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이 떠났다

짊어지고, 걷고, 훨훨 날아가다

by 수헌 한옥자




메어보니 묵직했다. 단칸방에 살건 저택에 사는 살건 누구나 별반 다르지 않게 매일 사용해야 하는 생필품을 줄이고 줄여 담은 배낭. 36일간 나와한 몸으로 지내야 하는 배낭 속에는 압축된 집 한 채가 들어 있다.

어깨와 허리에 느껴지는 무리를 줄이기 위해 가차 없이 몇 개의 물건을 더 빼고 다시 메어본다. 그래도 무겁다. 생각 같아선 세면도구며 갈아입을 옷, 모두 빼 버리고 빈 배낭을 지고 훨훨 다니다가 추억이나 가방 가득 담아오고 싶지만, 여행도 사람 사는 일이므로 의식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행위였다. 집을 떠나면서, 일상을 벗어나면서, 다시 짐을 짊어진다.


배낭 무게에 치여 마음을 방해받는다면 실패한 여행이라고 배낭여행의 고수들은 말했다. 무거운 짐은 행동을 제약받고 체력을 고갈시키므로 갈 길을 막는단다. 가장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떠난 여행에서 짐으로부터 부림을 받는다면 당연히 실패한 여행일 것이다.

틈틈이 짐을 챙겨 나다닌 덕분에 내 여행 가방은 비교적 작은 편이다. 최소한의 짐은 최대의 자유를 준다는 사실, 그것이 무소유가 주는 평화라는 사실을 안다. 소유함으로 지워지는 짐이 어디 배낭뿐이랴. 돈, 사람, 명예, 권력, 심지어 정물까지 어느 하나도 구속이 아닌 것이 없지 않은가.


넣고 빼기를 몸소 실천하다가 밤을 하얗게 밝혔다. 창밖은 아직도 어둠이 가득한데 밤새도록 불이 켜진 집안은 낮과 다르지 않았다. 아직 어두운 새벽 시간인데 승객이 붐볐다. 꼭 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에게 어둠은 벽이 아니었다. 인천공항행 첫 버스는 만석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자리가 텅텅 비었을 것이라는 씩씩한 단정, 그것이 예매하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그 시간에 공항 가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내가 가본 적이 없다고 남도 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그것은 오류였다.

덕분에 시외버스 터미널의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아 새벽이 밝아오는 모습을 송두리째 본다. 승객으로 꽉 찬 4대의 버스가 차례대로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지고 다섯 번째 버스의 맨 뒷좌석 남은 두 자리를 차지하고 앉기까지 2시간이 걸렸다. 비행기 탑승 시간을 맞추려면 빠듯하지만, 조바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지만, 우리가 탄 버스는 떠났다.


같은 계절도 매일 날씨가 다르듯이 삶의 궤도에는 항상 변수가 따른다는 것을 아들도 알았을까. 그것을 알고 깨우친다면 새벽의 혼란은 오히려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여긴다. 자식보다 곱절을 더 산 나도 번번이 우를 범하며 허겁지겁 사는데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자식은 얼마나 많은 궤도 이탈 앞에서 허둥대고 견뎌야 할까.


시계를 보며 공항 도착시각을 가늠해 본다. 불안했으나 혹시라도 아들이 내 마음을 알아차릴까 싶어 애써 의연한 표정을 짓는다. 밝아오는 아침을 버스 안에서 맞는 기분이 꽤 그럴싸하다. 일찍 날아다니는 새가 더 많은 먹이를 구한다는 말이 뜬금없이 대입되고 밤을 지새웠어도 머리가 아주 맑았다.


10시 5분 출발이라는 베트남 항공기는 11시 14분이 돼서야 이륙했다. 경유지인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 3분, 태국 방콕행 비행기는 오후 5시로 또 늦추어졌다. 온종일 예정보다 느리게 일정이 흘러간다.

오후 6시쯤이면 방콕의 카 이산 로드에 있는 숙소에 도착할 것을 예상했으나 늦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배낭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호텔에서 열쇠를 받았을 때 종일 긴장하느라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한 피곤함이 극에 달했으나 첫날, 첫 숙소에 도착한 사실은 피곤보다 강력했다.


첫 배낭 여행지를 동남아 지역으로 선택했다. 우리나라도 여름은 덥다. 이왕 덥다면 아열대 기후인 여행지에서 더 극심한 더위를 견뎌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살면서 막연히 배낭여행을 꿈꾸었지만 단 한 번도 어느 곳을 갈 것인가,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느 날 불쑥 우리도 가자, 는 말을 던져놓고도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자식에게 했던 말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용기를 낸 덕분에 기어이 길을 나섰다.


늦은 밤인데도 카오산 로드는 낮이다. 배낭여행자의 천국이라는 이름이 붙을만했다. 근처에는 ‘방람푸 시장’이 있고 숙소는 먹고 마시는 업소가 밀집된 지역이다. 숙소 앞 노점의 파라솔 밑에 앉아 팟타이 두 접시를 시켜 저녁 식사 겸 아들과 맥주잔을 맞댔다. 부딪히는 유리잔의 소리가 청아했다. 시장판의 노점에서 쓰는 싸구려 잔에서 크리스털 음이 들렸다. 마음에 따라 귀도 듣고 싶은 소리만 들으려고 하는가 보다.


한 잔의 맥주가 갈증과 피곤을 가시게 해 주고 비로소 여행 온 실감이 났다. 갑자기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그러나 거리의 사람들은 아무도 비를 피하지 않고 유유자적 걷는다. 음식과 술을 앞에 놓고 대화에 열중이던 이들도 여전히 대화를 잇는다. 음악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는 사람들도 비 따위는 안중에 없다. 장기 여행자가 많은 곳이라고 하더니 현지인보다 더 현지인처럼 살아가는 그들 틈에 낀 나는 모든 것이 낯설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유로운 여행을 떠났으나 내일을 위해 적당한 절제가 필요했다. 자유는 책임을 수반했을 때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그 속에서 길을 찾고 우리는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한 잔의 맥주를 마셨을 뿐인데 취기가 느껴진다. 아들과 잔을 맞댄 의미가 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