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해 남짓, 나의 유년과 청소년기는 한 지붕 아래에서 흘러갔다.
내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는 먼 미래를 내다보시며 그곳에 터를 잡으셨다지만,
내가 그 집을 떠나올 때까지 동네는 여전히 허름한 풍경 그대로였다.
개발이라는 말은 마치 먼 나라 이야기처럼, 우리 동네를 비껴간 듯했다.
집 앞 좁은 골목은 늦은 오후면 교복 입은 형들의 아지트가 되곤 했다.
집으로 가다가 후다닥 도망치는 날도 있었고,
가끔은 어린 나를 붙잡아 구멍가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다.
어른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그늘진 풍경같은 기억이다.
하지만 그 집은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 집은 친구들 집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학교가 끝나면 으레 친구들이 현관문을 두드렸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할 것 없이, 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장난기 어린 목소리들로 가득 찼다.
함께 뒹굴고, 꿈꾸던 그 시간들.
낡은 집이었지만, 그곳은 분명 우리들의 작은 왕국이었다.
그렇게 떠나온 동네는 한동안 머릿 속에만 남아있었고,
다시 그곳을 찾을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몇 년 전, 업무차 인근에 들렀다가 문득 동네로 발길을 옮겼다.
설렘과 아련함이 뒤섞인 묘한 기분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내가 기억하는 낡은 건물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달라진 분위기.
새로 칠한 페인트, 바뀐 간판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알고 있는 나의 호흡.
마치 오래된 앨범 속 빛바랜 사진과 지금의 모습을 겹쳐보는 듯한 느낌.
더듬더듬, 기억 속 풍경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며 길을 걸었다.
어릴 적 TV에서 보았던, 잃어버린 가족찾기 프로그램에서 애타게 고향을 묘사하던 사람들처럼,
나는 그곳에서 나의 어린 시절을 찾고 있었다.
세월의 더께는 골목길뿐 아니라 나에게도 내려앉아 있었다.
훌쩍 커버린 키, 조금은 깊어진 눈가의 주름, 그리고 달라진 시선.
그 골목길에 서니, 비로소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나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고향이란 무엇일까.
남들이 보기엔 그리 번듯하지도, 자랑할 만한 것도 없는 동네였는데,
왜 이따금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지며 그 시절의 풍경이 떠오르는 걸까.
단순히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곳에 깃든 시간과 기억, 그리고 함께 했던 사람들의 온기
흙먼지 날리던 그 골목길에서, 서툴고 미숙했지만 순수했던 나의 한 시절이 숨 쉬었다는 사실.
돌아오는 길, 마음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일렁였다.
그리움인지, 아쉬움인지, 아니면 그저 흘러간 시간에 대한 담담한 수긍인지.
분명한 것은, 그 허름했던 동네는 여전히 내 마음 한편에 따뜻한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도 종종, 나는 그 흙먼지 날리던 골목길을, 그곳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들의 얼굴을,
그리고 철없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살아갈 것이다.
그곳이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