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은 떠났다

기분 좋은 날

by 수헌 한옥자


방비엥 거리를 휩쓸었다. 낡고 조악한 건물과 인도와 차도가 불분명한 길옆에는 대부분 여행객을 상대로 하는 상점이 드문 드문 있었다. 상점의 물건들은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비포장 도로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긴 하나 먼지가 물건의 정체성을 이간질시키는 주범이 라 선택에 망설임이 따랐다.

워터프루프 드라이백 하나를 사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걸었다. 다음날에 최고의 액티비티에 도전하려면 물에 젖어서는 안 되는 소지품을 담을 가방이 필요했다. 불과 1만 원도 안 되는 물건 하나만을 사기 위해 걸은 것은 아니지만 낡은 건물과 비포장 길, 그리고 먼지가 뒤섞인 곳에서 무엇을 사야 한다는 사실은 내키지 않는 마음을 고쳐먹어야 하는 단호함이 필요했다.


우리 숙소는 구 공항 활주로 근처에 있어서 강 쪽으로 가려면 음식점이 늘어선 큰길을 건너 사통팔달의 흙길을 이리저리 걸어가야 한다. 강이 가까워지자 샌드위치와 햄버거 등을 파는 포장마차가 많았다. 물놀이를 마치고 나면 배가 몹시 고플 것이라고 예상하고 길목을 지키는 상술을 발휘한 거다. 서로 자기가 만든 것이 더 맛있다고 호객행위를 하는데 음식 메뉴도 한글로 써서 매달아 놓을 정도로 한국 여행자가 많았다. 길가에 늘어선 음식점과 카페, 잡동사니 물건을 파는 잡화가게에 들락거리는 사람도 거의 세계에서 온 여행객이며 이제 이곳은 여행자를 위해 존재하는 지역으로 굳어졌다.


길에는 버기카가 씽씽 달리고 남자들은 상의를 벗고, 여자들은 비키니 차림이나 어깨와 가슴을 훤히 드러낸 채 활보를 한다. 그 누구도 낯을 붉히거나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카르스트 지형에 있는 동굴과 강물에서 벌어지는 물놀이가 여행객을 부르자 고기를 잡거나 찰벼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던 마을 사람들은 바람처럼 왔다가 가버리는 사람을 상대로 쉽게 돈을 버는 일에 눈을 떴다.

오던 비는 멈추었다. 시원해진 거리를 걸어 강으로 산책을 가면서 몇 군데 상점에 들렀다. 물건을 사려면 여러 군데를 둘러보고 품질과 가격을 비교해보다가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사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의 쇼핑 취향은 고객을 맞는 태도나 예우를 갖추는 모습이 구매를 결정하는 우선순위며 터무니없이 값을 깎거나 물건을 뒤적거리며 주인을 귀찮게 하는 행위는 부끄러워 못한다.


여행지에서는 대부분 낯선 이국인에게 제멋대로인 가격을 적용했다. 특히 교통비는 걸핏하면 바가지요금이다. 여행 후 처음 며칠은 우리나라 물가와 비교해보고 그 선에서 넘지 않으면 적당한 가격이라고 단정했다. 번번이 깎자, 말자 해서 밀고 당기며 악착같이 내 이익을 추구할 생각이 없었다. 자유롭게 살고자 이국 멀 리까지 왔는데 이쯤은 적당히 눈 감고 넘어가자 식이었다. 그러나 달라는 대로 주고 나면 뒷맛은 씁쓸했다. 특히 아들은 그로 인해 은근히 지친다고 했다. 여행자에게 바가지요금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방문했던 나라의 전체 이미지를 좌우하는 일이고 여행의 성공 여부와 여행의 가치를 통틀어 지배하는 요인이 된다. 특히 배낭여행은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예민한 방어력이 필요했다.


몇 번의 부당함을 겪다가 은근히 약아졌다. 협상에 익숙해졌다. 자기 보호를 위한 요령이 생겨나고 돈의 가치를 재정비해보았다. 그래서 강으로 산책을 갈 때와 돌아올 때, 몇 군데의 상점을 돌아보았다. 겨우 가방 하나를 사기 위함이라고 단절된 생각을 가졌다면 못할 일이나 남은 여행을 잘 보내기 위해 현명한 소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마저도 즐거웠다.

처음 들렸던 곳이 가장 가격이 쌌고 품질은 대부분 비슷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곳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무리 다녀도 찾지 못하고 헤맸다. 마냥 걸으며 눈에 띄는 대로 대충 드나들었으니 아무리 작은 지역이라 하더라도 못 찾는 것이 당연했다.

어린아이가 상점의 땅바닥에 앉아서 놀고 있었다. 아기 엄마는 손님을 맞고 아기는 기저귀도 차지 않고 아랫도리를 벗은 채 흙투성이 바닥에서 저 혼자 잘 놀고 있었다. 양말이며 가방, 모자, 옷 등의 소소한 생필품을 파는 가게인데 드나드는 사람은 여행객이다.

앉아 있는 아기를 어르느라 무릎을 굽히고 앉아 딴청을 하는 사이에 아들이 주인에게 가방의 가격을 물었다. 지금껏 다닌 곳 중에 가장 비쌌다.

“여기서 사자!”

“가장 비싼데요?”

“그래도 사자!”

내 단호한 말투에 아들은 돈을 치렀다. 여행비를 아껴보려고 발품을 팔며 애를 쓰고 있는데 이런 내 행동이 행여 못마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식을 둘러업고 아등바등 살았던 시절의 고뇌를 그가 알겠는가. 비록 다른 곳보다 비싸지만 애쓰며 사는 아기 엄마의 모습은 내 기억창고에 숨겨진 치열했던 삶을 떠올리게 했다. 더불어 우리가 산 가방은 가장 좋은 고품질의 상품이 되었다.


물건뿐 아니라 삶의 가치도, 수량으로 따지는 셈법이 아님을 세월이 갈수록 점점 진하게 느낀다. 한 때는 내 주머니의 돈이 나갈 때면 눈과 귀를 열고, 온몸의 세포 전부를 열며 아등바등했으나 주인도 적당한 이익을 얻어야 그의 일을 계속할 수 있으며 그것이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는 것을 인생의 물정을 모르던 젊은 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많이 걸었으나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가장 비싼 요금을 치르고 산 가방 안에는 아기와 아기 엄마의 아름다운 모습이 담겼다. 내 삶의 원형도 그곳 안에 있다.

반짝 세일 상품을 산 것보다 더 기분 좋은 물건을 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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