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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군 May 19. 2016

묻지마 살인이 아니다.

강남 살인사건에 대해


 솔직히 남성으로써 이런 말 하는 것이 너무나 조심스럽다. 남성으로 태어난 나는 절대 그 상황에 닥쳐본 적이 없다. 그냥 내가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공감능력을 발휘해서 여성의 삶을 상상할 뿐이다. 그래서 헛소리를 지껄일 확률이 너무나도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계속 말하고자 한다.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덮고 가려는 사람들에게 한명이라고 목소리를 더 보태야하지 않나 생각한다.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걸 하려고 한다. 내가 혹시라도 헛소리를 하면 언제든지 지적해주고 알려줬으면 좋겠다. 지금은 같은 인간으로서 함께 공감하고 분노해야할 때이다.


'특정성별'에 대한 증오로 '특정성별'이 '특정성별'을 한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준비한 흉기로 '특정성별'을 살해한 사건이 묻지마 살인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무차별 살인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오히려 언론이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성별을 지우려고 하고 있다. 심지어 그 앞을 지나다녔지만 살해당하지 않은 남성이 너무나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그동안도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이 사건 자체가 방아쇠가 된 것은 언제나 여성들은 살해당해 왔지만 '강남', '번화가', '공개된 화장실', '남자친구와 동행' 등등 이 사건이 품고 있는 많은 요소들이 대부분의 여성들이 느끼고 있던 불안감 혹은 젠더의식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 내 가족 혹은 애인, 지인을 걱정했지만 여성들은 그들 자신의 생이 달린 문제로 느끼고 있다. 이건 남성의 잘못이다 아니다 이런 차원이 아니라 남성이기때문에 절대 알 수 없는 지점일 것이다. (물론 남성도 살해를 당하고 사회적 공포에 시달리지만 통계나 확률을 봐도 여성의 공포감과는 너무나도 다를 것이다) 언론 역시 사람들의 공포심만 자극한다기보단 여성들의 공포를 드디어 담아내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리고 사회별로 논의단계가 그 사회의 합의점에 따라 달라지는데 한국은 이제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것조차 합의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몰카를 찍히는 살해를 당하든 "그러니까 그 늦은 시간에 노래방을 왜 가", "왜 남자를 무시해"라는 말이 계속 터져나오는 상황에서 그 다음 차원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흐름을 봤을 때, 그러니까 온갖 여성혐오적인 표현을 두고 "이게 뭐가 여성혐오죠?"라는 질문이 너무나도 만연한 곳에서 본질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결국 또 피해자의 삶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끝날 것이다. 젠더문제만 말하자는게 아니라 젠더문제라는 것부터 합의하고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이게 젠더문제라는 합의조차 되어있지 않으니까.


나는 최소 3일에 한번 친밀한 사람에게 '특정성별'이 살해당하는 것이 뉴스거리조차 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성대결로 몰고가지 마라.", "왜 모든 남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고 가냐"고 말하기 전에, 그 "왜"에 대해서 온 힘을 다해서 생각해보자.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으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글을 읽고 공부라도 해보자. 그리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자. 아직도 처음의 생각에 변함이 없는가?


덧.

지금 트위터 혹은 각종 SNS를 통해 자신이 겪은 여성혐오 사례에 대한 고백(이라는 표현말고 뭐가 있을까)들을 엮은 책이나 페이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사람들의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정말 충격을 받았는데, 남성인 나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많은 여성들이 공감하는 걸 보고 정말 심각하다는걸 피부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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