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제제는 할아범의 눈치를 살폈지만, 할아범은 그다지 화난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수염 뒤로 숨은 그의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좀처럼 살펴볼 수 없었다. 제제는 조심스럽게 - 이미 들켜서 낭패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 할아범이 가리킨 의자에 앉았다. 할아범은 날이 뉘엿뉘엿할 때까지 나무를 하고, 장작을 가지런히 모아서 잘 여몄다. 나무 톱밥까지 정리를 마치니 해가 산의 끝자락에서 붉게 걸려있어 여차하면 넘어갈 듯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제제에게, 할아범이 말했다.

"해가 다 지기 전에는 내려가려무나."

할아범의 말을 따라 제제는 컵을 내려놓고, 배꼽까지 인사를 한 뒤 산을 내려왔다. 할아범은 생각만큼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이튿날에도 제제는 할아범을 만나러 갔다. 이번엔 해가 지는 저녁이 아니라 점심이 막 지난, 해가 쨍쨍한 오후였다. 할아범은 마침 점심을 다 먹고 그릇을 치우고 있었다. 제제는 뭔가 떳떳하지 않은 기분이 들어 쭈뼛거리며 할아범에게 다가갔다. 할아범은 그런 제제에게 산에서 나는 견과류로 만든 쿠키 같은 것을 한 개 주었다. 그리고는 어제처럼 나무 밑동에 앉아있으라고 권했다. 할아범은 제제가 전혀 없는 것처럼 일을 했다. 그래도 이따금 제제를 곁눈질로 살펴보는 것을 보면, 제제를 꽤나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 뒤로도 제제는 할아범을 종종 찾아갔다. 아니, 거의 매일 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물코가 꿰기 싫을 때나, 엄마의 잔소리가 듣기 싫을 때, 친구들과 싸웠을 때, 제제는 산에 올랐다. 제제는 할아범이 꽤 편하게 느껴졌는데, 우선 그는 제제에게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은 만나는 인사와 헤어질 때를 제외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날조차 있었다. 그는 무어만 하면 잔소리를 하는 마을의 어른들과는 달랐다. 무얼 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청소도 시키지 않았고, 밥 먹을 때 쩝쩝 소리를 내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다.

제제가 할아범의 집으로 놀라가서 하는 일은 별 것 없었다. 제제는 할아범이 주는 쿠키나 간식을 받아먹고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거나, 하늘을 보거나, 땅의 벌레들을 관찰했다. 그리고 할아범이 부지런하게 집안일을 끝내고-혼자 산속에 산다는 것은 꽤 많은 노동을 요한다- 산속 어딘가에서 잘라온 반들반들하고 굵은 나무로 그 이상한 낚싯대를 만들 때면, 옆에 가서 조용히 그 작업을 구경했다. 수백, 수천번은 더 만들어 본 듯 익숙하고 확실한 손길은 제제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제제는 이따금 땅에 떨어진 도구를 주워준다던가, 작업대 위의 잔 톱밥들을 치우는 것을 종종 도왔다. 할아범은 대를 다듬고, 대 끝에 구멍을 내어 실을 매단 다음, 정체모를 산새의 깃털- 필시 꽁지 깃 일터였다-을 꿰었다.

할아범이 다 만들어진 낚싯대를 시험해보는 것은 제제가 가장 보기 좋아하는 광경이었다. 할아범은 다 만들어진 낚싯대를 집 앞의 공터로 가지고 나가 휘둘렀다. 낚싯대는 큰 바람소리를 내면서 허공을 갈랐다. 찌는 허공을 끝도 없이 올라가다가, 마치 그 자리에 멈춰있을 것처럼 하더니, 그냥 떨어져 버렸다. 그럴 때면 할아범은 뭔가 미묘하게 안도의, 하지만 어딘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제제가 본 이후로 한 번도, 제제가 보았던 그 작은 낚싯대처럼 허공에 찌가 붙지는 않았다. 제제는 왜인지 모르게 침대 밑의 그 작은 낚싯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할아범이 그 작은 낚싯대를 쓰지 않는 건 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렇게 제제가 할아범의 집을 자주 놀러 가던 무렵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아침부터 스산하더니, 곧 홍수라도 내릴 것처럼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제제는 할아범을 잠깐만 보고 와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산을 올랐다. 비가 오기 전에 내려와야지 하고 생각하며 말이다.

할아범은 평소와 다르게 집 앞 나무 발코니에 앉아있었다. 집안을 부지런히 쓴다던가, 낚싯대를 만들고 있지 않았다. 그저 앉아있었다. 제제가 온 것 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무언가 불안하고 초조한 듯 의자 팔걸이를 잡고 있는 손가락을 연신 팔걸이에 퉁겨대었다. 그리곤 곧 비가 내릴 것 같은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눈에는 먹구름보다 더 어둡고 깊은 것이 서렸다. 제제의 눈에는 마치 할아범이 깊은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제제는 할아범의 표정을 보면서 어디선가 본 표정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건 엄마가 종종 짓곤 하는 표정이었다. 몇 해 전 돌아오지 않을 작은 나룻배를 타고 나간 아버지를 배웅한 이래, 엄마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런 표정을 지었더랬다. 제제는 엄마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면 감히 방해할 수 없었다. 제제는 그것이 깊은 물이 사람을 잡아당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발목을 잡고 끌어당기는 것처럼 계속해서 수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 것 말이다.

할아범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누군가 잡아주지 않으면 익사할 것이다. 실제로 물에 숨이 막히지 않더라도 영혼은 익사할 수 있다. 그리고 뭍으로 끌어올려진 영혼은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제제는 할아범 옆에서 그런 것을 느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휩쓸려서 떠내려가는, 절망적으로 헤엄치지만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영혼의 존재를.

제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손을 잡아 주 것 밖에는 없었다. 제제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어른들이 하는 것처럼 같이 고충을 들어준다거나, 술을 같이 마신다거나 하는 일을 할 수 없는 어린아이 말이다. 제제는 불안한 리듬으로 손걸이를 치고 있는 할아범의 두꺼운 손가락에 자신의 손을 갖다 대었다. 차갑고 축축하고 거친 손 위에 제제의 손이 포개졌다.

할아범은 마치 긴 겨울잠에서 정신을 차리는 곰처럼 깨어났다. 할아범도 몰랐고, 제제는 더더욱 몰랐지만 그 순간 할아범은 구원받았다. 마치 코르크 마개가 물에 뜨는 것처럼, 깊은 수렁에서 할아범의 영혼이 퉁겨져 나온 것이다. 할아범은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제제를 발견했다. 아직도 몸은 떨리고 식은땀으로 축축했지만, 옆에 있는 이 어린아이까지 그렇게 만들 수는 없었다.

할아범은 몸을 일으켜 불가로 향했다. 죽어가는 불을 살리고, 물을 올려 따뜻한 차를 만들었다. 컵 두 개에 차를 가득 담아 할아범은 다시 밖으로 향했고, 제제에게 한 잔을 준 뒤 자신도 다시 의자에 앉았다. 제제가 보기에 할아범은 다시 꽤 괜찮아진 것 같았다. 어린아이 하나와 늙은이 하나의 시선이 비가 우중충 내리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하늘을 지치지도 않고 응시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빗줄기가 약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바람은 세찼고, 멀리 바닷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렸다.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며 포말이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빗줄기가 약해져서일까, 제제와 함께 있어서 일까 - 할아범은 옛날 일을 차근차근 생각해내었다. 할아범을 물속으로 잡아가던, 비가 세찬 날마다 할아범의 영혼을 파괴하는 그 일을 말이다.

"옛날엔 말이다…."

아직 잠긴 할아범의 목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제제는 먹구름을 바라보다가, 할아범이 말을 시작하자 할아범을 바라보았다. 할아범은 딱히 제제를 바라보고 말하지는 않았다. 제제한테 이야기하는 투였지만, 사실은 제제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나도 원래 저기 아래 마을에 살고 있었단다."

이야기를 하려니, 할아범은 목이 메어왔다. 한 번도, 그때 이후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옛날 이야기였다.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내가 너 나이쯤 되었을 때였겠구나. 그때도 지금 마을같이 고기를 잡는 마을이었지. 하지만 조금 달랐단다-

지금도 눈에 선하구나. 어른들이 고기를 잡는 모습이 말이야. 지금이야 바닷속에 있는 생선만 잡지만, 어른들은 하늘 고기을 잡았었지. 하늘 고기 말이야. 본 적 있느냐?(제제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마 없을 게야. 지금은 아무도 잡지 않지. 하늘 고기는 바다 생선이랑 생김새는 비슷한데, 좀 더 아가미가 크고, 아주아주 가볍단다. 탁, 하고 놓으면 위로 두둥실 뜨지. 그리고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서 하늘로 헤엄쳐가고 말이야. 큰 풍선에 잡은 하늘 물고기들을 집어넣으면 장정 댓 명은 그냥 딸려 올라가곤 했단다. 하늘 물고기는 맛도 좋았어. 솜사탕처럼, 정말 부드러운 우유은 맛이 났지. 아주 인기가 많았어. 한 번은 소문을 듣고 멀리 살고 있는 어느 왕국에 까지도 진상한 적 있었단다. 사절들이 맛을 보고 놀라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었지."

할아범은 여기까지 말하고 차를 홀짝였다. 입에는 옅은 미소까지 드리워져있었다.

"하늘 물고기는 구름 속에 살아. 그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을 잡아먹었단다. 높이 나는 새들 말이다. 가끔씩 구름 속에서 나온 기러기 중에서 한 마리가 사라져 있거나 하지 않느냐? 그게 다 하늘 고기가 채가서 그런 거란다.

이 녀석들은 모두 구름에 살기 때문에, 잡기가 어려워. 구름이 높은 맑은 날에는 잡을 수 없었지. 그래서 먹구름이 낀 비 오는 날이나,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밖에 하늘 고기를 잡으러 갔단다. 지금 제제, 너의 마을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낚싯대를 손질하고, 줄을 꼬고, 하늘 찌를 달았지.

하늘 찌가 뭐냐고? 높이 나는 새의 꽁지깃이란다. 그래, 물고기로 치면 미끼지. 하늘 고기도 서로 먹는 새가 달라서, 서로 어떤 고기를 잡을 거냐에 따라서 꽁지깃이 달라졌단다. 몸이 긴 갈치 같이 생긴 녀석은 앨버트로스를 먹고, 둥글고 납 자하 게 생긴 하늘 가자미는 기러기를 먹었지. 비가 올 거 같이 우중충한 날에는 하늘 낚싯대에 걸린 형형색색의 꽁지깃이 바람에 날렸단다. 그런 날 바람이 불면 구름 아래로 헤엄치는 하늘 고기들이 보였지.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가로 가야 하듯이, 하늘 고기를 잡으려면 높은 산으로 올라야 해. 그래. 바로 이곳이야. 여기까지 올라와서 어른들은 하늘 낚시를 했어. 비 오는 날, 어른들은 모두 이런 큰 낚싯대를(할아범은 뒤를 가리켰다) 다섯 개 씩이나 지고 산을 올랐지. 그리고 그 큰 손으로 낚싯대를 휘두르면, 찌가 하늘까지 닿아서 걸렸단다. 그야말로 구름에 찌가 걸리는 거지. 조금 기다리고 있으면 구름 속에 있던 하늘 고기들이 모여들어. 줄이 팽팽해지면서 입질이 오고, 걸렸다 싶으면 줄을 감았었다. 개중엔 정말 힘이 좋은 것들이 있어서 딸려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어. 손바닥만 한 녀석부터 어른 정강이 만한 거, 거의 어린아이 만한 고기도 있었지."

할아범은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정말로 잡고 싶어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단다. 하늘 고래지. 하늘 고래. "

할아범의 눈에 어린아이의 생기가 돌았다. 제제는 잠자코 할아범의 말을 듣고 있었다. 할아범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제제는 저기 보이는 먹구름 뒤에 몸을 숨긴 하늘 고래-본 적은 없지만-을 상상했다. 백과사전에서만 본 고래의 이미지에 날개가 달린,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늘 고래를 말이다. 옛날이야기를 하는 할아범은 이제는 거의 일어난 상태였다.

"하늘 고래는 거의 구름 자체란다. 엄청나게 크고, 잘 보이지도 않지. 이 녀석들은 오직 태풍이 오는 날에만 모습을 보인단다. 나도 한번, 딱 한번 본 적 있지. 유난히 태풍이 심한 날이었는데, 먹구름이 거의 산 끄트머리에 걸릴 정도로 구름이 낮았다. 그때 우리 위를 스쳐 지나가듯 지나가는 구름 고래를 보았어. 그 심한 바람 속에서도 느린 춤을 추는 것 같이 우아했지. 그때는 그게 뭔지 몰랐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단다. 경이로웠다고 말이다.(제제는 경이라는 말을 알지 못했다)

제제야, 너는 상상할 수 있느냐? 집채만 한 크기로 하늘을 나는 구름 고래를? 어른들은 항상 구름 고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단다. 저기 보이는 저 구름 고래가 작년에 온 그 녀석이고, 저기 배에 물결무늬가 있는 게 동쪽 바다에서 건너온 녀석이라는 둥 말이다.

나도 구름 고래를 꼭 잡고 싶었어. 아니, 마을 모두가 구름 고래를 잡고 싶어 했어. 마을 꼬맹이라면 모두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훌륭한 하늘 어부가 돼서 구름 고래를 잡고 싶다고 말이다. 하지만 하늘 어부가 되는 것은 매우 위험했단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여차하는 순간 하늘로 딸려 올라가게 돼서 영영 없어져 버리니까. 우리는 그걸 긴 여행을 갔다고 불렀단다.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긴 여행을 구름 고기와 함께 하는 거지."

할아범은 이제 집 난간을 붙잡고 저 멀리 먹구름을 바라보았다. 제제는 할아범의 눈이 먹구름 속을 헤엄치는 구름 고래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할아범은 잠시 말없이 하늘을 응시했다. 다시 이야기를 꺼내는 할아범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전보다 더욱.

"그러던 어느 날이었단다. 그즈음은 마을이 몹시 힘들었지. 날이 너무 가물었던 거야. 비도 가랑비나 겨우 내렸으니까. 하루 종일 낚시를 해도 겨우 손가락 몇 마디나 될까 한 송사리만 잡혔다. 마을이 망하는 게 아니냐, 그런 이야기가 몇 번이나 어른들 사이에서 오갔지. 하지만 별 수는 없었어. 그냥 하늘에 맡기고 모두 흐린 날을 애타게 기다렸지. 그렇게 힘들던 도중 태풍이 왔단다. 우리는 모두 크게 반겼지.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준비를 단단히 하고 그야말로 마을 사람 모두가 산으로 올라갔어.

우리는 신나게 하늘 낚시를 시작했었다. 물론 우리에서 나는 빼야겠지. 나는 낚싯대를 휘두를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어른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구름 속의 구름 고기들을 살폈어. 저쪽 높은 구름에는 뭐가 있으며, 저쪽 낮은 먹구름에는 뭐가 있다는 둥 말이다. 어른들은 앞다투어 하늘로 찌를 던졌지. 오랜만의 폭풍이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찌를 하늘에 넣는 족족 하늘 고기가 딸려왔어. 나 같은 꼬맹이뿐 만 아니라, 어른들도 무척이나 흥분한 상태였지. 커다란 풍선이 거의 가득 찰 정도였으니까."

할아범은 당장이라도 그날의 그 광경이 보이는 듯했다. 잠시 동안은 그때의 어린이로 돌아간 것이다. 하지만 곧이어 할아범의 얼굴에 저 하늘과 같은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 고래가 나타났단다."

할아범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미간에는 주름이 잔뜩 끼고, 일순 10년은 더 바짝 늙어버린 것 같아 보였지만 동시에 평온해 보였다. 할아범의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폭풍이 몰아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가까이서 구름고래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잠시 모두가 황당했어. 원래 구름 고래는 그렇게까지 가까이 내려오지 않거든. 하얀 배를 뒤집어서 구름을 박차 오를 땐 거의 구름 고래의 머리가 지면에 닿는 듯했었다."

할아범은 입이 타는 듯 따듯한 차로 입을 축였다. 제제도 할아범과 같이 차를 마셨다. 차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어른들이 겨우 먼저 정신을 차렸지. 곧 구름 고래를 잡을 때 쓰는 특별한 낚싯줄을-거의 사람 장딴지 만한 굵기의 낚싯줄이란다-걸고, 대붕새의 깃털을 찌로 달았지. 모두가 잔뜩 흥분해 있었다. 저 고래만 잡으면,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거니까. 앞으로 몇 달은, 어쩌면 몇 년은 든든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말이야. 마을 어른들은 힘을 합쳐서 낚싯대를 하늘로 던졌다. 하늘 찌는 떨어질 듯하다가 간신히 구름이 걸렸고 우리는 구름 고래가 찌에 관심을 갖기를 기다렸어. 그 하늘 고래도 배가 많이 고팠는지 어른들이 찌를 띄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질을 했다."

할아범의 목소리가 고통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그때 그만뒀어야 했어. 어른들이 너무 욕심을 부린 거였지. 딸려가지 않기 위해 박아둔 대못이 빠지던 순간, 어른들은 그냥 낚싯대를 놨었어야 했어. 하지만 선을 넘었던 거야."

할아범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제의 눈엔 할아범이 내쉰 한숨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제제는 할아범의 한숨에 뭔가 까만 저 같은 것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구름 고래는 찌를 물자마자 구름 속으로 달아나려고 솟아났다. 어찌나 세던지, 대못도 힘을 못쓰고 뿌리째 뽑혀버렸어. 하지만 어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결국 하늘로 딸려 올라갔다.

폭풍우가 멎고, 마을 아래 남아있던 어른들이 올라왔을 땐 나 같이 낚싯대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고 하더구나. 그때 나의 부모님은 모두 여행을 가버리신 거지. 먼 여행을 말이다. 겨우 어린아이에 불과한 나를 두고. 그리고 대부분의 하늘 어부가 사라진 우리 마을은 그대로 뿔뿔이 흩어져서 망하고 말았단다. 할 줄 아는 거라곤 하늘 고기 잡는 거밖에 없는 사람들이 더 이상 무얼 하고 살겠니. 앞집이었던 낚싯대 만드는 집이 마지막으로 마을을 떠났을 때, 나는 그들이 남긴 하늘 낚싯대 만드는 장비를 가져와서, 혼자 낚싯대를 깎았어. 어렸을 때 본 걸 기억해내서 말이다."

할아범은 이제 다 그쳐 가는 폭풍우를 바라보았다. 바람도 약해져서 폭풍이라기보다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에 가까웠다. 야심한 밤이었고, 약해져 가는 폭풍 뒤로 밝은 달이 보였다 가려졌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내가 깎은 낚싯대는 도무지 하늘로 붙지를 않더구나. 몇 번을 다시 깎고, 깃털을 붙이고 해도 도저히 어른들이 하던 것처럼 되지 않았어. 지금까지 벌써 몇 번이나, 수백, 수천, 수만 개의 낚싯대를 깎았지만 말이다. 딱 하나, 어른들이 나에게 주었던 장난감 낚싯대를 빼고 말이다."

할아범의 눈은 이제 제제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제제는 이미 절반은 꿈의 나라로, 절반은 밤의 빗소리에 잠겨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더 이상 할아범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할아범은 제제를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켜서 집 안에서 가장 두터운 이불을 꺼내서 앉아서 자고 있는 제제에게 덮어주었다. 그리고 제제가 듣던 말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른들이 나에게 남기고 간 건 그 작은 장난감 낚싯대가 다였어. 이제 그 낚싯대의 세세한 것들까지 다 기억해버렸지. 무게는 어떠한지, 깃털은 어떻게 묶여있는지, 어떤 나무를 썼는지. 나는 도대체 무얼 바래 낚싯대를 깎아온 것이겠느냐? 장난감 낚싯대와, 머릿속에 희미하게 남은 기억만으로 낚싯대를 깎아왔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렇게 늙고도 말이다. 도대체 모르겠단 말이다. 나는 왜, 무엇을 위해서 낚시대를 깎았을까."

할아범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곤 일어나서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그 작은 하늘 낚싯대를 꺼냈다. 그 작은 낚싯대를 보던 할아범은 조심스럽게 찌를 던져 허공에 붙였다. 파란색 찌가 허공에 붙은 모습을 할아범은 무덤덤하게 바라보았다.

"아니, 아니다……. 나는 어쩌면 항상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말이다."

할아범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해가 뜰 때까지 허공에 달린 찌를 바라보았다.


다음날 아침, 화창한 해가 떴다. 전날의 폭풍 때문에 내려가는 길이 조금 질척이기는 했지만, 제제는 신나게 마을로 내려갔다. 아침을 먹지도 않았지만 힘이 잔뜩 났다. 산을 내려오는 제제의 손에는 낚싯대가, 할아범의 작은 장난감 하늘 낚싯대가 들려있었다. 이걸로 애들한테 잔뜩 자랑할 수 있다! 제제의 눈에는 허공에 달린 찌를 보면서 환호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고 나면 할아범이 해주었던 이야기를 해줘야겠다. 구름 속에 사는 하늘 고기들을 말이다. 그리고 집채만 한 구름 고래도.

하지만 제제가 산을 다 내려와서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제제의 엄마를 비롯한 마을 사람 모두가 제제를 찾기 위해 뿔뿔이 흩어진 것이었다. 폭풍우가 불던 어제저녁, 집에 돌아오지 않은 제제를 걱정한 엄마는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곧장 수색대가 꾸려졌고, 엄마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제제가 갈만 한 곳을 밤새워 뒤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할아범의 집은 폭풍우가 치는 밤 갈 정도로 쉬운 길이 아니어서 들르지 못한 것이었다.

당연히 제제는 어마어마한 꾸지람을 들었다. 마을 애들한테 낚싯대를 자랑할 기회도 없이 말이다. 마을 어른들의 꾸중을 들으며 집에 온 제제는 꼼짝없이 집에 갇혔다. 제제가 할아범의 이야기를 엄마에게 들려줘봤자 엄마의 화만 더 돋울 뿐이었다. 엄마는 제제의 말을 믿지 않았다. 노망난 할아범일 뿐이라면서 말이다.

제제는 답답한 나머지 할아범이 선물로 준 낚싯대를 휘둘렀다. 할아범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으니까. 하늘 물고기, 그리고 저 위에 살았던 할아범의 마을 사람들은 진짜라고 말이다. 그리고 날이 흐리면 나타나는 거대한 구름 고래도 역시 진짜라고. 하늘 찌는 공중에 보란 듯이 떡 붙었다.

하지만 하늘 낚싯대는 엄마의 화를 폭발시켜 버렸다. 엄마는 제제의 팔에서 곧장 낚싯대를 낚아채서 그대로 부셔버렸다. 탁 하는 마른나무 부서지는 소리가 나며 낚싯대가 반으로 부러졌다. 하늘에 붙어있던 찌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바닥으로 풀썩 떨어졌다. 제제는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제대로 소리 내서 울 수도 없었는데, 엄마가 그만큼 화난 것은 처음 보기 때문이었다.

제제는 어렴풋하게 엄마가 제제에게서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제제의 엄마의 얼굴에 어젯밤 할아범의 얼굴이 겹쳐 떠오른 것이다. 잠결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 할아범이 지었던 얼굴을 엄마가 지금 짓고 있던 것이다. 할아범은 한없이 침전하는 부류의 사람이고, 엄마가 정 반대였다는 것만 다를 뿐 같은 감정이라는 것을 제제는 이해했다. 그래서 제제는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고 속으로 울움을 삼켜야 했다.

다만 제제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마을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할아범을 마을에서 내쫓자고 한 것이다. 장날에 출입시키지 말자고 말이다. 산속에 사는 사람에게 장을 통한 물건 조달은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에, 장에 출입 못한다는 것은 곧 추방을 의미했다. 당연히 제제는 그러한 사실을 시간이 꽤 흐른 뒤에나 알 수 있었다. 그러한 결의가 있고 나서, 어른들은 재빠르게 마을 대표를 정해 산을 올랐다. 쉽지 않은 산행 끝에 마을 대표단은 할아범의 집에 도착했고, 할아범은 마을 사람들의 일방적인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고 한다.

당연히 거센 반발에 부딪칠 줄 알았던 마을 대표단은 적잖이 당황했다. 사실상 말이 추방이지, 할아범에겐 더 이상 갈 곳도 없지 않겠는가. 마을 사람들은 말은 그렇게 했어도, 어쩌면 너그럽게 넘어가 주자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산속은 자급자족하기엔 너무나 외롭고 험한 곳이었다. 마을사람들이 하는 짓은 살인과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미 말을 내뱉은 이상 주워 담을 수 없었고, 무덤덤하게 배웅하는 할아범을 뒤로한 채 마을 대표단은 마을로 내려왔다. 서로를 다독이면서 말이다. 서로 옳은 일을 했다고 다독이면서, 무언가 죄지은 어린아이처럼 잔뜩 움츠러든 채로.


할아범이 선물로 준 낚싯대는 두 번 다시 허공에 붙는 일이 없었다. 제제가 부러진 낚싯대를 고쳐보려 별 수를 다 내보았지만 모두 실패해버렸다. 낚싯줄을 떼내어 집에 굴러다니는 바다 낚싯대에 붙여봐도, 도무지 찌는 허공에 붙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다음 장날 즈음, 제제가 할아범의 집에 갔었던 그 날처럼 세찬 폭풍이 몰아쳤다. 바다에 배를 며칠째 띄우지 못할 정도로 큰 폭풍이었다. 바다가 하늘로 빨려 올라갈 것만 같이 크게 용솟음쳤고, 먹구름은 당장 땅으로 달려들 것 같이 낮게 깔렸다. 할아범이 살았던 저 산 봉우리는 먹구름에 잠길 것 같이 보였다.

세찬 비 사이로 번개가 쳤다. 한 순간 마을과 바다, 산이 모두 환하게 밝혀질 정도로 큰 번개였다. 그리고 제제는 번개와 까만 먹구름 사이로 헤엄치는 무언가를 보았다. 번개가 칠 때마다 간간히 보이는 실루엣을 제제는 똑똑히 보았다. 구름 고래였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었지만 제제는 저 먹구름을 유유히 헤엄치는 게 구름 고래라는 것을 알았다. 고래는 거의 산 봉우리만 해서 움직이는 구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구름 고래는 세찬 바람과 작열하는 번개에서도 유유하게 헤엄쳤다.

그 구름 고래는 할아범이 살았던 산 봉우리를 몇 번이고 빙글빙글 돌더니, 그대로 다시 바다 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제제는 멀어지는 구름 고래 아래 어렴풋이 무언가가 달려있는 것을 보았다. 아니, 본 건 같았다. 그건 할아범이었을까? 마침내 하늘 낚싯대를 만들어서 가족을 찾으러 떠나는 할아범일까? 긴 여행을 떠난, 먼저 떠난 가족을 찾아 헤매는 할아범의 여정이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그저 하늘 고래 주위를 떠돌던 다른 하늘고기일 지도, 그것도 아니면 그저 제제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다. 제제는 눈을 비비며 다시 한번 찌푸려 자세히 보려고 했지만 이미 구름 고래는 바다 저 멀리 하늘로 헤엄쳐 가고 있었다.

제제는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는 하늘 낚싯대를 집었다. 그리고 가위로 하늘 찌에 메여있는 끈을 잘랐다. 창문을 열자 비가 세차게 방으로 쏟아져 들어왔지만 제제는 개의치 않았다. 이제 하늘 찌는 평범한 깃털과 같아 보였다. 제제가 창 밖으로 깃털 찌를 던지자 하늘 찌는 하늘로 솟구쳤다. 제제는 하늘 찌가 하늘에 붙은 것인지 그저 바람에 의해 날아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제제는 날아가는 깃털을 잠시 바라보다가 창문을 닫았다.

폭풍이 멎은 다음날, 마을 사람들은 인근 바다에서 물에 퉁퉁 불은 한 시체를 건져내었다. 물에 잔뜩 불었을 뿐만 아니라 물고기들이 잔뜩 쏘아먹은 터라 신원을 특정하기는 힘들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 불쌍한 사람이 할아범이라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종의 눈빛을 교환한 후, 시체를 산 중턱 어딘가에 묻어버렸다. 그게 다였다.

이전 01화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