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은 떠났

여행 휴일

by 수헌 한옥자

닭 울음소리가 새벽을 깨웠다. 시계를 보니 4시다. 세찬 빗소리도 들린다. 때로는 소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빗소리가 더 잘 들리도록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창 너머 마을 쪽을 내려다보면서 시간이 이대로 정지되었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참 오랜만에 시골 친척집에 온 느낌이다. 군 소재지에서 태어나 시골이라고는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시골집은 초등학생 시절에 갔던 큰 아버지 댁이다. 여름방학을 되면 어머니는 커다란 국수 뭉치나 라면 박스를 머리에 이어주고 1주일 동안 그곳에서 지내고 오라고 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이라 국수나 라면은 특별한 음식이 되는 때다. 당신이 자식으로 인해 시골 살림이 축이 날까 봐 특별하게 챙겨주신 것이다.


가는 길은 두 가지였다. 버스를 타고 43번 국도로 가다가 공성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다리를 지나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이는 곳에서 내려 흙길을 따라 무한정 걷거나 애초부터 읍내 뒤편으로 난 길을 마냥 걷는 방법이다. 똬리를 틀어 머리에 무거운 보따리를 인 어린아이에게는 다 무리였다. 그러나 그곳에 가면 토마토를 비롯해 깊은 우물 안에 재워 둔 달콤하고 시원한 수박을 먹거나 금세 따서 찐 옥수수를 먹는 즐거움이 있었다. 깜부기를 먹어보거나 연한 옥수수 대의 껍질을 벗겨 씹어 먹어본 경험도 그때 해보았다. 사촌오빠나 언니를 따라 산으로 들로 다니려면 몹시 버거웠으나 그네들은 읍내에 사는 어린애에게 산속의 시큼털털한 열매를 따서 맛을 보게 해 주거나 잠자리나 나비를 잡아주는 특별한 일을 서슴지 않았다.

두 나라의 네 군데 지역을 거쳐 다섯 번째로 배낭을 내려놓은 곳이 라오스의 방비엥이다. 이곳은 장기 여행자의 홈 타운 같은 곳이라고 했다. 거리에는 현지인보다 여행객이 더 많고 음식점과 카페마다 한글이 흔하게 보였다. 한국사람 덕분에 살아가는 곳 같았다.

라오 커피 향이 방 안 가득 퍼질 무렵 동물소리와 빗소리가 섞인 마을도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아들의 머리를 짚어보니 여전히 불덩이다. 냉장고 속의 찬 수건을 꺼내 바꾸어주려고 하니 실눈을 뜬다. 열이 심해 밤새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여행 8일째다. 여전히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못해 넘쳐서 해가 밝기만 하면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오늘은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전날부터 시작된 아들의 배탈이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폭우가 쏟아져 시원한 저녁을 맞이했고 다음날은 한 폭의 그림 같다는 쏭 강의 풍경을 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었는데, 어제의 계획대로라면 쏭 강에 있어야 하는 날인데 아들의 몸 상태로 물놀이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둘은 오전 내내 방에 있었다. 아들은 선잠을 자고 나는 창밖 풍경에 푹 빠졌다. 약을 먹었으나 열이 쉬 가라앉지 않는 아들을 보며 마음이 불안했다. 휴식보다 더 좋은 약은 없을 것 같아 오늘은 빗소리를 들으며 방에서 쉬자고 하니 아들은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자꾸 깨어서 오히려 나를 걱정한다. 자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을 못가는 것이라고 미안해하는 눈치다. 한 달가량을 더 다녀야 하니 하루쯤은 편안하게 쉬어 두는 편이 현명한 거라고 이야기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사이인가. 오늘 못 가면 내일 가면 되고 입에 넣었던 음식도 꺼내 자식 입에 넣어주어야 하며 마른논에 물이 들어가는 기쁨에 비교하는 부모 자식 지간인데 아들은 공연한 걱정을 한다.

고교 졸업 후 학업을 위해 집을 떠난 이후 아들을 드물게 볼 수 있었다. 함께 여행하는 덕분에 매일 같이 있으니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새록새록 알게 된다. 왼쪽 가슴에 멋진 문신을 했으며 물이라면 몹시 겁을 내더니 개헤엄도 제법 쳤다. 음식취향도 성장 시기와 달라졌고 무엇보다도 커피를 나만큼 즐긴다는 사실이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고 나누는 기쁨을 주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누워서 발버둥만 치다가 어느 날 제 스스로 몸을 뒤집었다. 뒤집힌 몸의 중심을 잡으려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애를 쓰더니 어느 날은 앞으로 나아가려고 용을 썼다. 반년이 지나자 앉기 시작했고 걸었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자식의 겉을 낳지 속을 낳는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집을 떠나고 난 후 7년 만에 함께 여행을 하면서 고스란히 하루를 같이 지낸다. 서로 무거운 배낭 짐을 나누어지고 묵묵히 길을 가면서 아이를 잉태했을 때부터 성장 시기에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월이 갈수록 기억은 희미해질 것이다. 혹시 치매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면 귀하고 소중한 아이의 성장 이야기는 영원히 묻혀 버린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거나 버스를 탔을 때 아들 귀에 소곤거린다. 풍광이 좋은 곳을 만났을 때, 커피 향이 그럴 수없이 좋을 때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아이의 탄생과 바꿀 수 있는 벅찬 마음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의 삼매경에 빠진 어미는 그때마다 진중하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아들이 고맙다.


오후가 돼서 컨디션을 회복한 아들과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 쏭 강 근처를 거니는데 나비 떼며 잠자리가 우리 근처를 맴돈다. 해먹에 몸을 맡기고 강가에서 쉬고 있는 사람을 보니 그럴 수없이 평온해 보인다. 문명과는 먼 곳이다. 그래서 라오스는 삶과 죽음도 축제가 된다고 하나보다.

힘들면 쉬어 가고 아플 때는 신음소리도 내는 것도 잘 사는 지혜이다. 너무 힘들 때는 털썩 주저앉아 쉬는 법에 익숙해야 더 멀리 뛸 수 있을 것이다.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 부질없어 보일지는 모르나 그 덕분에 오늘이 있으니 추억은 삶의 에너지이다.

간신히 걷고 있는 아들 곁에서 콧노래를 부르면 아니 될 일이지만 자꾸만 노래가 부르고 싶다. 아마도 옛 추억을 떠올리면 보낸 반나절 덕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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