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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옹씨 May 12. 2024

불. 혹.

햇빛이 좋은 날에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등에 땀이 주르륵 날 정도로 따뜻해진 날이 오월이지만 벌써 여름을 연상하게 한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엔 아이들이 많다. 영유아, 초등학생, 중학생, 비교적 적은 편인 고등학생까지. 이른 오후에 산책을 하다 보면 삼삼오오 무리지은 아이들이 지나가는 뒷모습을 보게 된다. 쟤네는 기껏해야 열다섯 살 남짓, 셋이 합쳐봐야 서른다섯…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그제야 실감을 한다. 저 애들이 말하는 삼촌, 아저씨, 소위 어른의 나이가 됐구나, 세명을 다 합쳐도 동생 한 명을 더 데려와야 나와 비슷한 나이가 되겠구나.


산술적 논리 앞에서 몸이 말하는 신호보다 더 명징하게 나이 듦을 인지한다. 난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고. 더 이상 꿈이나 희망, 되고 싶은 게 무어냐는 질문을 하면 안 되는 나이라고. 어릴 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호기로운 마음이었지만 정작 그 나이에 이르니 상관이 있다. 모든 건 때가 있다고.


아쉽지만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이번 생의 최선이라는 걸 받아들인다. 더 이상 속 앓이 할 필요도,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마음이 시원하다. 맑은 날엔 하늘이 맑구나, 흐린 날엔 빗소리가 좋구나,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인걸. 누군가 나이가 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던데 그건 진짜였다.


불혹. 무슨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진짜 불. 혹. 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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