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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군 Aug 26. 2015

불행을 전시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어떤 NGO 단체의 소셜기부'사태'에 대해


 2006년쯤이었나. 유명 NGO 단체의 기아체험 프로그램에 봉사를 간 적이 있었다. 요즘도 이 방송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24시간 동안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서 밥을 굶으며 기아를 겪는 아이들의 고통을 느껴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었다. 이 과정을 방송을 통해 보여주었는데, 연예인의 공연이 있기도 했으며 참여한 학생들의 인터뷰를 보여주기도 했다. 나의 역할은 방송이 진행되는 동안 상단에 위치한 전화번호로 걸려오는 후원 문의를 응대하는 것이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한동안은 거의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방송화면에서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앙상한 팔다리, 그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배, 병에 걸려 안구에 붙은 파리조차 쫓지 못하는 아이들, 그런 화면 위로 크게 흐르는 구슬픈 음악, 그리고 담당자가 말했다.


"준비하세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전화가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ARS 후원금액도 미친 듯이 상승했다. 그렇게 폭풍이 지나간 뒤 다시 조용해졌다가 또 폭발하는 이런 패턴이 몇 번 더 반복된 뒤 나의 봉사시간은 끝이 났다.


 한 NGO 단체의 미디어 담당 직원이 매체에 노출될 아이들을 찾기 위해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를 발견한 뒤 자신도 모르게 기뻐했다가 순간 자괴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 역시 불행을 전시하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방법은 떠올리지 못했다. 물론 현재의 불행이 아닌 미래에 대한 희망에 투자한다는 맥락으로 점차 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보다 현재의 불행에 마음이 더 쉽게 움직인다. 


 당장 집에 무너지고, 병원비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인데, 어쨌든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위에서도 밝혔지만 솔직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왜인지 모르게 나를 쿡쿡 찌른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나는 사회복지사이다)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절대 잊지 않으려고 하는데, 몇 명에게 후원금을 연결했고, 몇 명에게 교육을 진행했으며, 몇 명의 후원자를 요청했는지 목표치를 채우고 엑셀에 실적을 적어내고 나면 숫자 안에 가려진 한 명 한 명의 삶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일이 더 속상하고 마음이 아프다. 선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얼마나 더 많이, 얼마나 더 큰 도움을 주었는지에 갇히지 시작하면 숫자에 가려 사람이 사라진다. 숫자보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현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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