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남자와 정사 중인 아내를 보았을 때, A씨의 머릿속에서는 어째서 인지 북유럽 신화의 프레이야 여신이 떠올랐다. 목걸이를 위해서 난쟁이 네 명과 동침을 했다는 신화 속의 여신. 어쩌면 저 하얀 이불을 들추어보면 난쟁이 네 명이 있을지도 몰라 라고, A씨는 자신을 다독였다. 이불 속에, 어디까지나 신화 속에서의 난쟁이 네 명이 신화 속의 아내와 섹스를 하고 있는 것 일 수도 있다고. A씨는 그것을 확인해 보려고 했지만, 그 번잡한 신음소리나 거친 숨소리 같은 것이 칠판을 긁는 소리처럼 A씨의 신경을 긁어댔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A씨는 조용히 문을 닫고 집을 나섰다. 그가 집을 나설 때 까지도, 그 소음은 계속 이어졌다.
밖에서의 차갑고 착 가라앉은 공기와 마주치고, 몇 걸음 못가 A씨는 구토를 했다. 하지만 전혀 메스껍다거나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치 숨 쉬는 것처럼 구토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심지어 뒷맛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행인 몇 명이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A씨는 와이셔츠의 소매 부분으로 입을 대강 닦고, 몇 방울의 토사물이 튄 자신의 구두를 쳐다보았다. 때가 탄 검은 에나멜 구두에 토사물만 광택을 받아 빛나 보였다. 꽤 오랜 시간 그것을 바라보다가 A씨는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A씨는 통 알 수 없었다. 멀리 가야 할지, 가까이 가야 할지,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통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자신의 지갑과 핸드폰 같은 것이 들어있는 서류 가방까지 집에 놓고 왔다는 것을 깨달은 A씨에게는, 주머니에 남아있는 영문모를 5천 원짜리 한 장과 몇백 원 정도가 전부였다. 아마 지금쯤이면 가방을 발견했으리라-아내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A씨는 무작정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모퉁이가 나오면 길을 꺾고, 신호등에 운 좋게 파란불이 켜지면 건너갔다. 행인이 많은 곳을 따라가다가도, 아무도 없는 골목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가끔 뛰어가기도 했고, 마치 지뢰라도 있는 것처럼 발 뒤꿈치를 들고 조심스럽게 아스팔트를 밟기도 했다. 광장에서는 빨간색 보도블록만 밟으면서 걸었고, 도로의 경계석만 따라서 걷기도 했다.
A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을 때, A씨는 자신이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도심의 한 복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집에서 나왔을 때 낮게 걸려있던 해는 어느새 지고, 그 자리를 간판의 불안한 전등이 채우고 있었다. 도로의 차들은 험상 궂은 태도로 사람들을 질식시키려 하였다. 하늘을 절반쯤 메운 상가 건물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오고 들어갔다. 마치 거대한 고래가 물질하는 것 같았다. A씨는 도로의 중간에 있는 더러운 벤치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틀거리면서 걷는 사람들,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 사람들, 크게 웃는 사람들, 물구나무 서 있는 사람들,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 또각거리면서 걷는 사람들,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A씨의 앞을 지나갔다. 하지만 A씨에게 그들의 눈은 똑같이 슬퍼 보였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이 보였다.
그 눈들을 보자니 A씨도 자신의 눈은 어떤 상태인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줄곧 노란 빛을 쏟아내는 어떤 옷가게의 쇼윈도에 다가갔다. 쇼윈도 안에는 기괴하게 팔을 꺾고 있는 마네킹들이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다. A씨는 그중에서 가장 덜 기괴하게 자세를 잡고 있는 마네킹에게 다가가서, 마네킹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았다. 작은 먼지 하나 조차 붙어있지 않은 유리창에 A씨의 얼굴이 비쳤다. 유리 속의 A씨는 마네킹이 입은 옷을 입고 있었다. A씨와 유리 속의 A씨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눈에 아무것도 없음을, 그 텅 빔을 발견했을 때, A와 유리 속의 A씨는 똑같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A씨와 유리 속의 A씨는 자신들의 눈 속에서 무엇이라도 더 찾아보려고 했지만, 허사였다. 눈은 비어있었다.
그렇게 계속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눈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 A씨와 유리 속의 A씨를 방해한 것은, 어떤 목각인형이었다. 아니, 어쩌면 목각인형 같은 소년일까?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A씨의 손을 잡는 그 소년의 손의 감촉이 대단히 나무 같았다는 것이다. 그 갑작스러운 감촉에 A씨와 유리 속의 A씨는 자신의 손을 잡은 상대를 쳐다보았다. A씨의 시선 끝에는 자신의 절반 정도 되는 키의 아이가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피노키오예요."
갑작스러운 인사말에, A씨는 그 텅 빈 눈길로 피노키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손의 촉감이 따뜻한 나무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는 지금 아름다운 푸른 요정님을 찾고 있어요.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아이-그러니까 피노키오-의 말 중에 아름다운 푸른 요정이라는 단어가 마치 살아있는 활자처럼 그의 머릿속을 떠다닌다. 아름다운 푸른 요정. A씨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피노키오에게 말했다.
"잘 모르겠단다. 그게 누구니?"
"아름다운 푸른 요정님이요. 아름답고 파란색으로 빛나는 요정님이에요."
"좀처럼 본 적은 없는 것 같구나. 들어본 적도 없고. 그 요정님을 왜 찾는 거니?"
"요정님을 찾아서 제가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부탁드릴 거예요."
A씨는 피노키오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피노키오의 눈 만이, 어떤 사람에게서도 보지 못한- 특히, A 씨 자신에게서는 찾을 수 없었던 어떤 반짝거리는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빛이 너무 눈부셔서, A씨는 눈을 조금 찌푸려야 했다.
"왜 사람이 되고 싶니?"
"사람은 반짝반짝 빛나고 말랑말랑하니까요. 그건 좋은 거예요."
"하지만 나는 사람인데 반짝반짝 빛나지도 않고 말랑말랑 하진 않는구나."
"그건 분명히 그것들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거예요. 사람들은 종종 그걸 잃어버리곤 하거든요."
피노키오의 대답에 A씨는 집에서 있었던 아내와 다른 남자의 정사가 떠올랐다. 하얀 이불과 소리가, 그 움직임이 생생하게 되살아 나면서 다시 한번 그를 그 자리에 데려다 놓은 것 같았다. 그래 여보. 우리는 모두 반짝반짝 빛나고 말랑말랑한 어떤 걸 잃어버린 거야. 어디에 그걸 두고 왔을까? 주머니에서 굴러 떨어진 걸까? 우린 이제 반짝반짝 빛나지도, 말랑말랑 하지도 않아. 우리는 정말 목각인형 같은 것이 되어버린 거야. 줄에 매달린 인형 말이야.
"아저씨도 그걸 잃어버린 거예요?"
"그런 것 같구나."
"그럼 같이 아름다운 푸른 요정님을 찾아갈래요? 요정님은 착하니까, 아저씨 것도 찾아줄지 몰라요."
"그럴까?"
"당연하죠."
피노키오는 A씨를 잡아 끌었다. A씨와 피노키오는 손을 잡고 거리를 걸었다. 그리고 문득 A씨는 자신이 목각인형이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다 목각인형인 것 같이 느껴졌다. 목각인형의 세계에서, 그는 사람 인체 하고, 다른 사람들도 사람 인체 하는 것이다. 아내도, 그 남자도, 프레이야 여신도, 네 명의 난쟁이도. 그의 주위를 걷는 사람들, 울 것 같은 그 사람들도. 그리고 정말로 어쩌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이 피노키오라는 목각인형만이 진정한 사람일 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요정님을 찾을 수 있는 거니?"
"그건 잘 몰라요. 하지만 계속 걷다 보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A씨는 딱히 피노키오의 말에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몇 걸음 걷자 소년의 말이 맞는 것 같이 여겨졌다. 계속 걷다 보면 찾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A씨는 끝까지 그의 마음속에 있는 한 가닥의 의구심을 버릴 수 없었다. 우리는 그 반짝반짝거림과 말랑말랑함을 되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변형되어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임계치를 넘어간 것이 아닐까? 요정은 과연 우리에게 그것을 되찾아 줄 수 있을까?
A씨와 피노키오가 도로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간다. 과연 그들이 아름답고 푸른 요정을 만났을까? 그리고 그 요정은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진
Elicia Edijanto,Indone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