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출근길

by Hache

검은색으로 물들여진 한지를 하얗게 보이도록 하는 일이 가능할까? 물을 가득 부으면 될까? 아니면 흰색 아크릴 물감으로 뒤덮어버리면 된 건가? 일순, 혹은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스며든 검정을 빼내는 일은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이미 그것은 검정한지라 이름 붙여야 적절하지 않을까?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 폭정 속에 노예 병사가 되어 인생 전체를 소모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이름조차 없다. 대충 아무거나 가져다 붙인 별명(예를 들어 벌래의 명칭)이 그들의 이름이다. 어느 날 성경의 그것처럼 구원자가 나타나 일순간 그들을 해방시키고 노예 병사들에게 자유를 누리라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도 떠나지 않는다. 아니, 떠나지 못한다. 이미 구속된 그것이 세월에 의해 그들 자신의 정체성이 되어있기 때문에. 좋든 싫든 그들은 소모품으로 죽어야만 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고 다시 구원자의 명령을 따르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매일 아침 직장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서두르고 있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 헤매는 우리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과도한 일반화 일런지.


왜 난 행복한 문장을 쓸 수 없는지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파편화된 생각들이 머리를 뒤덮는다. 노예의 출근길에 이런 생각은 사치란 생각이 든다. 그만 쓰고 노래나 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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