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고 길을 잃었을 때
너무나도 분명하다고 믿었던 길을 걷다가 잠시 길을 잃었을 때, 늘 믿음이 가고 신뢰하던 내가 초라해 보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탄탄대로를 걸어왔고, 또 앞으로 걸어가리라 예상했던 나날이었는데 한순간 내 삶이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아니, 어떤 분들은 잘 닦아진 길 위를 걸어볼 기회조차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에 내가 도대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길래 이럴까, 라는 생각을 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 갇혀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무게에 눌려서 한없이 땅 밑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끝이 없어 보이는 깊은 땅속으로요.
어렸을 때는 한 영화의 주인공처럼 모든 사람의 관심을 받으며 살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이 광활한 우주 속에 먼지 한 톨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내 인생의 크기가 어느 순간 느껴지면 갑자기 전에는 모르고 살았던, 크나큰 좌절감이 몰려듭니다. 그곳까지 생각이 닿으면 숨을 못 쉴 만큼 나를 짓누르는 무력감에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누워만 있는 게 최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상태에서는 어차피 나라는 작고 무의미해 보이는 사람은 이 침대를 벗어나서 한걸음을 떼어봤자 아무것도 못 이뤄낼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을 맹신하게 됩니다. 멋모르던 어렸을 적 내 꿈이 허상인 것처럼, 사실 그 이상한 생각도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허상일 뿐인데 말이죠.
이 세상은 나보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라고, 믿으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며 더 큰 꿈을 요구하는데 왜 나는 부정적인 생각에 반응하기 더 빠르고, 왜 내 시야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좁아질까요? 어렸을 적보다 잃을 게 많아지기는커녕, 사실 잃을 게 더 없어진 것 같은데 왜 나는 자꾸만 내가 먼지 같다고, 남에게 하면 언어 학대가 될만한 말로 가장 사랑해줘야 마땅한 나를 폄하하고 과소평가할까요?
축축한 땅에 심긴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싹도 나 보지 않은, 앞으로 무엇이 될지도 모르고 어떤 아름다운 꽃이 될지 모르는 나를 향해서 왜 우리는 생명의 원천이 되는 물을 주어도 모자를 시간에, 싹을 틔워도 땅 위로 솟아오르지 못할 깊숙한 땅속으로 나를 묻어버리기에 빠른 것 같아요. 때로는 이미 싹을 틔우고 어여쁜 꽃을 피우고 지나가는 이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이들이나 이미 익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당당하게 서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의 초라함에 스스로 숨어버리고는 합니다. 아직 나는 겉보기에 추하지만 곧 나비가 될 번데기가 되고 말 것이라고 책을 통해, 글귀를 통해,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 주문을 외우듯이 나를 위로해 보지만 그 위로는 마음 깊숙한 곳까지 닿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나 스스로 그 말을 진실되게 받아들이지 못하니까요. 왜냐하면 쉽게 바뀌지 않는 내 기준에서 보기엔 난 너무나도 초라한 사람이니까.
‘만사에는 때가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하얗게 센 머리를 기르고, 나이가 지긋한 어떤 도인이 엄청난 깨달음을 얻고서 하는 말 같아서 아직 세상에서 첫걸음마를 이제 막 떼본 내게는 매우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귀를 세상만사에 적용해 보면 이만큼 명쾌한 말도 없을 것 같습니다.
봄이 가면 아주 무더운 여름이 옵니다. 불쾌할 정도까지 높이 치솟는 기온을 견디고 나면 선선한 가을이 찾아옵니다. 예쁜 단풍을 물들이고, 왠지 모르게 내 마음도 한층 더 적적하게 만드는 가을을 지내고 나면 겨울이 옵니다. 춥고 따스한 곳에만 콕 박혀서 움직이고 싶지 않은 겨울이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무한반복. 누군가 약속한 것도 아닌데, 계절은 자신의 시간을 충실히 지키며 우리를 찾아옵니다. 계절은 주눅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계절에 따라 찾아오는 동물, 곤충, 그리고 식물은 주눅 들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본분의 충실해서 때에 맞게 살아내고 풍경에 자연스레 녹아나고 또 자신의 때가 지나면 계절이 사라질 즈음에 맞춰 퇴장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시절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음 해에 누리게 될 그날을 위해서 준비를 합니다. 슬퍼하지도 않고서, 그것이 마치 자연스러운 것인 듯. 또 다른 해가 오면 언제 사라졌냐는 듯, 그들은 바뀐 계절을 알리며 우리의 눈 앞에 등장합니다.
물 흐르듯 모든 것이 때에 맞춰 변하는 것을 보다 보면, 어쩌면 우리도 이런 초연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운을 띄워봅니다. 내가 비록 먼지 한 톨보다 존재감이 작아 보일지라도, 초라해 보일지라도, 내 삶에도 다양한 계절이 있기에 ‘때가 있겠거니’라는 초연한 마음가짐으로 이 추운 겨울을 지나야 하는 게 아닐까요. 내가 서둘러 꽃을 피워야 하겠다는, 매일 밤마다 나를 채찍질하는 그런 생각을 하기보다 나에게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고. 조금은 무책임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죽도록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결과가 펼쳐지는, 추운 겨울의 계절을 지나는 나를 용서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하루하루에 충실해서, 다가올 봄에 땅이 녹으면 싹을 틔울 준비를 열심히 하면서 말이죠. 이미 세상에서 그런 채찍질은 수도 없이 받은 자신을 조금 위로해 주면서 말이죠.
그때에 작아 보이는 나라는 씨앗이 비로소 어떤 싹을 틔우게 될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오랜 시간 싹을 틔우는 데 실패한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아요. 당신이 알 수 없는 엄청난 가능성을 품은 씨앗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조금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며 말이죠. 내가 너무 춥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이 겨울이 빨리 지나가는 것은 아니니까. 그 겨울에 맞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즉 외투를 껴입는 것 같은 최대한의 대비를 했다면, 형체도 없이 흐르는 시간에 조금 맡겨봐요. 내가 최선을 다했다면, 내가 심은 것을 거둘 가을에 나는 열매를 거두며 어리둥절한 게 아니라 이 과실을 맺기 위해서 노력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더 뿌듯할 수 있겠죠? 그리고 자신을 믿어주는 마음이 한층 솟아나지 않을까요? 이 긴 겨울을 잘 견뎌냈구나,라고.
그리고 푸르른 봄날을 지나, 무더운 여름을 지나, 아름다운 단풍이 펼쳐진 가을을 지나서 추운 겨울날로 다시 들어선다 할지라도 겁내지 말아요. 나는 기한을 모르지만, 이 계절은 언젠가 지나가기 마련이니까요. 만약에 내가 처한 상황이 나를 너무 춥게 만들고, 나를 해친다면 그곳에서 잠시 벗어나도 괜찮아요. 당신이 재충전할 수 있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 동굴에 들어가 자는 동물처럼 겨울잠 같은 쉼이 조금 필요할 때일 수도 있으니까.
흔히 20대를 푸르른 봄날 같다고, 청춘이라고 칭하는데 당신의 청춘은 20대가 아니라, 30 대일 수도 있고, 40 대일 수도 있고, 아니면 더 늦은 시간이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언젠가 푸르른 날, 이 괴로운 생을 보내다 보면 아무런 걱정 없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당신에게 찾아올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이들이 짜준 시간표에 흔들리지 말아요. 당신의 시간은 그들보다 조금 더 천천히 흐르고 있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오랜 시간 견뎌내면서 단단해진 만큼 당신은 더 튼튼한 마음으로 훗날에 더 웃게 될 거니까요.
나라는 사람은 단 하나고, 나를 위해서 흐르고 있는 시간도 하나고, 또 나를 위한 이야기도 하나예요. 나는 나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에요.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진다면, 이어질 이야기도 없어지겠죠. 그러니까 조금만 힘내서 해피엔딩이 될 이 이야기를 써내려 가봐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나를 조금 더 아껴주고 다독여줘 볼까요.
오늘 하루를 견뎌내느라 참 수고 많았어요, 이 세상을 살아내고 있는 수많은 ‘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