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는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질이다.”
학창 시절 어느 교사에게 들은 말인지, 아니면 사회(요즘은 이름이 다르려나?) 책에서 읽은 문장인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투표 참여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해봤다. 이전까지는 으레 ‘난 성숙한 민주시민이니깐!’ 하며 투표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못 뿌듯하기도 했던 것 같다. 휴일 나들이를 가기 전 새벽같이 투표를 하고 가는 이들도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한 뿌듯한 표정의 뉴스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면 나만 그리 생각하고 느낀 것은 아닌 것 같다.
‘참정권’
일상을 살며 정치에 참여할 일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4, 5년에 한 번씩 행사하는 저 권리가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질’이라는 것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 참여한 선거로 이득을 본 사람은 누구일까? 정치는 사회를 발전시키는 기반이 되는 것이니 우리 모두가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인가? 그렇다면 왜 30년 전보다 지금이 더 중산층이 사라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졌을까? 여전히 부동산 가격은 내릴 줄 모르고 직장인들은 모두 자산의 수배 넘어가는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정치인들이 이번에 뽑아주면 해결하겠다고 한 그 정책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코로나로 인해 국가 발전의 기반이 된다고 하는 교육, 학교의 개학까지 미루고 온라인으로 바꿔서 진행하고 있는 마당에 선거는 강행되었다. 여러 사족이 달릴 수 있겠지만 결국 정치인들의 밥그릇이 달린 일을 국민이라는 피상적인 숫자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의 부의 축적이 달린 그리 중요한 일이니 ‘참정권’, 투표를 하는 일도 교과서에 넣어 어린 시절부터 주입시켰던 게 아닌가 싶다. 때가 되면 당연스럽게 가서 자신들의 권력과 부의 축적에 정당성(너네가 뽑았잖아)을 부여하도록 말이다.
“투표는 너의 중요한 권리이다.”
“네가 성숙한 민주시민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네가 사는 미래를 바꾸는 일이다.”
바뀌었나? 글쎄, 그랬던 중요한 역사적 변곡점이 있긴 했지. 군사정권의 붕괴라던지, 국가를 개인의 밑천으로 삼았던 수뇌들의 몰락이라던지. 근데 그렇다고 사람들의 생활이 더 나아졌을까? 거시적인 사회적 변동 말고, 미시적인 내 눈앞의 사람들의 일상 말이다. 안타깝지만 그 대단한 권리 행사로 내 주변의 사람들의 일상이 더 나아지진 않은 것 같다.
무척 피로해졌다. 결국 권력이 어느 쪽으로 이양되든, 거시적인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든, 득을 보는 자들은 결국 정치인들이고 일상의 우리는 정치에서 격리된 완전한 타자로서 점점 더 일상이 힘들어질 뿐인데... 투표라는 행위가 결국 국민들을 상대로 대단한 변화를 가져다줄 것 같은 이미지 마케팅을 기반으로 한 정치인들의 밥그릇 쇼에 놀아나는 것과 다름이 아니어서, 그들의 당이 어느 소속이건 결국 그놈이 그놈이라 그다지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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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국 시간을 내어 투표를 하고 말았다. 놈들의 쇼에 마지막으로 놀아나는 것이 될 것이다(이건 종교 버리는 일보다 어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