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은 떠났다

인생길을 헤매다 보면

by 수헌 한옥자


잠이 들었어도 창문 없는 방은 갑갑했나 보다. 눈을 뜨니 새벽 4시쯤, 밤새도록 에어컨을 가동 중인 방안은 공기가 탁했다. 손바닥 크기의 창문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밖과 안이 넘나들어 갑갑하지는 않았을 텐데 사방이 막히니 무언지 모를 무게에 내리 눌리는 느낌이다.

4층의 방문을 열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계단 난간을 잡고 1층 로비로 내려왔다. 이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 건물이다. 밖은 아직 어둡고 로비 안은 환하게 불을 밝혀 놓았다. 늦거나 일찍 드나들 손님까지 배려한 주인의 마음 씀은 가지런하게 준비된 차에서도 느껴졌다. 찻잔에 차를 따르는데 물소리가 명징했다. 소리 덕분에 몽롱했던 정신이 맑아진다.

정갈한 '포네 파세우스'의 로비에서 라오스의 첫날 아침을 맞았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찾던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섰을 때 창문이 없는 방이란 단점은 찾았다는 반가움 덕분에 눈 감아 주었다. 숙소 어플 속의 상품은 소개란에 장점만 부각하고 단점은 감추기 때문에 속속들이 속사정을 모른다. 숨겨진, 일부러 말하지 않는 단점을 잘 찾아내는 것이 숙소를 잘 고르는 요령인데 가격도 싸고 시설도 좋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이곳은 창문의 부재만 빼면 모두 기대 이상이다.

밖은 아직 잠들어 있다. 밤늦도록 거리를 채웠던 여행자들도 지금은 곤히 잠에 빠져있을 시간. 안주인은 졸린 눈을 비비며 로비로 나와 흐트러진 찻잔을 간종그리고 있다. 그녀에게 간단한 인사와 미소를 보내는 것 외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음이 안타깝다. 단아한 모습이 아주 곱다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수식어를 붙여 최대로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집과 여자는 가꾸기 나름이란 말처럼 규모보다는 깔끔한 관리가 더 도드라진 모습을 봐서 집주인은 아주 성실하게 사는 젊은 부부다.

가끔 가는 재래시장 안에 몸매가 늘씬하고 고운 얼굴을 가진 여인이 운영하는 채소가게가 있다. 처음 갔을 때 그녀도 손님인 줄 알았다. 그러나 흙이 묻은 거친 손으로 상품 진열을 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주인이었다.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그녀의 손은 마치 갈퀴 같았다. 나이로 보나 외모로 보나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손을 가진 사람 앞에서 저절로 말이 멈추었다. 무슨 말을 해도 그녀에게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매사 당당한 그녀의 자태에서 생의 강렬한 욕구가 느껴졌다. 그녀의 말씨와 행동을 보면 내 지난 삶을 떠올랐고 그 후,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 일부러 걸어서 시장을 간다. 그리고 채소를 산다. 그녀를 보고 돌아오는 길은 생의 뒤안길을 걷는 길이다.

오로지 치열했던 전투적인 삶. 뒤로 물러설 자리는 없었다. 추웠고 어두웠으나 나의 데드라인도 무시하게 해주던 자식들. 충동구매한 당근, 양배추, 무처럼 하나 같이 무거웠다. 양손으로 번갈아 쥐었다가, 저려오는 팔을 주물러대다가, 걷고 또 걷고 나면 어깨는 축 처지고 팔뚝에는 새파랗게 핏줄이 섰다. 단 한 번도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제, 철저하게 나만을 위해 살아보려고 한다. 불과 1년에 며칠쯤이라도 좋고 단 몇 시간이라도 좋다. 절대적 이기적인 시간이 무엇을 줄지는 모르나 인천공항을 떠나 1주일이 지난 지금, 무엇은 나를 꿈틀거리게 한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이 그 나라의 심 카드를 구입하는 것과 환전이다. 스마트 폰과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특히 낯선 곳을 찾아다니려면 지도 어플이 필수이다. 여행책자에는 비엔티엔 시내에서 두 가지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지만 도착하여 겨우 찾은 곳은 자물쇠로 사정없이 문이 잠겨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던 시간은 오후 다섯 시 무렵인데도 사정없이 내리쬐는 햇볕이 얼마나 따갑던지 한 시간째 예약한 숙소를 찾아 헤매던 아들은 비 오듯 땀을 흘렸다. 찬찬히 찾아보자고 달래 봐도 조급한 표정이다. 분명 나 때문이다. 아들로서의 책임감이 앞서 땀을 뻘뻘 흘리고 서있는 내가 안타까워 그런다. 서로 동등한 위치의 여행이 되자고 무던히 말을 했지만 본인 입장은 그럴 수가 없단다. 부모는 환갑이 된 자식을 어린애로 보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천륜으로 맺은 사이였다.

게스트 하우스의 주인이 알려 준대로 ‘세이롬 로드’의 라오 텔레콤 서비스 센터에서 코리안 타임이라는 말에 버금가는 라오 타임을 겪으며 유심 카드를 구입했다. 지도를 따라 '탓 담'을 찾아가는데 어제 바로 눈앞에 두고도 부단히 헤매던 길이다. 손에 쥐고도 있는 줄을 모르고 가져도 가진 줄을 모르던 길이다. 걷다 보면 갈 길을 잃고 헤맬 일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고통을 잘 삭히면 훗날에는 추억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미리 염려하고 아예 가지 않는 회피보다는 두드리고 나서야 나도 모르는 나를 찾게 될 듯하다.

비엔티엔의 수호신이며 검은 탑이라는 이름을 가진 ‘탓 담’과 라오스의 개선문인 ‘빠뚜사이’의 194개 계단을 오르며 7월의 햇빛을 즐겼다. 피하기보다는 즐기는 편이 덜 더웠다. 아침 일찍 게스트 하우스를 나와 ‘탓 루앙’ 사원까지 다녀오니 정오가 되었다.

오후에 미니버스를 타고 '꽃보다 청춘'이라 T.V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방비엥(왕위엔)을 4시간이 넘게 걸려서 왔으나 아들이 탈이 났다. 열이 나고 화장실 출입이 잣다. 국물 맛이 일품이라고 알려진 ‘포 잡’이라는 식당을 일부러 찾아가 쌀국수를 먹었는데 그게 원인 같았다. 진한 향이 비위에 맞지 않아 먹는 척만 하던 나는 괜찮으나 아들은 가득 담긴 국수를 모두 비웠었다.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아토피 피부염이 심했다. 대중목욕탕에서 홍역으로 오해를 받고 쫓겨났을 때 어미 된 이는 피눈물을 흘렸다. 땅을 밟으면 낫는다는 어른들의 말을 막연하게 믿었지만 얼마나 애면글면했는지 모른다.

상비약을 챙겨 먹이고 일찍 잠이 든 아들을 보며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 자식은 나보다 덜 힘든 삶을 살길 바라는데 인생길이 녹록하지 않으니 어쩌랴. 돌이켜보면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내 젊은 날의 생존을 위한 고통은 얼마던가. 시장의 여인처럼, 게스트 하우스의 안주인처럼 살 수 있었음은 자식을 둔 어미이기에 가능했다. 만약 누군가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아들이 자꾸 이불을 찬다. 이마를 짚어보니 뜨겁다. 입이 마를까 염려가 되어 차를 우려 놓았더니 잠결에 팔을 뻗어 컵이 넘어졌다. 3살 적 아들도 주스를 마시다가 바닥에 컵을 놓친 적이 있다. 저도 놀란 아이는 잔뜩 주눅 든 표정을 지으며 내 표정부터 살폈다.


“놀랐니? 괜찮아! 너는 아직 아기니까! 그래서 물 컵을 잘 잡을 수가 없단다!”

아들은 더 이상 아기가 아니다. 그러나 어미에게 아들은 지금도 어린 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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