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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씨 Mar 14. 2024

지루한 하늘

20240312 흐린 봄이 이어지는 어느 점심 무렵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인간의 몸에 갇혀 살 때 숨 쉬는 것과 같은 당위를 가지는 명제라 아는지 모르는지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은 일이다. 언젠가부터 국을 직접 끓이는 문화는 사라졌다. 팩으로 포장된 된장찌개, 부대찌개, 추어탕 등 종류도 다양하게 이미 만들어진 식품들이 배달되어 단순히 열을 가해 끓이기만 하면 되는 세상, 그다지 오래된 세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변화는 어릴 적 모습과 꽤나 괴리를 느낀다. 편리함, 빠름, 간단함, 그 안에 정성이나 사랑,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담겨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하루 두 끼 혹은 세끼를 반드시 먹여줘야 하는 한 몸뚱이를 구하기에는 효과적이다. 이런 편안함에도 불구하고 귀찮은 점이 있다. 냄비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 사용한 냄비는 또 씻어야 한다는 점이다. 직접 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이런 행위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날이 여러 날을 걸쳐 흐리고, 설거지를 하지 않고도 국을 먹을 수 있는 냄비가 없다는 사실은 육체가 보내는 신호보다 귀찮음의 무게를 높이기에 충분하다, 대충 비스킷 몇 개를 빼서 심한 허기만 해결하고는 그대로 책상에 앉는다. 오늘은 구름이 정지해 있다. 낮게 깔린 먹구름이지만 잘 움직이지 않는다. 지루하게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 역시 지루한 회색, 지루함과 귀찮음은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도서관은 언제나 밝고, 높고, 잔잔한 음악이 책장 사이사이를 흐른다. 흐리거나 맑거나 비 오거나 눈 오거나 상관없이 늘 안심이 된다. 조용함의 공기입자, 이곳에서 가장 시끄러운 것은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옷을 입은 나 하나다. 잠을 청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체로는 다들 무언가에 머리를 처박고 열심이다. 어느 수필집을 읽고 싶어 서가를 헤맨다. 라디오북으로 어설픈 재주 방언을 재밌게 들었던 김금희 작가의 '복자에게'가 보인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작가의 책을 찾아보다 단편집을 한 권 집어 들고 나왔다. 들어올 때 보이던 운동장의 중학생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 정해진 자리로 모습을 감춰야 하는 것은 중학생이나 직장인이나 같다. 학생 때 왜 우린 이렇게 갇혀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많다. 원하지 않는 시간에 억지로 등교해서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갇히고, 원하지 않는 사람의 강의를 듣는다. 원하지 않는 식사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먹는다. 원하지 않는 시간에 깨어있고 원치 않게 책상에 앉아있다. 원하지 않는 교과서를 본다. 어쩌다 보니 원하는 건 하교 하나가 되었다. 지금도 원하는 건 퇴근 하나, 그 외엔 학교와 같다. 이러려고 학교란 것을 만들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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