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은 어디나 위험해
종일 걸어 다리가 아프지만 날아다닌 느낌이다. 몇 군데의 사원을 가고 폭 좁은 골목이 주는 정겨움에 흠뻑 빠져 마냥 다녔다. 나지막한 지붕 아래에 펼쳐진 타인의 삶이 궁금하여 울타리와 담 너머를 기웃거렸고 그들과 눈길이 마주치면 서로 웃었다.
잘 웃는 사람들 속에 있으니 웃지 않던 나도 웃는다. 치열했던 삶이 웃음을 뺏어갔다고 하면 변명이나 삶이 문제이긴 했다. 내 안의 풀밭이 잡초마저도 살 수가 없는 메마르고 거친 뜨락으로 변한 것도 모르던 우매함의 시발점은 분명히 삶이다.
여행하며 다른 삶을 가지니 가벼웠다. 이렇게 마음이 날아다녀도 되나 싶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내 감정을 억제하고 체면 따위를 지켜야 하는 이들은 하나도 없다.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권리는 내게 최대의 대접을 해 주며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행은 별것이 아닌 것을 별것으로 느끼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사소한 것도 특별하게 느껴지고 살던 곳과 일상을 떠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여행을 떠난다고 표현하지만 떠나는 순간부터 다시 시작된 여행 일상은 불안으로 시작하여 기대와 상상으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행지에 오니 여행자가 흔했다. 절대로 특별하지 않았다. 생긴 모습이나 말을 통해 저 사람은 폴란드나 터키에서 온 사람이군, 이 사람은 아랍이나 인도에서 왔네, 라며 나 혼자 마음속으로 가늠한다.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나 길 위의 선 사람들의 마음가짐은 공통점이 많다. 가족과 온 사람, 친구끼리, 혹은 연인끼리 온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아직 엄마와 아들로 보이는 관계는 보이지 않는다. 눈여겨 찾아보았으나 없다. 만약 그런 이들을 만난다면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아들과 여행을 할까 궁금해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다. 아들이 곁에서 통역해 줄 테니 충분히 가능한 바람이다.
걷다가 배가 고프면 길거리 음식을 사 먹고 먹기 좋게 깎아 놓은 망고와 파인애플의 달콤함을 즐겼다. 꽃처럼 예쁜 열대과일은 보는 것만으로 군침이 돌았고 차와 함께 오토바이, 성 테우, 뚝뚝이 한 몸처럼 달리는 차도에서는 단 한 번의 경적도 듣지 못했다. 모두가 질서 정연하게 자기 갈 길을 가고 있다.
치앙마이는 세계인으로부터 은퇴 후에 살고 싶은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란다.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이틀 동안 눈여겨보니 물가가 싸다는 등 경제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방콕에 이어 제2의 수도라고 불리는 치앙마이 중에 우리가 주로 다닌 구도시는 도시가 주는 현란함보다 소박하고 아늑하고 단아한 느낌을 준다.
한낮의 햇볕이 따가울 때는 찻집에서 쉬고 햇빛이 잦아들 때쯤 또 걸었다. 여행지에서는 커피도 특별한 향이 났다. 재료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의 짐을 벗고 온 가벼운 마음 덕분이다. 같은 일을 겪어도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거리에는 더위와 매연과 온갖 교통수단이 꽉 찼다.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뿐이 아니라 여행객을 상대로 한 거리의 장사꾼까지 합해 길 위는 여백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도는 아주 좁고 차도와의 경계도 분명치 않다. 아들은 길을 걸으며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말을 한다. 장성한 자식과 걷다 보니 잊었던 과거가 한 조각 생각났다. 서너 살의 아이가 보행로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다. 사무실 앞이 4차선 도로다 보니 항상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달리는 차에 눈길이라도 주면 가슴이 털썩 내려앉았다.
“ 저기로 가면 안 돼. 거기는 아주 위험한 곳이야!”
아이는 책에서만 보던 덤프트럭과 구급차, 버스, 오토바이를 인도에서 보며 호기심이 일었을 것이다. 지면의 정물이 길 위를 씽씽 달릴 때 얼마나 신기했을까. 그런데 어미는 세발자전거의 운행 길을 미리 정해놓고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아이의 의사는 제외한 일방적 결정이다. 360도에 눈을 두고 산다는 어미의 마음이다.
골목을 벗어나 대로 건너편을 향해 씽씽 페달을 돌리고 싶던 아이의 꿈을, 희망을, 양육을 명목으로 미리 잘라 버렸을지도 모른다. 집을 떠나 객지에서 혼자 살기 시작하고 성인이 된 지금도 자식 걱정을 놓치는 못한다. 내 시선이 미치는 곳만 있으라고 강요받던 아이로부터 조심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함께 길을 걸어갈 때도, 신호등을 건널 때도, 손을 잡아 준다. 아직 내가 노인은 아니라고 외치고 싶지만 흐뭇하게 즐기나 잔소리처럼 들리기도 있다. 서너 살의 그 아이도 그랬을 것이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빌려주는 곳이 많으나 그냥 걸었다. 걸으니 보이는 것이 많았다. 특산품 가게에서 물건과 옷 구경을 하고 길거리 음식을 먹는 재미도 좋았다. 현지인과 직접 부딪치며 내 마음대로 가다가 서기를 반복하니 충만함이 크다. 편리함의 달콤한 유혹에 젖어 이미 많은 것을 잃지 않았는가. 소중한 것을 잃고도 모르며 보낸 시간은 또 얼마인가. 사는 것에 매여 더 소중한 것을 잃고도 잃은 줄도 모르고, 보지 못하고도 못 본 것을 모르는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았다.
오늘로 배낭여행 3일째다. 태국 치앙마이 타페 로드를 걷다가 뚝뚝을 타고 번화가라는 님만 혜민을 다녀왔다. 멀겋게 잘 단장된 거리였다. 샤넬 고양이와 넉넉하게 생긴 남자의 조형물이 서 있는 싱크 파크도 가고 마야 쇼핑센터도 갔다. 내가 사는 동네와 다름없이 쇼핑몰과 공원이 지천이었다. 그런데도 세계인은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자기 사는 곳과 별다르지 않은 곳에서 낯선 체험을 통해 잠재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여행을 통해서 가능하므로 자기를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내게 최선의 삶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면 어디건 못 가랴.
오늘은 총 15km를 걸었더니 다리가 아프다. 가는 길마다 가물막이 가로막았다. 거친 숨을 몰아쉴 때마다 내 숨결에 내가 뜨거웠으나 오랫동안 머물던 가슴속 응어리는 비로소 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