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마을과 가짜 마을

by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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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빠이를 떠나기 하루 전 날, 사코와 나는 윤라이 전망대를 보러 가기로 했다. 우리는 스쿠터를 전혀 탈 줄 몰랐는데, 그곳은 걸어 가기엔 좀 멀고 스쿠터로 20~30분쯤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자전거 타듯이 타면 돼! 전혀 어렵지 않아."


제프의 말을 들은 사코가 스쿠터를 한 번 빌려보겠다고 해서 같이 렌탈샵에 갔다. 사코가 너무 어설퍼보였는지 주인은 스쿠터를 타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타본 적 없다고 사코가 답하니 주인은 스쿠터 빌려주기를 거절했다. 여기와서 처음 타보는 사람들이 아주 많던데, 거짓말을 해야 되었을까? 한국에서 스쿠터 운전을 배워서 올 걸! 뚜벅이로 돌아다니긴 쉽지 않았다. 다행히 마을에 전기자전거를 빌려주는 가게가 있어서 그걸 두 대 빌려서 타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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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벗어나서 한참 달리자 현지인들이 사는 진짜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태국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듬성듬성 서 있고, 식당과 가게가 아주 많은 중심지와는 다르게 식당이나 가게가 그리 많지 않았다. 간혹 보이는 가게의 간판과 식당의 메뉴판은 태국어로만 쓰여 있었다. 중심지의 사람들이 90% 외국인인 것과는 다르게, 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만이 거리에 보였다.


그 전까지 내가 마을이라고 불렀던 것은 가짜 마을이었다. 부자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로만 가득 차 있고, 현지인들은 그들에게 음식과 잘 곳을 제공하는 역할로만 존재하는. 외국인들에게 유명한 관광지가 되면서 현지인들은 이 곳을 다 떠난 걸까 궁금했었는데, 그들은 다 변두리에 밀려나 있었다. "빠이는 평화로워, 이 곳은 천국이야." 그렇게 말하던 제프에게 동의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켄트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여기서 호스텔 운영하는 거, 좋지 않아? 마을도 예쁘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여유시간엔 맨날 게임하잖아.”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켄트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지루해. 청소하고 예약 받고 손님 안내해주고, 매일 똑같아.”


천국이라는 거, 우리 여행자들한테나 그런 거 아닌가. 물가도 제1세계에서 온 우리한테나 싼 거고. 비도, 천장 곳곳의 도마뱀도, 곤충들도, 낙후된 간이식 샤워실도, 답답한 인프라와 사회 시스템도 내게 아무렇지 않았던 건 그곳이 내가 평생 살 곳이 아니니까, 잠깐 머물다 갈 곳이니까 그랬던 건 아닐까.



IMG_20180910_232629.jpg 윤라이 전망대에서 사코와 나

그럼에도 여전히 빠이를 사랑했다. 빠이에서 머무른 2주는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이틀처럼 느껴지기도, 너무 많은 일과 감각, 감정으로 가득차서 두 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빠이에 단 3일 더 있기 위해 비행기표도 학교 OT 참석도 포기해 버렸지만 떠나야 할 날은 마침내 오고 말았다.


아침에 사코와 켄트의 배웅을 받으며 캐리어를 끌고 반마이삭을 나섰다. 사코와 나는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대문 앞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오래오래 흔들며 인사했다.




빠이를 떠난 후에도 사코와 나는 연락을 주고받았다. 사코는 태국 곳곳에서 길거리 공연을 한 영상들을 보내주었다. 나는 태국 서쪽의 카오속이라는 마을에서 처음 만난 배낭여행자와 잔 이야기를 했다.


"걔랑 아직도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어. 마주칠까봐 최대한 피하는 중이야."


"걔를 별로 안 좋아해?"


"응. 전혀. 잘생기지도 않았어."


"그럼 왜 잤어?"


"심심해서!"


"와우... 심심하다는 건 참 해로운 거구나."


사코는 빠이를 떠나기 전 켄트에게 편지를 써서 주었다고 했다. 편지의 내용도 내게 보내주었다. 이곳에 밝힐 수 없는 많은 사적인 이야기와 함께, 내 마음과도 같은 구절로 마무리되는 편지였다.


"나 자신을 이곳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곳이 일본에 존재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줘. 너를 만나게 돼서 정말 다행이야. 너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나가 줘. 마따네(안녕)!"


2년 후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되면서 태국에는 관광객이 뚝 끊겼다. 반마이삭도, 친구들과 깔깔 웃으며 게임했던 재즈바도 문을 닫았다. 켄트는 인스타그램에 호스텔을 인수받을 사람을 찾는 공고를 올렸다. 호스텔을 넘긴 후 본인은 치앙마이에 가서 살 거라고 했다.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던 나도 락다운으로 생계가 위태롭던 차라, 켄트를 비롯한 빠이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계를 이어나갈지 걱정되었다. 응원 댓글이라도 달까 하고 댓글 창을 열었더니 반마이삭에 다녀간 많은 이들이 달아놓은 댓글이 보였다. 대부분은 빠이에서의 추억을 회상하며 아쉬워하고 있었다.


“너와 반마이삭은 빠이에서의 내 추억을 완성시켜. 네가 거기에 더 이상 없을 거라니, 정말 슬프다!”


나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나는 언젠가 빠이로 돌아가 예전처럼 켄트와 다른 게스트들과 그 마루에서 시시덕거리는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켄트에게는 생계의 문제인데, 나에게는 고작 추억의 문제일 뿐이었으니까. 더이상 그의 생계 수단이 되기 어려운 반마이삭을, 나의 추억 보존을 위해 이어나가 주길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 핸드폰 화면 위에서 내 엄지손가락이 갈 곳을 잃고 방황했다.


켄트는 봉쇄 기간 동안 치앙마이에 살면서 태국의 이곳 저곳을 다니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수키도 사진에 가끔 등장했다. 낙엽과 먼지가 쌓여 뒹구는 황량한 재즈바의 사진도 올라왔다. 켄트는 사진 아래에 이렇게 적었다.


“Now all in memory(이제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코로나 사태가 잦아들며 빠이도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재즈바도, 반마이삭도 다시 문을 열었다. 휴대전화는 매해 여름 빠이에서의 사진을 띄우며 말한다. "3년 전 오늘의 추억", "4년 전 오늘의 추억", .... 그 사진들이 화면 속에 갇혀 낡아가는 것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절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본다. 언젠가 태국에 가게 되면 빠이에 들르리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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