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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군 May 12. 2016

여명의 황새울 작전

국가는 언제나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짓밟아왔다.


대추리 사태(大秋里事態)는 2008년 말 무렵에 미국 2 보병사단과 용산 주한 미군 기지를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일원으로 이전하여, 확장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해당 지역 주민 및 시민 운동단체와 대한민국 국방부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뜻한다. 넓은 의미로는 2004년 미군기지 이전결정 이후 벌어진 주민, 시민단체의 반발과 경찰과의 충돌부터 아우르며, 좁은 의미로는 2006년 5월 4일이후 경찰과 군이 투입된 행정대집행으로 인한 대규모 충돌만을 가리킨다. 대추리 사태의 작전명은 여명의 황새울이다. (위키백과)


 2006년에 <역사속의 한국과 미국>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그 수업은 친구들 사이에서 “수업이나 쫌 듣다가 대추리로 현장수업가고 미국 까는 레포트만 제출하면 성적 잘나온다.”고 이야기 되었다. 내가 그 당시에도 미군 주둔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2002년에 발생했던 보통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라고 불리는 ‘미군 장갑차 중학생 압사사건’으로 인해 미군이 주둔함에 따라 불합리한 사건이 많이 있다는 정도만 인지한 정도였을 것이다.


 몇 주간의 수업을 들은 뒤 대추리로 현장수업을 갔었다. 당시 대추리는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정부와 지역주민이 갈등이 진행되고 있었고, 내가 갔을 때는 언제 경찰과 용역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긴장속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단체로 버스에 타서 대추리로 가면서 ‘무슨일이 생기면 어쩌지’라면서 친구들과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대추리에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아마 위험하지 않은 날로 현장수업 일자를 고르지 않았을까) 주민들, 그리고 각종 단체들이 농성하고 있는 대추분교에서 농성자들에게 현 상황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고 긴장이 풀린 우리들은 버스 안에서 셀카를 찍으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대추리를 다녀온 뒤 제출한 레포트에서 나는 미국에 비판적인 레포트를 제출하여 A+를 받았다. 미국에 옹호적인 입장을 밝힌 친구는 B+를 받았다고 들었다.  


 지금 이런일이 벌어졌다면 한국에서 소위 ‘보수’라고 불리는 집단들에게 물어뜯기기 딱 좋은 수업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조차도 <역사속의 한국과 미국>이라는 수업의 방식이 적절한가에 대한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겠다. 만약 누군가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데리고 한쪽 입장만 들려주고 시위 현장 데려가서 겁이나 주면 어떻게 하냐’고 물어본다면 수업을 들었던 누군가는 동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수업으로 인해 나는 처음으로 국가의 폭력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폭력의 기운이 가득한 대추리의 공기가 아직도 선명하다. 생각해보면 공교육을 받아온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한쪽의 입장만 들어왔다. 대학이라는 곳은 그동안 내가 옳다고 믿어왔던 모든 것을 부정해봐야 하는 곳이 아니던가. 그들이 말하는 중립은 왜 항상 기존 체제의 관점에서만 적용되는가.


 내가 졸업한 학교는 어떤 부류에게 “빨갱이 사관학교”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이 수업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에도 용역 깡패가 들이닥치지 직전의 카페 마리나 물대포가 난무하는 집회에 몇 번 더 갔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여전히 너무나도 무섭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그곳의 공기를 체험한 덕에 공권력에 의해 삶의 터전이 박살난 사람들의 심정을 진짜 손톱만큼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나라에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부조리와 폭력들이 모두 새누리당, 즉 보수정권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나도 화가 난다. 이 나라 정부는 시대를 막론하고 그들이 판단했을 때 국익이라고 판단되는 사안에서는 항상 개인을 짓밟았다. 그리고 이제는 이러한 일들이 국가의 직접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소상공인을 짓밟은 행위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외면하지 않고 가능하면 함께 있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속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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