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와 후회
우연히 찾아온 기회가 기회였는지 알았을 때, 시간은 저만치 가버렸다. 매번 후회를 하면서도 반복하는 후회, 그것이 나의 한계인가. 꽉 잡았던 손을 놓치거나 스스로 놓고 나서 뼈저리게 후회해본 사람은 안다. 자의 건 타의 건 모두 힘에 부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미련을 깊게 남긴 후회는 평생 앓는 생인손이라는 것을.
일생에 세 번 온다는 기회를 모두 잡았다고 모두 성공한 삶일까? 사회적 평가의 가치가 꼭 성공인가? 넉넉한 마음일 때 자문하는 물음이다. 기회는 사소한 말속에도 있고 스치는 바람결에도 있고 매일 오가는 길옆에도 있다고 믿는다.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만이 주어지는 기회에 대해 자족이라고 폄하해도 좋다. 많이 잃었다고 다 잃고 싶지는 않다. 때로는 거들먹거림도 필요했지만 그것은 내 몫이 아니었다. 떠다니는 모든 거품은 내 취향이 아니다. 그래서 우유 거품을 얹은 커피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황금사원이라는 프라탓 도이수텝 사원은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곳은 우리가 머물던 구 시가지에서 차로 약 40분을 가야 하는 곳에 있었고 이미 시가지에 있는 사원을 멀미가 날 정도로 여러 군데 갔었기에 일부로 먼 곳까지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전날 코끼리 캠프로 가는 차 안에서 치앙마이에 오면 그곳은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하던 이의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오후에 태국의 우돈타니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으므로 배낭을 호텔에 맡기고 수텝 산 밑에 있다는 사원으로 갔다. 치앙마이의 100여 개 사원은 대부분 시내에 있어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는다. 그러나 해발 1,000m의 산에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의 사찰처럼 산중에 우뚝 세워졌다. 높은 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사람의 영혼을 치료해주는 도시 수호 사원이라는 소개답다.
우리나라의 불국사보다 규모는 더 큰 것 같고 다른 사원들처럼 시멘트로 짓고 꽃과 오색으로 화려한 치장을 한 사원이라 단아함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는 점, 높은 곳에 위치했다는 점이 여느 사원과 달랐다. 그러나 도시는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구름이 떼로 막아서는데 무슨 수로 앞을 볼 것인가.
구름이 지나가면 선명하게 보일까 싶어 기다려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날씨가 맑았다면 높은 곳에서 시원스럽게 도시를 내려다보는 벅참을 누렸겠지만 구름에 한 꺼풀 가린 도시는 마음으로 봐야 했다. 우연히 듣고 기어이 온 곳인데 아쉽다고 생각해야 하나. 아니다. 주어진 만큼은 누렸으니 그 이상 무슨 욕심을 더 내랴. 우리는 이곳에 왔고 300여 개의 계단을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와 황금빛 대형 불탑을 바라보았다면 만족해야 한다. 더구나 무한정 부는 바람 속에서 나와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으니 잘 잡은 기회였다.
무심코 짧은 바지를 입고 와 법당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부처님을 친견했다. 사원을 출입할 때 기본으로 갖추어야 하는 의상에 대한 예를 챙기지 못했으니 입구에서 저지를 당해도 할 말이 없다. 귀동냥으로 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허겁지겁했으니 마땅한 결과였다. 클로스 백에 항상 넣어두던 스카프라도 있었다면 허옇게 드러난 다리를 가릴 수 있었을 텐데 그마저도 없었다.
아들은 다음 코스인 우돈타니에서는 숙박을 하지 말고 그냥 지나치자고 했다. 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타인을 가기 위해 우돈타니까지 비행기를 타야 했고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라오스 국경을 넘는 것으로 여행 루트를 정했었다. 그러나 생전에 내가 또 우돈타니를 올 기회가 있겠는가. 최소한 하루 밤이라도 머물고 싶었다.
공항에 내리니 이글거리는 햇볕에 익을 지경이다. 각오는 했으나 더워도 너무 더웠다. 더운 가운데 온몸의 땀구멍이 일제히 열리며 땀이 흘렀다. 거부하지 않으니 오히려 시원했다. 땀이 숙소 뒤편의 푸른 물에 섞여 파랗게 변했다. 파란 타일의 풀장이라 물빛도 파랬고 마음도 파랬다.
파란 물속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을 때 하늘빛은 붉었다. 석양이 질 때까지 푸르다가, 붉어지고, 가득 찼다가 텅 비던 마음. 하룻밤 머물길 참 잘 했다. 떠남이 주는 몽환적 행복이다. 더구나 지나치려다가 머문 곳이 이토록 편함을 주니 잘 잡은 기회였다.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면 아무것도 아닌데 굳이 하루를 머물러서 얻은 행복이다.
돌아보면 망설이다가 잃어버린 기회가 많다. 살아온 세월만큼 후회도 켜켜로 쌓였으나 망각이라는 기능 덕분에 진한 아쉬움도 담담하게 관조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을 위해 그 모두가 필요했던 과정은 아닐까.
성공이나 실패나 모두 경험이다. 해본 사람만이 얻는 결과물이니 해봐야 한다. 마음만 먹다가 세월을 보내고 생각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분명히 후회하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무엇이든 해보자. 그리고 결과는 순응하자. 얼마나 노력했는가, 과정이 중요하니 마음껏 너른 세상으로 나가 보자!’
결혼을 안 하겠다, 아이도 낳지 않겠다는, 회피성 삶을 사는 이 시대의 젊은이, 그리고 내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기회는 만들어 가는 것. 미리 염려하지 말자.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