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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씨 Mar 06. 2023

또아무글

무기력과 싸우는 일은 제법 지난한 과정이다. 무언가 생산적인 일은 끊임없이 해야 한다 압박하는 현대사회에서  이외에는 무엇도 가치 있게 보이지 않는 일들에 가치를 부여할만한 무언가를 찾아 하려는 생각을 쉴 때조차 하게 되는 것은  진이 빠진다. 


인간종은 본래 여느 동물과 다름이 없다. 밝을  눈이 떠지고, 허기가  먹을 것을 찾고, 추워서 따뜻한 곳을 찾고, 외로워서 다른 생명체를 찾고, 힘들어서 눕고 잠들고, 또다시 해가 뜨면 눈이 떠지는, 그저 행성 자전과 공전에 평생 영향을 받으며 유기체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눈감음과 뜸을 반복하는 것뿐이다. 그곳에 가치를 부여하려 하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 무언가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다르겠지, 나는 타인과는 다르겠지, 태어난 의미가 있겠지, 의미, 의미, 그놈에 의미.


그런 것 따위 없다. 수없이 다시 생각해 봐도 그런 건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그리고 종교도, 허상에 불과하다. 그곳에 몸을 바친다고 지구가 하루에 10 정도  공전하나? 내면에 뿌듯함을 느낀 들,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든, 인간종의 삶이   편리해지든, 대충 100년쯤 지나면 흙이 되는 결말이 변하나? 


유일한 진실은 두려움이다. 두려움. 혼자가 되는 두려움, 배고픔의 두려움, 추위의 두려움, 인간종은 그저 두려워서 의미를 찾아 헤맬 뿐이다. 다른 종은 두려움을 어떻게 해석하고 살아갈까? 그저 자연스럽고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인간종처럼 두려움을 보험가입으로 극복하는 장치 같은 게 있을까? 늙음에 대한 두려움을 국민연금 같은 지배수단으로 삼는 행위가 있을까? 걔네는 태어난 의미를 고민할까?


3월이 벌써 일주일쯤 지나다 보니 낮시간 햇살은 제법 따뜻해   공원엔 멀리서 원정온 나들이객들이  많이 늘었다. 산책 나온 강아지의 개체수도 눈에 띄게 늘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단위도 많다. 다들 따뜻함을 느끼려 나온 것이다. 주말엔 가족과 행복해야 평일을 저당 잡히는 삶에 의미가 있다는 공식에 맞춰 힘들지만 집에서 쉬지 않고 나온다. 행복을 느끼기도, 오히려 피로를 느끼기도 하는 표정이다. 그들 사이를 걷는다. 내가 좋아하는 햇볕을 마주하며 걷기. 그리고 돈.  시간이 돈으로 환산되는 시간에 조금 여유를 부리며 딴짓을 해보는 정도의 행위. 씁쓸한 커피. 달콤한 도넛. 그냥 순간순간 이런  느끼는  삶의 전부이지? 피곤하거나 고통스럽고 싶지 않은  시간을 유영해 가는  만으로 마음이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허망한 바람이나 빌어본다. 그래봐야 여섯시간쯤 뒤면  눈뜨고  의미없는 하루를  보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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