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은 떠났다

코끼리 비스킷

by 수헌 한옥자

바람이 스산하게 부는 어느 가을날에 서울 대공원에서 코끼리를 보았다.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던 코끼리. 그는 노랗게 물 들은 은행잎을 코로 그러모아 낙엽만 골라 먹었는데 마치 추수를 하는 농부가 농작물을 갈무리하는 듯, 흙과 검불을 고르는 과정은 사람을 능가하는 행위였다.

코끼리 문양의 치마를 입고 캠프의 관중석에 앉아 코끼리가 벌이는 쇼를 본다. 그림을 그리거나 공을 차는 코끼리. 관중을 향해 아양을 떨거나 갖은 애교를 부리는 코끼리. 모두 생소한 모습이다. 말 그대로 쇼다. 내가 아는 코끼리는 진정한 백수의 제왕이며 최대, 최고의 동물이었다. 그러나 생쥐를 보고 뒷걸음친다는 코끼리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쇼를 보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중은 환호했다.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정복욕과 지배욕의 무한한 분출을 본다. 코끼리의 뛰어난 지능을 교묘하게 이용한 현장에 앉아 있는 자리가 불편했다. 코끼리의 재롱이 즐겁기보다는 안쓰러웠다. 코끼리를 본성을 굴복시킨 인간, 참 대단하다. 거대한 몸체 속에 숨겼던 나약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코끼리를 보다가 인간 탓을 한다. 나같이 코끼리 관광을 하겠다고 온 사람이 있으므로 캠프가 존재하니 나도 별수 없는 인간이다.

불교국가인 태국의 코끼리는 성스런 대접을 받고 살았다. 몸체와 포악한 성질은 같은 무리나 인간 외에는 대적할 상대가 없단다. 그러나 인간은 그의 약점을 꿰뚫었다. 등에 무엇을 얹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점을 이용하고, 귀 뒤가 약한 점을 이용하고, 사람의 말을 잘 이해하고 지능이 아주 좋다는 점도 이용했다. 남의 약점을 나의 장점으로 만들었다. 인간만이 가능한 행위이다. 자아가 엄청나게 강해 여간해서는 쉽게 길이 들여지지 않는다지만 수도 없이 귀 뒤를 때리고 괴롭혀 기어코 복종하게 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상아를 얻기 위해 사냥을 하고, 노동력을 착취하고, 어릿광대짓을 시키며 돈을 번다.


아들은 태국에 왔으니 코끼리를 타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그 길로 시내에 즐비한 여행사에 들러 관광 상품을 사고 아침이 되자 숙소 앞으로 가이드와 관광용 미니버스가 왔다. 치앙마이에서 한 시간쯤 가는 '매탱 코끼리 캠프'를 가면서 아들은 말했다. 밀림 속에서 살아야 할 야생 동물을 영리의 목적으로 사육하므로 동물을 학대한다는 여론이 있단다. 사람보다 열등하다는 이유로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은 아주 끔찍하다고 했다. 어린 야생 코끼리를 어미에게서 강제로 떼어내 작은 틀 안에 가두어 인간의 명령대로 따를 때까지 때리거나 송곳으로 찌르는 일을 무한정 반복하며 길을 들인단다. 그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정신 장애를 앓는 코끼리도 있고 용케 견뎌낸 코끼리는 평생을 사람의 꼭두각시로 살다가 생을 마친다고 했다. 그로 인해 100년 전만 해도 10만 마리가 넘었지만, 지금은 겨우 5천 마리 정도만 남아 있단다.

먹이 사슬에 순응함이 자연적이긴 하나 동물을 학대하여 얻은 대가로 생계를 유지하려는 사람의 이기심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미 떠난 길을 돌아올 수는 없어 마음이 착잡했다. 더구나 자식을 볼모로 삼고 어미가 말을 듣게 한다고 하니 인간의 교활함 끝은 어디까지인지 슬픈 마음이 들었다.

역한 냄새 때문에 비위가 상했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아들과 함께 코끼리 등에 어설프게 올라탔으나 편치 않았다. 정글 속의 매탱강을 건너는데 방금 소나기라도 퍼부은 듯 탁한 물이 흘렀다. 종일 관광객을 태운 코끼리의 육중한 발걸음과 배설물 때문이라 그렇단다.


강을 건너고 산을 한 바퀴 돌아오는 동안 나와 아들은 몸을 펴지 못했다. 구부린다고 코끼리 등에 실린 무게가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굽었다. 코끼리가 씰룩거리며 걸을 때 조련사는 ‘커창’이라는 기역 자 모양의 꼬챙이로 코끼리의 머리와 목덜미를 수시로 쳤고 우리는 그럴 때마다 더욱 몸을 낮추었다.

아들은 나보다 마음이 더 여렸다. 코끼리의 간식을 파는 움막을 지날 때 간식을 사겠다고 했다. 나는 코끼리에게는 비스킷일 뿐이라고 했다. 하루 150Kg을 이상을 먹는다는 코끼리에게 바나나 한 송이와 사탕수수 한 뭉치는 분명 비스킷 한 조각이었다. 현지민의 상술이 빤히 보이는 행위에 동조하기 싫고 뒤늦게 알량한 동정심을 갖은 들 때 지난 후회일 뿐이다. 하지만 아들은 그것이라도 먹여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며 뜻대로 코끼리에게 비스킷을 주었다. 애초에 코끼리를 타지 말았어야 했다는 자책감이 무럭무럭 자랐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고 한다.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진화해온 인류 역사를 볼 때 타당성 있고 공감하는 말이다. 자기 주도하에 만들어가는 인생의 모습은 남과 차별화되며 가장 자기답다. 주어진 환경에만 만족하고 고인 물처럼 살아간다면 흙도 도자기로 탄생하지 않는다.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방학만 되면 무엇을 배우고 싶어 했다. 테니스를 배우고 싶다거나 롤러스케이트를 배우겠다고 하더니 4학년 여름방학이 되자 헬스클럽을 다니겠다고 했다. 키가 크는 성장기에 헬스 운동은 성장을 방해한다는 트레이너의 조언을 듣고서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했지만, 표정은 시무룩했다.

유년시절부터 유독 궁리가 많았던 아들과 내가 뜻이 맞아 떠난 이번 여행에서 그동안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던 가 돌아보게 된다. 만약 내 아들도 조건 없는 사랑에 의한 양육이 아닌 목적을 가진 사육에 의한 성장이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진학을 위한 학교 공부로 지쳤을 때 저에게 공부 좀 하라고 야단을 쳐 주세요,라고 주문하던 아들의 심정은 차라리 강제를 당해서라도 자기의 슬럼프를 극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알아서 하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세요?”

국방의 의무를 마친 아들이 한 말이다. 본인의 인생은 본인이 만들어 가야 하므로 알아서 하라는 말을 수시로 했지만, 어미에게 서운했을 수도 있다.


어미 코끼리가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로드 웍을 하는 동안 뒤를 따라다니는 아기코끼리는 뒤를 따랐다. 초라한 누옥에서 어린것을 등에 업고 억척스럽게 살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암울한 가운데 자식을 지켜야 했던 어미는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내 삶에 내가 길든 이유이다.

제 어미는 인간의 지시대로 복종하여야만 생을 유지할 수 있어 그렇다지만 아직 어미의 품을 벗어나지 못한 아기코끼리의 미래 삶까지 낙인이 찍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청수 한 사발을 떠놓고 샛별을 보며 기도하듯 캠프의 모든 코끼리를 둘러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건강하게 잘 살아가거라. 지금은 비록 인간의 기쁨을 채워주기 위해 살고 있지만, 다시 환생한다면 밀림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 마음껏 너만의 세상을 누리길 바란다.’

아들은 자기만의 세상에서 무한정한 행복을 누리길 바라는 어미의 심정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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