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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씨 Jan 27. 2023

npc

팀에 새로운 구성원이 추가되어 적응을 돕기 위해 출근한 지 2주째, 출근길 처음으로 자리에 앉아볼 수 있게 됐다. 가장 번잡한 두 개의 역을 지나자 제법 지하철 내부는 한산해지고 맞은편에 앉은 이들과 시선의 막힘 없이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가만히 앞을 보고 있으려니 앞사람과 눈을 마주칠까 허공을 응시하게 된다. 문득, 어쩌면 이 공간에 매일 오전 8시 43분에 있어야만 하는 처지가 불행하게 여겨지고, 눈을 마주치면 상대의 눈을 통해 그러한 자신의 불행이 눈앞의 현실로 적나라하게 인지되는 것이 두려워, 맞은편에 앉은 저 사람이, 아니 이 공간의 모두가 사이버 세계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상의 공간 안에서는 보드를 타며 설원을 가르고 있고, 또 서부 유럽의 멋진 경관 속을 걸으며 감탄하고 있기 때문에. 상상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이 1년 365일 중 휴가 15일과 주말을 제외한 매일이 되면 이러한 중독 없이 매일을 버텨낼 방법이 있을까 싶다. 이미 커피에 완전히 잠식되어 버린 나도 믈론 예외는 아니다.


2023년에도 생의 깊숙한 곳을  또한 살아가며 디지털화된 세계  인간개체 군집 행위에 대한 관찰 계속하게   같다. 관찰은 매우 쉽다. 아침, 저녁, 천체의 운행과 관계없이 지하철이란 공간은 언제나 칠흑의 어둠이며  누구도 앞을 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관찰도 그들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지 않는다. 모두가 지하철 공간에 길들여지며 실세계의 가상 npc 되어 있어 관찰이 관찰 대상에 영향을 미치  또한 없다. 언젠가, 원시세계의 본질에서 크게 진보되진 못한, 4분의 1쯤만 디지털화된 인간 세계에 대한 2023 1월의 지하철 기록을 누군가 보게 된다면 그것이 오늘 내가 보낸 시간의 유일한 유의미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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