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은 떠났다

나의 살던 고향은

by 수헌 한옥자

잠결에 바리톤 음색이 들렸다. 귀를 기울여보니 창밖에서 나는 소리다. 땅을 때리며 나는 소리는 둔탁하고 육중했다. 동시에 위엄과 명징함도 갖추었다. 어두운 곳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할수록 마음속은 점점 환하게 불이 켜졌다. 잠에 취해 몽롱했던 정신도 점점 선명해졌다.

가히 폭우라고 할 만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커튼을 열어젖혔으나 밖은 칠흑 같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새벽 4시라 아직 어두울 시간이지만 비가 와서 더욱 캄캄한데 민가 쪽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닭 울음소리도 우렁찼다. 거기에 더해 폭우 소리까지 가세하니 이곳은 아침잠이 많은 사람은 반듯이 피해야 할 숙소다.

창문 앞은 잎이 넓은 나무들이 숲을 이룬 곳이어서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던 모양이다. 어둠 속 비는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며 진중하게 땅으로 안착 중이었다. 미처 다 스미지 못한 빗물은 시냇물 소리를 내며 담장 옆으로 흐르고 마을 사람들은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어딘가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비와 커피, 그리고 내가 창가에 나란히 앉았다. 피곤에 지친 낯선 객은 물리적 상태와는 아랑곳없이 가슴에서 열기가 분출하여 마음이 뜨겁고 방금 끓인 한 모금의 커피도 뜨겁다. 잠을 더 자야 하나 이 상황을 외면하고 천연덕스럽게 잠을 잘 수가 없다.

아들은 제 머리 꼭대기까지 이불을 끌어올렸다. 창문을 열어놓고 바람마저 들어오라고 청하는 제 어미가 하는 행위가 넘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배짱이 커진다. 그가 나를 알고 나도 그를 알기에 이쯤은 이해해줄 것이라고 믿어서다.

오늘은 물과 함께 지낼 예정이다. 지금 내리는 비는 우리의 오늘을 축하하는 축하객이라고 여겨져 더 좋다. 빗물과 강물이 만나면 오히려 일체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비를 맞으며 물과 한 몸이 된다면 하루라도 물과 닮은 사람으로 살게 되지 않을까, 라는 정체 모를 기대감에 가슴이 뛴다.

물의 고향은 가장 낮은 곳이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하는 물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 사람의 세계에서는 가장 버거운 적이다. 물처럼 주어진 대로 순응하며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절벽이 앞에 있는데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 거슬러 올라가려는 인간의 속성은 물에게 한 수 지고 산다.


탐남 동굴 앞에 도착했을 때, 빗줄기가 가늘어졌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항상 물속에 반쯤 잠겨 있어 워터 케이브라고도 부르는 이 동굴은 밤새 내린 비로 머리 하나쯤 내밀 정도의 공간만을 남긴 채 잠겼다. 가이드는 위험하다며 동굴 튜빙이 어렵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조건에 뒤로 물러 서기 싫었다.

기다리겠다고 우겼다. 동굴 아래쪽의 쏭 강 지류로 급하게 물이 흐르고 있으니 시간이 갈수록 동굴의 물도 금방 줄어들 것이므로 우리는 기다렸다. 30여분이 지나고 있을 무렵, 다른 팀이 먼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나의 결정에 대한 확신은 불투명했다. 그러나 앞서 가는 이들 덕분에 더욱 용기가 났고 그 무엇보다 아들이 곁에 있으니 무엇인들 못하랴 싶었다.

튜브에 몸을 누이고 헤드 랜턴에 의지하여 동굴 안을 들어가니 겨우 머리 하나 공간만 남기고 물이 가득 찼다. 있는 힘을 다해 로프를 잡았다. 밤새 쏟아진 폭우로 인해 물살이 얼마나 세찬지 누운 몸은 중심을 못 잡고 제멋대로 움직였다. 머리에 쓴 랜턴과 로프가 없다면 내 목숨은 파리 목숨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불쑥 입에서 노래가 나왔다. 입안으로 노래를 삼키듯 불러도 노랫소리는 아주 크게 들렸다. 작은 말소리도 울림이 되어 크게 들리는 동굴 안 물속에서 노래를 부르니 태아의 생명을 지켜주는 양수 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인이 잉태를 하면 몸 안에 우주의 빛이 들어와 생명을 지켜준다고 하는데 어둠과 물이 가득 찬 동굴 속은 태아를 지켜주는 어머니의 자궁 속처럼 평온했다.

미리 걱정하고 겁을 먹은 탓에 쓸데없이 쥐었던 손의 힘을 풀고 물살에 나를 맡기니 물의 방향대로 내 몸이 흘러간다. 방비엥은 각양각색의 동굴이 많다. 산과 강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라 이런 곳에서 살려면 동굴이 집터로 적절했을 듯했다. 지금까지도 이렇게 아름답게 초록과 순수를 간직한 곳이라면 자연을 오롯이 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동굴 안에서 삶을 이루다가 이처럼 물이 불어나 천재지변의 고초를 겪었을 원시인이 떠올랐다. 지구라는 별에 인류의 조상이 생겼다. 진화를 거듭하다가 똑바로 서서 걷는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다. 그 후 뇌가 커지고 슬기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에 이어 인간 스스로 현명하다고 자화자찬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살았다고 하는데 현재 인류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원시시대에 이른다.

그렇다면 이곳은 직립보행을 하던 호모 에렉투스가 처음 인간이 출현한 지역인 아프리카의 동쪽 열대지방에서 발이 부르트게 숲과 강을 건너와 이주한 곳이다. 결국 누구나의 고향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이 평온했다. 행여 동굴 천장에 머리라도 부딪힐까 봐 서로 걱정할 정도로 동굴의 물이 가득 찼지만 이 안에서 살던 먼 옛날 원시인도 그렇게 삶을 영위하며 살았을 것이 아닌가.


생각 나름으로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 했다. 비가 올 때 우산을 쓰거나 처마 밑으로 피해봐야 비를 덜 맞을 뿐이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을 구질구질하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마음까지 눅눅해진다는 사람도 있다. 차라리 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으면 시원하련만 자꾸 거부하니 부정의 마음이 따르는 거다. 매일 내게 벌어지는 일들도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받아들인다면 누구나 생이 기쁨으로 찰 터인데 주어진 조건을 자꾸 거부하니 행복은 저 스스로 내치는 것이다.

물이 철철 넘치던 동굴 안에의 30여분은 짜릿했다. 밖에 나와 헤드라이트를 벗고 나니 세상이 온통 내 품 안으로 들어온다.

“엄마, 갑자기 나의 살던 고향은, 이란 노래는 왜 부르셨어요?”

아들이 물었다. 갑자기 고향이 생각났다는 내 대답에 그는 빙그레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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