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아서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아무런 선택권 없이 이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끊임없는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잠시 오늘 하루 동안 했던 선택을 되짚어 본다면, 당신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선택을 했음을 알 것입니다.
선택이라는 것이 인생에 큰 변화를 가지고 오는, 리스크가 많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오늘 점심에 뭘 먹을까라든지, 아니면 지금 내가 어떤 방향으로 돌아누울지를 결정하는 것도 선택을 요합니다. 물론 사소한 선택으로 인해 큰 변화가 찾아올 수도 있는 거지만요.
갓난아기 시절에는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부모님에 의해서 대신 이루어지지만,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가고 자아가 확실하게 생기면서 우리는 삶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 부분을 늘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비로소 성인이 되는 순간 법적으로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 선택을 할 완전한 권리가 생기지요.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그 선택권을 여전히 타인에게 맡기는 경우도 종종 있긴 하지만 말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우리는 의존적이라고 부르죠. 오롯이 자신이 선택해야만 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인생의 어느 시간에 다다른다거나, 어느 나이에 이른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괜찮은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리고 불완전한 인간들 중 그 누구도 완벽한 결정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으로 완벽해 보이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선택하기 전에 모든 위험요소들이나 실패 요소를 고려하려고 노력을 할 수 있을 뿐. 어떤 위험요소나 실패 요소가 있을지 충분히 고려하고 선택해도 우리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이라는 것도 존재하니까요. 그리고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일들은 우리의 삶에서 종종 일어나고는 합니다.
때로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답게 말이죠.
어렸을 때부터 차차 작은 선택부터 하게 되는 상황에 노출이 되면서 우리는 어느 선택을 통해서 어떠한 책임과 결과가 따르는지 서서히 배웠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놀이터에서 어떤 높이까지가 뛰어내리기 적당한 높이인지, 어느 정도까지 높이가 나를 다치지 않게 할지 같은 초등학생의 선택부터 시작해서, 나이가 들면서 어떤 사람과 내가 맞고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지와 같은 성인의 고민도 점점 생겨납니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기로 택한 경우라면 내가 언제 어떻게 독립을 해야 하는지, 어떤 집을 사야 하는지 말아야 할지 같은 고민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택을 위해서 내가 투자하는 것이 많을수록 실패할 위험도 크고, 또 그만큼 성공할 가능성도 크다는 뜻입니다. 그 선택 자체를 하게 될 때나, 선택을 한 후에 얻게 될 것들을 생각해 봤을 때 내가 가진 것을 걸을만한 가치가 있기에 우리는 그런 위험성이 가득한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 선택을 통한 실패와 성공의 여부가, 선택을 하는 각 개인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위와 같이, 우리 각 개인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내가 결정을 하기 위해 안고 가야 할 리스크를 알고서도 선택합니다. 하지만 선택하기 전의 가치관과 선택한 후의 가치관은 충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선택하기 전에는 돈을 얻는 것이 우선이었는데, 선택을 하고 보니 그게 아니라 가족이 최고라는 걸 깨달았다던지.
우리는 선택한 후에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지키기 위해서 힘을 씁니다.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또는 나의 인생에 값진 경험을 얻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선택을 위해서 나는 내가 가진 것을 걸었기에, 리스크를 안고 있기에 무언가 얻어내려 힘을 써봅니다.
어떤 선택을 위해서 기회비용을 꼼꼼히 따져보고 결정했을 수도 있고, 한순간의 치기 어린 결정을 했을 수도 있지만 어찌 됐건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해서 무언가 투자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바랍니다. 그 선택이 내 삶에 의미 있고 유익한 것이길 바라면서.
모두가 경험했듯이,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선택이 무조건 성공적이거나 가치 있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따져보고 고민했냐, 그리고 노력했냐 와는 상관없이, 한 선택을 순간적으로 꼬아버리는 그런 일도 생기고는 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의해서 통해서 여태 공들여서 쌓아온 탑이 와르르 쏟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억울하게 변명할 수 없이, 나의 약함 때문에 선택을 위해 공을 들인 그 탑을 나 스스로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억울한 경우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아무 결정권도 없이 무의미한 사람처럼 보이게 되지만, 그렇게 선택에 실패한 순간에도 우리는 또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실패에 원인을 찾기 위해 상황이나 타인을 탓할 건지, 아니면 내 선택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기로 결정하는 것 중 하나를 말입니다.
우리는 약하디 약한 인간이고 옆사람의 실패에는 의연할 줄 몰라도, 바로 ‘나’의 실패는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기에, 실패를 겪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장 먼저 분노합니다.
그 손가락질이 주변을 향하든지 아니면 바보 같던 나를 향하든지, 아니면 어느 전능하다고 믿었던 신을 향하든지 어찌 됐건 우리는 무언가를 세차게 원망합니다. 이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 전 과거로 돌아가서 그 선택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서서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고, 져야만 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내가 결국에 직면해야만 사실입니다. 그래서 몇 시간이 걸리든지, 며칠이 걸리든지, 아니면 몇 년이 흐르든지 우리는 아무리 피해도 실패의 현실을 직시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고 또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이 커 보이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그 책임을 주변 사람에게 떠넘기거나, 자신의 생명으로 대신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선택한 것으로부터 비롯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신이 선택하기 전 모습으로 원상복구를 시켜놓기 위해 책임을 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합니다. 어떤 이들은 선택을 하기 전으로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서 노력하고 어떤 이들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 앞으로는 더 좋은 선택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잘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깁니다.
처음에는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내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의 무게가 너무나도 버겁게 느껴지고, 때로는 그 책임을 감당해내야만 하는 시간의 끝이 보이지 않도록 너무나도 아득해 보여서 막연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또 하지 않았으면 나았겠다는 선택으로 인해서 삶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보다 못하게 아예 뒤로 끌어당겨진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다른 이들은 지혜롭게 선택을 잘해서 나보다 아득하게 먼 곳에서 앞서가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의 뒷모습을 볼 때는 인생이 한없이 불공평하다고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어찌어찌 젖 먹던 힘보다 더 힘을 쥐어짜서 그런 추운 시절을 견디고 나면, 또 어느 날 문득 햇빛이 들기도 합니다. 어둠밖에 없어서 너무나도 외롭고 춥던 내 인생에 한 줌의 햇살이 깃드는 것 같은 느낌이란. 원래 햇빛이 가득하던 인생일 때는 몰랐던 엄청난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정말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 같은 그런 기적적인 느낌과 비슷합니다. 그런 따스함이 조금씩 커지면서 또 인생이 비로소 정상 궤도에 오른 것 같은 느낌을 느낍니다.
인생을 겨우 제자리로 되돌려놓은 느낌.
거기까지 다다르면, 나는 선택 전에 서있던 제자리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달라진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떤 것을 보는 눈도, 가치관도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나의 변화된 부분들을 콕 집어낼 수 있고, 어떤 이들은 나의 무엇이 변화되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무튼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은 깨닫습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라든지, 어디에 가치를 두는 것이라든지, 두루뭉술하고 추상적인 무언가가.
그것이 순수함을 한 꺼풀 벗겨내고서 무미건조한 어른의 삶으로 한걸음 다가서게 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겉을 싸고 있던 무의미한 치장을 벗겨내고 더 순수한 모습으로 한걸음 다가서게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던지, 선택을 통해서 책임을 져 봄을 통해서, 그 괴로움으로 인해 우리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선택을 하고 그것에 책임을 지는 것을 경험해 봄을 통해서 하나의 퍼즐 조각이 완성되고, 그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특별하고 하나뿐인 나의 삶의 퍼즐을 점점 더 완성해 나갑니다. 아름답게 완성된 그림을 보기 위하여.
나로 인해 고단한 세월을 보내게 만든 미운 모양의 퍼즐도, 햇살만 찬란하게 비추는 봄날 같던 예쁜 모양의 퍼즐도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것들이 모두 있어야 비로소 퍼즐을 완성시킬 수 있으니까요.
죽음이, 삶의 마침표를 찍게 되는 순간이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퍼즐의 완성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지금도 완성되지 않은 모습으로, 퍼즐 몇 조각만 가진 채로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상황 속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퍼즐이 완성되지 않았음에 슬퍼할 이유도, 아직 조각이 빈자리가 많다는 것에 우울해하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을 놔두고 그만두지 말아요. 또 손에 쥔 퍼즐 조각을 어디다 맞춰야 할지 모른다고 해서, 화가 난 채 그것을 부숴버리거나 던져버리지 말아요.
또 그 갈 곳 없어 보이는 조각을 연결할 수 있는 다른 조각이 삶의 어느 순간에 나타나게 될 것이니까.
그리고 내 인생에만 특별히 주어진 퍼즐이 완성되면 분명히 아름다운 그림이 나타날 것이니까.
그러니까 아직 이 인생을 놓아버리자고, 끝내버리자고 단정 짓지는 말아요.
당신에게만 주어진 그림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에 있으니까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