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body gotta learn sometimes
저는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반복해서 보기를 좋아합니다. 같은 영화를 반복하여 볼 때만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이 있기 때문인데요. 그 감정은 ‘영화는 그대로이지만 내가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저를 돌아보는 리트머스 종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제겐 그런 영화들이 몇 개 있습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리고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터널 선샤인>까지, 이 영화들을 보는 것은 마치 연례행사 같은 것이 되어 버렸죠.
뜨거운 사랑이 끝나고 난 뒤, 사람들은 이런 생각들을 하곤 합니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그녀)와 함께했던 기억을 전부 지워버리고 싶다'. 이 영화는 이런 생각들에서 시작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별한 반려자와의 기억을, 바람 핀 애인과의 기억을, 세상을 떠난 애완동물에 대한 기억을, 모두들 그렇게 상처를 안은 채 기억을 지워준다는 라쿠나 주식회사를 찾아옵니다. "발렌타인 데이여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라쿠나 주식회사 직원의 대사는 영화가 던지는 지독한 농담이죠.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모든 물품을 가져와 그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되밟으며 지워나간다는 설정 또한 의미심장합니다. 이렇게 사랑했던 누군가와의 기억을 지워내고 나면 과연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의 구절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미래를 향해 가고 있지만, 과거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나의 현재와 미래를 잇는 것은 내가 쌓아온 기억일 것입니다. 어떤 기억으로 인해 너무나도 아프고 힘들더라도 결국에는 그 기억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이겠죠. 이것이 실연 이후,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싶었던 저에게 이 영화가 남겨준 단 한 가지 생각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후 10년이 지난 지금, 저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열 번 남짓 이 영화를 반복해서 봤지만 이 생각만은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은 제 안에 한 스푼 정도의 낭만은 남아있나 봅니다.
(실험주의보 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