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들이 떠났다

병아리를 따르는 어미 닭

by 수헌 한옥자

어깨와 가슴이 넉넉한 사람 뒤에 섰다. 영원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 남자의 등 뒤에서 살아온 세월을 떠올린다. 그와 내가 모자 관계를 맺었으므로 운명으로 여기고 산 세월이다.

여자는 생을 살고 떠날 때까지 자식을 품고 일평생을 산다.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는다. 열 달 동안은 몸 안에서 품고 그 후는 가슴에, 마음에 품는다. 세상의 빛으로 온 가장 귀한 선물을 가슴 깊이 안고 애지중지하면서 저절로 하나가 되는 삶. 그것이 어머니 된 자의 삶이다.


아기가 손가락만 꼬물거려도 세상이 전부 내 것 같고 뒤집거나 앉고, 기다가 어느 날 우뚝 서서 걸음을 걷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밤잠을 설치며 돌보느라 쌓인 고통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여자를 강하게 만드는 모성의 최대치와 끝이 어디까지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몇 년 후, 아이는 집단에 소속된다. 또래들과 어울려 양보와 나눔, 인내를 배우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세상에 존재할 준비를 하며 바람에 날아 땅에 떨어진 홀씨처럼 저 혼자 아프며, 견디며 싹이 튼다.

사자 어미도 제 배 아파 낳은 새끼를 절벽으로 밀치고 살아남는 새끼만 키운다고 한다. 이런 모습은 거친 세상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제 새끼의 삶을 미리 대비하는 어미의 진정한 사랑이다.

밀친다는 의미는 자립심을 가지게 해준다는 의미이다. 그런 점에서 금수저나 흙수저를 논하는 요즘 인간 세상보다 월등한 자식 교육인 셈이다. 부모의 그늘과 언덕은 필요하나 그것을 금전과 신분으로 채우려는 것은 홀씨나 사자보다 못하며 애초 수저 논란을 우리 사회나 인간의 삶에 부각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 자신을 스스로 홀대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고학년이 될수록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진다. 내 아이도 예외는 아니다. 집은 잠자는 곳으로 전락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밥 몇 술을 먹고 학교에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가면 양어깨가 축 처지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만났다. 자식이 성장한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각자의 삶을 위한 준비라고 긍정적 평가를 해보지만, 자식도 타인인 냉정한 섭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된 어미는 늘 노심초사였으나 말을 않고 의연한 척했을 뿐이다.


타지에서 살다가 육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손님처럼 낯설었다. 그러나 반년 동안 함께 지낼 기회도 주어졌다. 가지마다 열매를 맺는 9월, 열매 달이면 가을학기 등록을 하고 또 떠날 예정이다. 공부를 마치면 취업을 해야 하니 아들과 함께 지낼 시간은 이번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과 뒤, 다 제치고 함께 여행을 떠나 이틀째를 맞는다.

어미 닭을 따르는 병아리 떼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 그들 사이에도 언어가 있고 대화를 하지만 사람이 못 알아들을 뿐이다. 앞장서 걷는 어미 닭만 쫓아다니면 먹을거리가 생기고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병아리는 안다. 세상에 태어나 자기를 보살펴주고 보호해줄 존재가 어미라는 것을 알기에 무던히 뒤를 따른다.

그런데 어제 인천 국제공항에서부터 온종일 아들 뒤를 따르던 내 모습은 병아리를 따라다니는 영락없는 어미 닭이다. 틈새를 비집고 어디건 떠나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기질을 똑 닮은 아들과 나는 여행의 동행자가 되었다. 비행기 탑승 절차를 밟을 때나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함께였다. 마실 음료를 사러 다녀오겠다고 할 때도 아들의 뒷모습에는 나의 눈길이 함께 다녔다. 아들의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잠시만 보이지 않으면 불안했다. 타국에서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말을 할 줄 모르는 미아 신세가 될 것이니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어야 했다.

어미와 자식의 앞과 뒤의 걷는 위치는 바뀌었으나 튼튼한 뿌리를 가져야 줄기가 건강한 것처럼 아들은 나를 걱정하고 나는 아들을 걱정한다. 자식의 도리를 다하겠다고 마음을 쓰다가 이내 지치면 어쩌나 염려가 되어 긴장의 연속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자식이라더니 앞서 살아본 사람들의 말은 진리였다.

오후에 방콕 돈므앙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태국 제2의 수도라고 불리는 치앙마이로 왔다. 이곳은 북방의 장미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도시다. 꽃 중의 여왕인 장미처럼 수 공예품과 축제와 사원의 아름다움을 많이 간직한 곳이라 그런 이름이 지어졌단다.

13세기 말에 타이족이 삥 강변 분지에 건설한 란나 왕국이 오늘날의 치앙마이라고 한다. 이곳은 역사적인 사원이 약 300개가 넘는다더니 가는 곳마다 사원이다. 성곽을 경계로 해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가르는데 구시가지의 숙소에서 해자로 둘러싸인 문이라는 뜻을 가진 쁘라뚜 타패 문을 지나 타패 거리로 갔다.

골목 안에는 오래되고 아담한 집과 소박한 카페와 음식점이 여행객을 맞아 누구라도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고향 같은 정겨움이 느껴졌다. 옛것을 그대로 간직한 북부 고유의 문화유산에 흠뻑 취해볼 기회가 주어졌음에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르고 밤이 늦도록 걷고 또 걸었다.

이제 낯선 곳과 친해지는 법을 서서히 익혀가는 느낌이다. ‘블랙’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생소한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했다. 여행하면서 각 나라의 음식을 최대한 겪고 누려 보려고 외국을 갈 때 흔하게 싸간다는 고추장이나 김 따위는 단 하나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 지금 내게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새롭게 만나는 그 나라의 문화에 최선을 다하는 예의를 갖추고 싶다.

아들 병아리가 이불을 차 버리고 잠을 잔다. 어미 닭은 이불깃을 올려주며 갓난아기 모습을 떠올렸다. 천진스럽게 자는 모습을 보니 무심히 흐르는 세월의 강을 따라 하류로 온 나를 본다. 다시 강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음이 안타깝다. 고물거리던 아기를 다시 한번만 품에 안아 봤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여자에게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할 것이다. 자식을 낳고 키울 때가 최고 행복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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