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랗게 물든

by Hache

외로움은 고독이 된다. 산책길의 고독이 곁에 머묾을 느끼는 순간, 주변은 고요해지고 하루 내 무언지 모르게 불안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해는 저물고, 그가 남기고 간 흔적에 의존해 파랗게 물든 저녁 일곱 시의 대기.


허클베리핀의 음악(이 앨범은 노래라 부르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라디오’, ‘오로라’, 항해’. 쿠로키 하루와 카호 주연의 영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라이트 노벨이라 너무 가벼울 듯하여 책을 읽지 못했는데 영화가 너무 좋아서인지 전체를 다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줄거리도 나름 흥미롭지만 전체를 아울러 오래된 일본문학들이 소개되는 부분에, 혹은 책을 좋아하는 등장인물들에 동질감이나 친근감이 느껴져서인지 모르겠다. 평점이 저조한 걸 보니 역시 책, 특히 문학을 등한시하는 국내 정서에는 맞지 않은 것임이 분명하다. 오히려 그 부분이 더 마음에 든다. 좋은 건 나만 알고 싶은 덕후의 기질이 발휘되는 부분인 것 같다. 오래도록 이런 영화들이 한국에서 낮은 평점으로 남길). 그리고 히비키(響).


온종일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워진 시간 덕분인 듯하다. 아니, 나를 감출 수 있는 어둠이 드리우는 시간이 되어서 마음이 차분해졌을 것이다. 쉬는 시간조차도 불안해하다니, 어쩜 이렇게 된 건지. 사회생활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니고, 나만 사회의 그물망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님에도 왜 이런 무기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아니, 굳이 벗어나지 않는 게 더 나을지도, 이 사회에서는 말이다, 그냥 숨을 오래 참고 물속 저 깊은 곳에서 그냥 그렇게 답답하다고 느끼며 나올 꿈조차 꾸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낫다. 안타깝지만 이 사회는 우릴 그렇게 밀어 넣는다. 탈출구 따윈 없다는 걸 이제 와서 알아봐야, 별다른 방법도 없다. 처음부터 그렇게 규정된 계급이었던 것이지.


해외 유명 관광지의 반짝이는 풍경 아래, 그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이 친구들과 환한 표정으로 웃는 사진을 본다. 해외인 것이, 유명 관광지인 것이 부럽진 않다. 그 표정의 가벼움이, 그럴 수 있는 누려온 삶이, 누군가로부터 보호받아와 세상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는 밝음이, 의심 없이 친구라는 것을 둘 수 있는 마음의 경쾌함이 부럽다. 다만 그게 내 세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덤덤히 받아들일 뿐.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했잖아.




아니, 착각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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