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 실패할 여유"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게 나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TV는 월세 단칸방에서 시작해 행복하게 사는 중년들의 모습을 끊임없이 내보냈고, ‘젊을 땐 그렇게 아끼는 것도 재미다’, ‘나중에는 다 추억이야’ 같은 말을 못이 배기게 들었으니까. 그래서 하나도 재미있지 않았지만, 발랄한 척했고, 더 적은 돈으로 남들 하는 것 다 흉내(만) 내는 걸 자랑으로 알았다. 그러면 어른들은 건전하고 성실하다며 날 칭찬했다. 그걸 다시 일종의 동력으로 삼았다. 그사이 내 취향은 질식당했고 시야는 납작해졌다.
이 글을 읽는데 대학에 입학 후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20원이 아까워서 문자 하나에 벌벌 떨고 전화비가 무서워서 절대 전화를 먼저 걸지 않던 때가 떠올랐다. 그 때는 그런 짓을 할 때마다 스스로가 너무 비참하고 별 것 아닌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자존감을 갉아먹으며 내가 얻은 것은 15,000원이 조금 넘는 휴대폰 요금이었다.
언젠가 나는 영화 예매한 것을 까먹고 만화책을 읽다가 티켓을 날렸다. 얼마전엔 회사 일정 때문에 미리 예약한 비행기 티켓을 취소해야하는데 수수료가 30만원 가까이 발생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거의 나였다면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꼈을테지만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무엇인가를 사기 전엔 거의 한달 가까이 알아보지만 그렇게 산 물건이 내 예상과 다르더라도 나 자신이 끔찍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이제 나에게도 "소비에 실패할 여유"가 약간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돈이 절대적인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하지만 가난은 불편하고 빈곤은 비참하다. '자본'주의에서 돈은 나의 존엄성을 지켜준다. 돈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쉽게들 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돈의 중요성이 가장 처절하게 느껴질 때는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그러니까 건강을 잃었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