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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씨 Jun 09. 2023

퇴근버스에 올랐다

 하루를 보냈다. 이번주는 이틀만 출근하는데도 하루 만에 곤죽이 되고 말았다. 기대하는 사람. 본전을 생각하는 사람. 자존심을 세우려는 사람. 마음이 급한 사람. 상처 입은 사람.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는 동안 나를 잃어버리고 퇴근버스에 올랐다. 멍한 눈동자로 아무 생각도   없이, 플레이리스트를 바꿀 힘도 없이 머리를 차창에 기댔다. 다리를 창쪽으로 비스듬히 뉘었다. 하루 동안 알게 모르게 서로 주고받은 모욕과 상처를 생각했다. 알지 못한 채 상대방을 상처 줬다. 알지 못한 채   상처를 돌려받았다. 상처를 받았지만 아픔을 느낄 힘도 남지 않았다. 창밖은 벌써 어둠. 흐린 날이 이어지고 있어 아침 해를  새도 없이 건물로 들어가 노을을 보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나왔다. 회색 콘크리트 뱃속에서 하루가 사라졌다. 햇빛을 보고 싶었는데 보지 못하고 하루가 지나갔다. 우울해질 힘도 없어졌다. 퇴근 버스는 비스듬히 고가도로를 타고 내려갔다. 눈앞을 스쳐가는 가로등을 힘없이 바라봤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도 남은 힘이 있을 때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하나도 견디기 힘든 사람에게 주변을 챙길 힘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니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내려놓을 자신도 없는 현실을 한 달만  참은  보기 좋게 버려버리겠다고 상상했다. 잠시 통쾌했다. 잠시  금세 걱정이 들었다. 이젠 마음에 안 들어도 마음껏 버릴  없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마음의 무게가  빠져나갈까 기대했지만 무게는 그대 로고 허전함만 더해졌다. 요즘은 사무실에서도 깊은 한숨을 자주 쉬곤 했다. 딱히 눈치를 보지 않고 힘듦을 표현하게  점만큼은 스스로 마음에 들었다.  이상은 여전히 어렵겠지만. 차창에 비친  눈을 바라봤다. 90 노인의 눈동자를 보는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치열하게 살고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한 채 기력이 쇠해버린 실망스러운 사람이 보였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아빠처럼도 살지 않을 거야.  누군가를 위해 살지 않을 거야.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 거야. 그렇게  행복해질 거야.  되지 못한 다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불가능한 것이었구나. 애초에 행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행복해지겠다고 했다니. 버스는 오늘도 어제처럼 같은 자리에  내려놨다. 버스에서 내리는 것조차 경쟁하는  나라. 아무 힘도 남아있지 않은 나는 경쟁을 포기했다. 내리면 어차피  똑같으니 무의미하다. 오늘도 버스기사에게는 인사하지 않았다. 친절은 나눠서 뭐에 써먹나 싶었다. 인사를 뒤로한  듣지도 않는 이어폰을 끼고 안 들리는  내렸다. 엉망진창이구나. 나도 사람도 일도 만화경  그것처럼 엉망진창인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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