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격화는 반쪽짜리 성공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한국 사회가 규정한 규격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인지하고 삶의 명제를 만들었던 시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다. 고등학교는 동아리라는 것을 만들어 운영한다. 정규교육과정의 주지교과 교육 외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을 공교육이 운영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구색 맞추기 시간이다. 애초에 공교육이란 학생 개개인의 자아실현이 목표가 아니라 한 사회를 굴러가도록 하기 위한 적당한 부품 생산이 목표이다. 교육현장이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학생들은 대충 짜인 프로그램 안에서 담당 교사의 관리감독 하에 제한된 장소에서 일주일에 두어 시간 대충 시간을 보내고 오게 된다. 부서의 이름에 상관없이 대충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잡담을 하거나 재밌는 영상을 보거나 배드민턴을 한다. 동아리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는 부서는 밴드부, 댄스부, 농구부 정도이다. 세 가지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활자와 도서관이 주는 고요를 더 좋아했던 나는 도서관부에 가입했다.
서가 정리를 하는 일은 굉장히 간단한 일이었다. 십진분류표에 맞춰서 부여된 일련번호를 보고 해당되는 서가를 찾고 번호와 작가 성씨를 찾아 소분류 번호 순서대로 껴넣기만 하면 된다. 이 일이 대단히 만족스러웠던 이유는 ’아무도‘ 도서관이란 곳에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학급당 인원은 50여 명 내외, 학년당 12개 반 내외로 운영되었으니 고등학고 총원이 대략 1,800여 명 정도였다. 인원이 많은 만큼 도서관은 꽤 많은 장서를 보유한 거대 서가였는데 그곳은 늘 적막했다. 남학교라 더 그랬을 것이다. 짐승에 가까운 사춘기 1800여 명이 교내에 서식하는 곳은 늘 정해져 있었다. 매점, 운동장, 체육관, 복도, 그리고 교실 뒤편. 인간의 1차원적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공간들. 덕분에 몇 안 되는 반납 도서를 카트에 끌고 십 분도 안되어 정리를 마친 후 소음도, 빛도 차단된 곳에서 책먼지들과 함께 고립의 자유를 잠시간 맛볼 수 있었다. 관심 있게 보던 책의 작가들, 예를 들어 ’시오노 나나미‘ 라던지, 의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책들을 살펴보며 교육을 가장한 이 파놉티콘에서 그 너머를 꿈꿔나갔다.
어느 금요일 역시 비소설 분류 서가를 정리하다 한 권의 책을 보게 됐다.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작가 이름은 홍세화. 자세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제목으로부터 막연한 끌림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세느강‘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주워들었던 파리에 있다는 유명한 강. 혁명과 자유의 발원지 프랑스. 궁금증이 일어 책을 꺼내어 빌렸고, 일주일 정도를 걸려 1 회독하게 됐다.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참고로 얘기하자면 그 당시엔 온라인 네트워크라는 것이 발달하지 않은, 오리지널 아날로그 시대에 가까웠었다. 인터넷도 휴대폰도 대학에 가서야 활용하기 시작했으므로 고교시절 나를 이루는 세상은 고작 공중파 3사 뉴스, 지방 학교 교사의 수업이 전부였다. 다시 돌아와서, 작가는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책날개에 적혀 있었다. 역사 시간에 배운 군부정권 시절 탄압을 피해 정치적 망명을 했다는 사실도 적혀 있었다. 왜 프랑스로 가야만 했을까. 왜 프랑스로 가서 생활하며 세느강과 한강을 비교하는 제목의 책을 한국에 발행했을까. 지금은 군부정권도, 독재도 아니나 과거 어느 시점에 이 책은 국가가 통제하는 책 중 하나였겠구나. 조금은 흥분되기도 했던 것 같다. 울타리를 벗어나 멀리서 울타리 안을 바라보면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을터. 난 그것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막연히 ’한국은 잘못됐어!‘, ’공교육은 감옥이야!’라고 외치는 것만으론 해소되지 않는 논리적 갈증이 있었으므로 바깥의 시선이 절실했다. 어른들에겐 조용한 범생이로 보였지만 상당한 반항아, 교육학 용어로는 ‘라드’ 였던 기질 및 학교 선생들과 피를 보게 됐던 대립에 대해서는 추후 다룰 일이 있을 것이다.
책의 내용, 바깥의 시선은 요약하자면 ‘존중과 토론은 없고 혐오와 강압만 있는 한국사회‘ 였다. ‘나와 너는 다를 수 있다’라는 명제를 기반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서로를 존중하는 프랑스 문화와 대조적으로 한국은 ’ 나이 어린, 여자인, 권력 없는, 돈 없는 너는 틀렸다‘ 를 기반으로 한 문화임을 작가가 양 국가에서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일상의 사례를 통해 비교해 주었다. 적지 않은 사례들이었다. 작가가 망명을 한 외국인, 한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파리의 일상을 가장으로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존중받고 있었다. 당신이 나와 다를 수 있다를 인정받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당시의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한 주 뒤에 있을 독서토론의 주제 서적으로 선정하기에 이르러 A4용지 수 장에 달하는 빼곡한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때 알았어야 했지 않을까. 진실을 보는 눈을 갖게 되면 20년 뒤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라는 사실을 말이다. 닭장 속 닭은 닭장이 날 지켜주는 보금자리라고, 매일 주는 모이는 날 위해주는 따뜻한 손길이라고, 닭 모가지 잘리는 날까지 한 치의 의심도 없어야 고통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는 것을 알았어야 하지 않을까.
홍세화 작가가 프랑스에 살았던 80년대나, 45년이 지난 지금이나 한국은 일상의 혐오, 차별, 멸시를 극복하지 못했다. 한국 사회가 왜 잘못됐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어린 세대들에게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고 40년을 넘게 지나와버려서 지금 성인이 된 한국인들이 군부정권 시절의 논리로 오히려 회귀해버리고 있는 요즘을 보면 이 나라의 수능점수 일변도의 교육이 이들을 이렇게도 망쳐버렸구나 생각하게 된다. 나도 망했지만, 이 나라도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