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 대해
호주의 야생에는 '딩고(Dingo)'라는 종의 들개가 산다. 이들은 집개와 달리 고양이, 새, 심지어는 양까지 사냥해 먹고, 가끔 인간을 공격하기도 해서 흡사 작은 늑대같다. 늑대처럼 하울링도 한다.
나는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에 체류하던 2021년 겨울에 '시드니 딩고 레스큐'라는 동물 구조 단체에서 일하게 되었다. 무급에 숙식만 제공받는 조건이었다. 시드니 딩고 레스큐는 호주 남쪽의 인적 없는 땅에 딩고 보호소를 운영하고 있다. 반려인간에게 버려지거나 야생에서 다치거나 부모를 잃고 구조된 70여마리의 딩고들이 그곳에 산다.
보호소로 오는 길의 도로는 아무도 다니지 않는 비포장 도로였고, 차를 타고 2키로미터는 가야 다른 사람이 사는 집을 볼 수 있었다. 그 곳의 겨울은 두피까지 얼릴 기세로 추웠다.
보호소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커다란 탱크 여러 개에 빗물을 받아서 식수와 생활용수로 썼다. 물이 항상 모자라 수압이 약했으므로 변기 뒤쪽 물탱크의 물은 아주 천천히 채워졌다. 누군가 변기를 쓴 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면 물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물을 내리기 위해서는 10리터들이 물통에 물을 받아 변기의 물탱크에 들이부은 다음 레버를 눌러야 했다. 수압이 약하기 때문에 물통에 물을 채우는 것도 오래 걸렸다. 한참을 똥 냄새 속에 서서 졸졸 나오는 물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변기 속의 똥이나 오줌을 내려보내기 위해 매번 10리터의 물을 변기의 물탱크에 들이붓고 있다 보면 그동안 도시 문명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편하게 살았었는지 생각하게 되곤 했다. 동시에 한 줌의 똥이나 오줌을 처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깨끗한 물이 버려지는지도. 물이 부족한 그 곳에서 10리터의 물은 귀중한 재화였다.
받아놓은 빗물이 다 떨어져 가서 풀밭에 오줌을 누었을 땐 우리가 여태껏 변기를 사용해왔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이상하게 느껴졌다. 집 밖으로 몇 발짝만 걸어가면 물 10리터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도시에서 간단히 레버만 누르면 되었을 때는 생각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철장 속의 딩고 몇 마리가 하던 일을 멈추고 우리가 오줌 누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같이 오줌을 누던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이 말했다.
“이제 우린 딩고들보다 나을 게 없어!”
다른 이들처럼 나도 그 말에 웃었지만 동시에 의아했다. 우린 딩고들보다 나은 존재였었나?
자원봉사자들의 일과 중 하나는 딩고들을 산책시키는 일이었다. 산책을 하다가 다른 야생동물의 똥을 발견한 딩고들은 그 똥을 먹거나 똥에 자신의 몸과 얼굴을 문지르곤 했다. 나를 포함해 그걸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두 소리를 지르며 목줄을 당겨 그들을 멈추게 했다.
"더러워! 똥 먹지마!"
하지만 이내 나는 똥이 더럽다는, 그 전까지 전혀 의심해본 적 없는 명제를 의심하게 되었다. 딩고들에게 똥은 산책 중의 별미일지도 몰랐다. 인간이 그것을 더럽다고 여긴다고 해서 그게 딩고들에게까지 진리는 아니겠지. 가뜩이나 이 곳에 갇혀서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야생동물이었다. 나는 하얗고 풍성한 털을 가진 딩고 킴바가 지칠 때까지 웜뱃 똥에 온 몸을 문지르도록 내버려두었다. 마른 똥을 모두 가루로 만든 후 킴바는 그것을 조금 먹고는 만족스러운 듯 다시 걷기 시작했다.
"왜 딩고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거야?"
나의 물음에 보호소 주인 찰리는, 다른 동물의 똥에 다 소화되지 않은 영양소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 오후에 무엇을 얼마나 먹을지 알고 있는 인간들과는 달리 동물들은 언제 얼마나 먹이를 찾을 수 있을지 알지 못하므로, 그들은 영양 공급원을 발견했을 때 지체없이 먹는다고. 똥을 몸에 문지르는 이유는 자신의 냄새를 먹잇감으로부터 숨기기 위해서라고 했다. 인간을 딩고처럼 자연에 떨어뜨려 놓으면 인간은 뭐가 더럽니 변기가 있어야 오줌을 싸니 뭐는 이래서 안 되니 하느라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갑자기 10리터 물을 변기에 들이붓는 인간의 모습이 더없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매일 아침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딩고들의 똥 치우기였다. 몇 시간 내내 똥만 긁어모으고 있다 보면 눈을 감아도 똥이 눈 앞에 보일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불쾌하게 느껴졌던 똥은 며칠이 지나자 밟아도 상관없는 것쯤은 되었다.
백 리터의 똥 무덤을 보며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썼던 시를 떠올렸다. 운동장에서 똥을 싸는 사람에 대한 시였다. 자유 주제로 시를 쓰라고 했던 담임선생님은 내게 나쁜 시를 써왔다고 화를 냈다. 그는 내가 자신을 골탕먹이려 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나쁜 의도도 없었던 나는 일곱 살 인생 최대로 당황했다. 똥을 싼다는 건 우리가 매일 하는 일임에도 말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 어렴풋이 느꼈다. 하지만 안간힘을 써 똥의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하는 인간의 모습은, 정말로 흙 위에 똥을 싸고 남의 똥마저 낭비하지 않는 동물들보다 나은 걸까. 나는 킴바의 목을 두 팔로 끌어안고 그의 풍성한 털에 뺨을 묻으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