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최고의 순간
새벽 내내 거칠게 내리던 비는 오전이 되자 소강상태로 머물렀다. 간간이 이슬비가 내렸지만 우산을 쓴다거나 비를 피하려는 사람은 없다. 늘 젖어 있어서 젖음이 일상이 된, 한 고비를 넘으면 열 고비도 너끈히 넘을 수 있는 잡초의 삶 같은 인내가 몸에 밴 탓인가.
들판의 주민들은 비를 맞으며 모내기를 하고 있다. 라오스는 한 해에 여러 번 벼농사를 짓는 나라라는데 지금이 모내기철인가 보다. 물을 가득 채운 논 안에는 이십여 명의 사람들이 나란히 서 있다. 허리를 구부렸다가 일으키길 반복하며 모 심는 일에 열중이다. 못 줄을 잡은 사람과 아이들과 노인 몇 명은 논두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더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모를 심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을 마주한 듯했다. 산허리에 걸린 구름은 가던 길을 멈춘 채, 지상 가까이 서 있다. 여행자도 가던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라오스의 시골 풍경은 오달지게 고왔다.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여행을 왔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주민에게는 절박한 삶이나 객에게는 특별한 장면이라 뒷사람의 재촉을 받고 나서야 걸음이 옮겨졌다.
트럭을 타고 쏭 강의 상류로 가면서 동굴 쪽을 쳐다봤다. 내 생전 탐남 동굴 안에 또 들어갈 기회가 생길까. 만약 그렇다면 그때는 겁먹지 않고 조금 더 당당하게, 씩씩하게 들어가 주어진 상황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무사히 튜빙을 마치고 카야킹 출발지점으로 오자 폭우로 불어 난 강물은 몹시 혼탁했다. 드넓은 강폭을 봐서도 수심은 아주 깊어 보였다. 넘실거리며 흐르는 강물을 보니 동굴을 들어갈 때보다 심장이 더 빨리 뛰었다. 비교적 물과 친숙한 내가 이럴진대 아들은 어떨까. 구명조끼를 입고 수중 카메라를 목에 건 아들의 겉 표정은 의연하다. 하지만, 엄마라서, 엄마기에 가지는 우려의 마음은 아무리 애를 써도 막을 수가 없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아는 사지로 몸을 껴안아 자기를 가장 작고 둥글게 만드는 필사적인 자세를 취하고 엄마의 궁전에서 산다. 엄마는 자신을 내어주고 태중 아기는 그에 부응하며 서로 하나가 된다. 이미 자식과 엄마는 이 시기부터 사랑을 정형화시키는 태교가 이루어진다.
아들은 갓난아이였을 때 목욕물에 몸을 담그면 두 손을 앞으로 뻗치며 안색이 새파래지도록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가슴을 눌러주거나 등을 토닥여 주고 몸을 쓰다듬어 주면 겨우 안정을 찾아 무사히 목욕을 마치곤 했는데 비교적 물을 무서워한 편이다.
작은 욕조의 물에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경계를 하던 아기가 거대한 강물에 자신의 몸을 맡기려고 한다. 구명조끼와 카약에 송두리째 운명을 맡길 시간이 된 것이다. 만약 미동이라도 하면 누런 강물이 나를 집어삼킬까 봐 나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물길을 나서자마자 곧 여울목을 만났다. 카약 세 대가 출발했는데 그중 한 대가 기우뚱거리며 여울목에서 뒤집혔다. 한국 청년 두 명이 물속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나의 파트너인 가이드는 그들을 구하려고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내가 탄 배도 중심을 잃고 뒤집혔다.
흙탕물 속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깊은 수렁 속에 들어왔다고 느끼는 순간 공포가 밀려왔다. 발버둥을 치다가 코로, 입으로 물이 들어왔다. 수영을 할 줄 알면서도 겁에 질려 수영하는 법도 잊었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순식간에 당한 일이다. 만약 내 의지대로 강물로 뛰어들어야 한다면 절대로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은 욕조 물에 겁을 내던 갓난아이나 다름없었다.
강물에 빠지고 난 후 비는 더욱 세차게 내렸다. 샤워기로 머리 위에서 물을 맞듯이 비를 맞았다. 이미 물속에 빠졌던 처지라 굳이 비를 피할 이유가 없다. 나와 물은 하나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고 비록 안경알에 비가 들이쳤지만 강가 풍경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독일 청년과 한 조인 아들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폭우를 맞으면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나의 걱정은 기우일 뿐이었다.
아들의 카약이 내 곁으로 왔다. 오른팔을 위로 올려 엄지와 검지로 동그랗게 원을 만들고 나머지 손가락은 활짝 폈다.
“나는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다. 너도 그렇길 바랄게!”
방비엥의 아이들이 강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물과 함께 성장하니 물개나 다름없다. 우기의 눅눅함과 폭염의 날씨를 강물로 식히며 주어진 대로 사는 아이들의 웃음은 해맑았다. 자신의 능력 이상을 욕심 내다보면 불만이 따르게 마련인데 이들은 천혜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사람도 자연이 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의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쏭 강에서 하루를 보냈다. 지금은 비록 관광지로 변해 순수를 잃어가지만 순박한 마음만은 잃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