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와 휴가가 싫어질 때.

by 끝의 시작

긴 연휴가 주어지거나, 휴가가 길어지면

어느 순간 어김없이 찾아오는 감정이 있다.

달콤했던 해방감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무료함이 밀물처럼 스멀스멀 찾아든다.


왠지 좀이 쑤시고, 괜히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

문득 ‘사람은 모름지기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던,

쉬면 오히려 병이 난다던 어른들의 말씀이 새삼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동조한다.


이내 ‘아주 배가 불렀구나’하는 생각을 한다..

‘사람이 배부르고 등 따수우면 감사함을 잊는다’는 또 다른 옛말처럼,

이 무료함이 얼마나 귀한 상태인지 잠시 잊었던 것은 아닌지.


이런 기분이 들 때면,

나는 스무 살 무렵 병원에 한 달 남짓 입원했던 기억을 떠올리곤 하는데,

매일 무언가에 쫓기고 치이며 살던 시절

그 한 달 간은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처음 며칠은 해방감에 좋았지만

이내 견딜 수 없는 무료함과 싸워야 했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았고

다시는 입원이라는 걸 경험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너무나 바쁘게 사는 시기가 되어서는

그 기억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인생에서 그토록 완벽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아무도 나에게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시간이 또 올 수 있을까.

하루 종일 웅웅거리며 울려대는 핸드폰이 조용해질 그런 날은

아마도 한참의 시간이 흘러, 퇴직 후에야 찾아오지 않을까?

한 번 쯤 다시 입원해보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물론 아픈 것은 싫으니, 그냥 병원에 입원해있기만 하고 싶다.


여튼 그래서 나는 시간적으로 무료함이 밀려와 견디기 힘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

무료함 그 자체에 감사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노력을 한다.

왜냐면 그것이 즐겁든 그렇지 않든,

이 공백이 내 인생에서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는

어쩌면 아주 귀한 순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쉼 없이 달려왔던가.

10대 때는 더 좋은 성적을 받겠다고, 20대에는 더 좋은 직장에 가겠다고,

그 이후에는 더 많은 성취와 내가 지켜야할 것들이 늘어남에 따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고, 더 앞서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불안해하고,

심지어는 죄책감마저 느끼게 된 듯하다.


무료함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그 시간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다.


무료함은 단순히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또 다른 종류의 시간인 것 같다.

끊임없는 외부의 자극이 멈춘 그 자리에서,

내부의 고요한 정적 속에서 비로소 다른 것들을 찾을 수 있다.


마치 분주하게 흘러가던 강물이 멈추어 고요한 호수가 될 때,

비로소 그 맑은 수면 위로 하늘과 주변 풍경이 온전히 비치듯,

우리의 마음도 그러할 것이다.

일상의 분주함이 잦아든 그 빈 시간 속에서

우리는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자기 자신과 세상을

조금 더 깊고 투명하게 마주할 기회를 얻는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doing’의 시간 못지않게,

그저 존재하는 ‘being’의 시간 또한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러니 다음에 또다시 무료함이 밀려올 때,

그것을 황급히 밀어내려 애쓰기보다

한번 가만히 그 안에 머물러보는 것은 어떨까.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이 무료함이 갖는 진짜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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