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험이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넌 지나치게 예민한 것 같아. 그 말에 갇혀봐야 네 손해니까, 털어버려.”
“내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그 말을 왜 그렇게 받아들였어?”
“실제로 그런 의미로 그 말을 했다고 해도, 네가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없으니까 그냥 털어버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깊게 고민하고 있는 관계의 문제에 대해 털어놓을 때마다 이렇게 말하고는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는 꼭 이렇게 덧붙였죠.
“넌 너희 아빠랑 너무 똑같아.”
그렇다고 우리 엄마는 무관심하거나 무책임하지 않았어요. 동시대를 살아온 여느 엄마와 같이 다정하고, 희생적인, 굉장히 좋은 엄마였죠. 하지만 엄마가 말한 것처럼 나는 아빠를 빼다 박은 듯, 외모와 성격이 아빠와 완전히 같았고 유일하게 엄마를 닮은 구석이라고는 식성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너무 좋은 엄마였지만, 어렸을 적 엄마로부터 진정으로 이해와 공감을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늘 마음 한구석이 쓰렸습니다. 나에 비해 다른 형제들은 엄마를 닮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엄마를 머리로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쓰라림은 쉽게 가시지 않았지요. 내가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된 느낌. 엄마는 우리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걸 알았지만, 쓰라림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좀 더 나이가 들고 나서 나는 관계 문제에 대해 엄마에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스스로 삭히는 법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엄마와 엄마를 닮은 다른 형제들은 소위 말하는 ‘인싸’였고 나는 ‘아싸’였기에 나는 무언가 결핍되어 있다는 생각에 늘 갇혀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사춘기가 지나고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고 피곤하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엄마의 성격을 따라 해 보려고 애쓴 적도 있었지만,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그렇게 하다가 관계에 탈이 난 적이 많았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나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는 했습니다.
그래도 엄마에 관해 완벽에 가까운 이해는 내가 커서 MBTI라는 성향 검사를 알게 되고 나서야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정신과 학계에서는 이 검사의 정확도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나와 나의 엄마에게는 꼭 들어맞았습니다.
검사 결과에 빗대어 보자면 우리는 그 어느 것도 맞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나는 극 내향, 직관적이고 감정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엄마는 정반대였습니다. 극 외향부터 시작해, 어쩜 그리 정반대인지. 그제야 나는 어느 정도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기준으로는 이해 안 된다고 말했던 나의 행동들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니었구나. 그저 다를 뿐이구나, 라고요.
지나치게 예민하게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도, 생각이 많은 것도, 그리고 내 이야기를 쉽게 털어내지 못하고 마음에 썩히는 것도 결코 내가 이상하고 잘못되거나 틀린 생각을 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내 성향이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나를 늘 괴롭히던, 쿨하지 못하고 예민하기만 한 내 성격에 관한 불만족을 한순간에 날려주었습니다.
아, 이게 나였구나.
나는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어려워했고 늘 사람들 사이에서 허덕였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편은 아니었는데, 가끔은 너무 버거웠습니다. 사람과 어울리는 시간은 많은데, 그렇게 하고 나면 내 안이 텅 빈 것처럼 느껴지고 피곤함이 몰려와 집안에서만 며칠 동안 콕 박혀있고는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무언가 결핍되어 있고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에 그런 문제들의 원인을 내 안에서만 찾았습니다. 그래서 깊은 자괴감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는 했죠.
첫 직장을 비슷한 이유로- 엄마가 내게 늘 말했던, 지나치게 예민하고 털어내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관둔 이후로 방에만 콕 박혀서 나는 사회 부적응자인가, 나는 무언가 잘못된 사람인가 고민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내 성향을 알자, 나는 내 첫 직장이 나에게 최악의 직장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물론 어떤 이에게는 그곳이 최고였을 수도 있지만요. 팀워크가 중시되고 예기치 못한 상황이 늘 발생하고 시간에 쫓기는 업무가 가득했던 그곳은, 내가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나와는 정말 맞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이었는데, 나는 그 사실을 뛰어넘어 내가 세모에서 동그라미로 변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모서리가 조금 둥근 세모가 될 수 있을지언정, 동그라미로 환골탈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그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영향으로 나는 너무나도 간절히 동그라미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내가 동그라미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허상이라는 것은 사회에 직접 몸을 부딪혀보고야 알았습니다.
나는 세모라는 사실이요.
세모라고 해서 모양의 한 종류일 뿐, 나는 결코 틀린 모양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물론 예민함과 생각이 많음으로 인해 그것이 피해망상과 억측으로 번지지 않기 위해 간간히 내 안에 절제력을 키워서 중립을 지켜야 했지만요. 그리고 내 생각에서 비롯되는 추측들로 인해 주변인들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입을 꾹 다물고 그 생각들은 내 머릿속에만 저장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배려해 중립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은, 반대 성향의 사람에게도 요구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반대로 내 예민함과 생각이 많음은 날카로운 관찰력과 사고력이라는 강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나는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부분은 예술 쪽에서는 창의력으로 변한다는 것을. 그제야 나는 내가 가지기 원하는 장점이 아니라, 진정한 내 장점을 보게 됐죠.
꽤 완만한 모양 덕분에 어디로나 쉽게 잘 굴러갈 수 있는 동그라미가 아닌 뾰족한 면이 있는 세모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도요.
지금도 스스럼없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럽기는 합니다. 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들뿐만이 아니라 세모, 네모, 별, 갖가지 모양의 사람들도 동일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의 모양을 인정하면 다른 이들의 모양을 인정하기도 쉽더라고요.
이 사실을 어렸을 적 깨달았다면 좀 더 일찍이 내 모양이 맞는 곳으로 향했을 텐데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깨달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라도 내가 다른 모양의 사람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내 모양 그대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안아줄 수 있어서 여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그렇게 되니, 나 스스로 나를 알게 되고 위로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조금 달라도 괜찮다고. 저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내게 큰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 다름에서 비롯되는 차이라고. 반대로 내가 별것 아니라고 여겨지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큰일로 다가갔을 때, 그 사람이 겪고 있는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토닥거려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모양을 보며 불쾌해하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을 보며 주눅 들고 내 모양을 숨기려고 급급하기보다는 보다 더 당당하게 내 모양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애써볼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나와 부딪히고 내 모양이 짜증 난다면 우리는 맞지 않는 거겠지요. 언젠가 지금 찾지 못한 매력을 발견해서 맞게 될 수도 있고요.
인생사 한 치 앞도 모르는 거니까.
혹시나 해서 이야기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나는 우리 엄마를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엄마가 없었다면 내가 이런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또한 엄마는 나를 위했기에, 내가 덜 속상했으면 바라는 마음에 위로차 나름의 현답을 던진 것이라는 걸 이제는 이해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야속하고 조금은 미웠던 엄마는, 내 마음속에 있던 매듭을 내가 스스로 풀고 나자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이 조금이라도 이 거친 세상을 수월하게 살아가는 바람에서 자기가 아는 것 중 최선의 것을 내게 내어주었을 것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금 결코 바뀌지 않는 당신의 모양을 보며 절망하고 있나요?
어쩌면 당신은 당신이 맞는 곳을 아직 찾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직 당신의 모양을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삶이라는 여정 가운데 언젠가는 당신이 꼭 맞는 곳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당신 마음속에 아직도 풀리지 않은 매듭이 있다면, 꼭 그것을 스스로 풀어내기를, 그리고 당신은 생긴 그대로의 모습으로 훨훨 날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나의 모양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나의 모양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다른 사람을 찾는 건 더 어려울 거예요.
물론 날개를 펴고 날아갈 때, 한가지 기억할 게 있어요. 우리는 날개를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펼쳐야 합니다. 주변에 있는, 다른 모양의 그들이 다치지 않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어찌 됐건 우리는 모두 필요한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힘을 내봐요. 아니, 오늘 힘을 내기도 벅차다면 그냥 흘러가듯 존재해봐요. 그러다 언젠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며 괴로워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보고 답을 찾기를. 아니면 적어도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여기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오늘도 당신의 모양으로 이 세상을 살아주어 감사합니다,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