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마흔이 가까워졌으나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비슷한 문장을 드라마 인간실격의 인물 김부정을 통해 들었을 때는 축축하고 암울한 시간들을 암시하는 비지엠 위에 놓여 그곳에서 풍겨 나오는 느낌과 인물의 시들어버린 표정이 압도적이었고 그래서일까, 그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겐 어떻게 적용될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흔한 중년의 실패 이야기 비슷한 무언가겠지 정도? 나랑은 상관없는 드라마의 이야기일 뿐, 그게 내 얘기가 될 거라고 상상하진 못했다.
지난밤 별것도 하지 않은 놈팡이가 주말 피로에 취해 씻지도 않고 잠들었다. 물론 최소한의 양심에 이는 닦고 누웠다. 아침 아홉 시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조금은 마음이 조급해지는 꿈을 꾸다 일어났다. 다시 이를 닦고 세수를 한 후 거울을 바라봤다. 이런… 반년 넘게 손질하지 않아 삐죽삐죽 사방팔방 꼬이고 튀어나온 머리카락의 사내가 보인다. 긴 쪽의 머리는 대충 위로 올려 묶고 정돈되지 않은 머리쯤 신경도 쓰이지 않는 듯 무신경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내 떠올렸다, 그 문장을. 김부정의 어둡고 숨 막히지만 내겐 혼돈의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던 그 대사가.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해서 정말 최악이 된 건 아니다. 김부정처럼 홀로 서울 이름 모를 오피스텔의 원룸에 사는, 치매에 가까워진 아버지를 두고 있진 않다. 함께 일하던 사람에게 크게 배신당해 커리어를 잃고 경찰에 간간히 불려 가는 일은 없다. 생업이 걱정되어 고급 아파트의 청소부 일을 해야 하지도 않다. 반쯤 바람을 피웠던 마마보이 남편이 있거나, 서울에 아파트 한 칸을 사줬다는 이유로 현관 비밀번호를 아들에게 공유받고 자유로이 내 집을 드나드는, 나의 일상을 시시콜콜 관여하며 괄시의 말을 일상의 폭력으로 내뱉는 시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 아버지에게 가서 식사 한 끼 대접하기 위해 현금지급기에서 소액대출을 해야 하지도 않다. 애초에 대출이나 빚은 나와는 무척 거리가 먼 단어이다. 주식, 증권, 비트코인, 무엇하나 손대본 적도 없다. 스톡옵션이란 걸 두 번 받았지만 실재 가치가 보이지 않아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듯 회사를 두 번 떠났다. 정말 최악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되지 못한 건 이제 내가 받아들여야 할 선명한 명제이다.
아마 나이가 이제야 김부정과 비슷해져서 든 생각일지도 모른다. 바라던 것을 향해 걸어왔다. 그것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했고 종종 두려웠지만 의심은 없었다. 걱정은 늘 주변의 몫일 뿐이었다. 먼 길을 걷고 나서 보니 가야 할 길이 아니라 그저 싫은 것을 피해서 아무 데로나 온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 뭔가 잘못됐는데… 시작지로 돌아가기에는 이곳에선 더 이상 어디서 출발했는지, 어디로 몇 번 방향을 꺾었는지 조차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애초에 돌아가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자존심만 남은 중년.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중년. 별것 아닌 인생 중 그나마 성취가 좋았던 과거시절만을 수백 번 되뇌며 현재 자신이 선 곳을 괄시하는, 결국 자신을 괄시하는 것이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잠꼬대처럼 같은 이야기를 되뇌는 중년의 모습은 내가 혐오하는 개저씨들의 그것과 데칼코마니이다. 데칼코마니의 왼쪽은 아마도 나다.
제가 넥슨에 다닐 때는요…
새로 온 팀장을 행복하게 해주는 셀프 마법주문. 그가 그 시절을 무척 그리워한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명백하다. 팀 커피챗을 할 때 이 ‘웬 아이 워스 영’이 시작되면 모두들 유체이탈 눈동자가 된다. 처음 들었을 때는 흥미로웠지만 이젠 시골 큰아버지의 오백 번째 똑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그 얘기가 시작되면 삼십 분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되고 덕분에 우리는 천천히 회사 돈으로 커피나 마시며 30분 치 급여를 적립할 수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아니지. 그건 너무 올드하고 요즘 엠지 표현을 빌리자면 ‘개이득’. 씁쓸한 것은 팀에 소속된 인원들의 나이 분포를 보면 난 나이 든 쪽, 팀장에 훨씬 가깝다. 심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난 올드맨이다. 그럼에도 한참 어린 사람들과 조소의 눈빛을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마흔 가까이 되도록 여즉 성정이 자라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사회가 바라는 대로의 사람이 결국 되지 못해서일까. 혼돈되는 부분이다.
마흔이 가까워지도록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아니. 마흔이 가까워지도록 나는 사회가 바라는 대로의 사람이 되지 못했다. 복종을 요구하는 사회. 이미 정해져 있던 틀이 있는 자본주의. 적당히 맞아떨어지는 톱니바퀴가 되지 못해서 결국 덜커덩 삐그덕 기계를 망가트리게 될까 아예 교체해버려야 하는 부품. 그러므로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규격 외 부품이 되었다. 규격 외 부품. 사회. 시스템. 기계. 적당한 사람. 적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