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들지 않는 사랑도 있다
어떤 선택은 끝나는 순간에도 끝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문장처럼 남는다. 그때 병원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조금 더 버티게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다른 밤을 맞게 되었을까. 그 가능성을 나는 지금도 완전히 부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날의 선택을 쉽게 말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날 우리 곁에 남은 것은 수치나 기계음보다 서로에게 건넨 목소리였다.
“사랑해요.”
“고마워요.”
“엄마, 우리 여기 있어.”
죽음 앞에서 가족은 자주 두 가지 두려움 사이에 선다. 살리지 못할까 봐 두렵고, 괜한 고통을 더 길게 만들까 봐 두렵다. 둘 다 사랑에서 나온다. 그래서 더 어렵다. 사랑해서 하는 결정인데 나중에는 스스로를 탓하게 되는 결정이기도 하다. 더 할걸. 덜 할걸. 그때 병원으로 갈걸. 아니, 그냥 집에 둘걸. 이 문장들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돌아온다.
그래서 나는 시간독립이 나만을 위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를 남겨둘 사람들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다. 물론 기준을 남겨둔다고 해서 슬픔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아픈 사람이 없는 자리는 여전히 아프다. 하지만 적어도 모든 결정을 추측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그렇게 짐작했다”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해두었다”는 문장을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훗날 나를 보내야 할 사람들에게 이 말을 남기고 싶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써야만 사랑인 것은 아니라고. 어떤 순간에는 다른 방식의 사랑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