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실패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중이다
학창시절 실패에 대한 이미지는 imf와 맞닿아 있다. 뉴스속에 나오던 서울역, 탑골공원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정장 입은 이들. 당시 공교육 현장에서는 이를 두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하기 좋은 먹이감 정도로 사용했다. ‘어린이 여러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렇게 되는거에요. 그러니깐 선생님 말씀을 잘 따라야해요. 알겠죠?’ 이제 와 생각해보자면 인과의 퀀텀점프, 개논리이지만 손바닥만한 아이들이 뭘 알았겠나. 당시 대중에 노출된 매체는 지상파 3사, 신문사 4개 정도가 전부. 숫자도 적지만 다루는 내용조차 다양성 따윈 없이 좌우, 흑백논리 일변도였고, 그러므로 한국에 거주하는 오천만 남짓은 거기서 얘기해준 것이 진짜라고 믿고 살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공교육이란 12년치, 아니 대학까지 16년치 가스라이팅은 논리적 거대 결함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작동해서 나 역시 한국 프레임에서 해석된 ’실패’를 두려워 하며 남들이 다 걷는 길을 걷게 됐다. 다들 걸어가는 길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성공에 가까이, 실패에 멀리 도달할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결국 반쯤 맞았다.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보면 내 승패에 관한 스코어는 긍정에 가깝다. 일단 부모의 목표인 세상 가장 안전한 직장인 공무원을 일찍이 달성했다. 스스로 내면의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자발적으로 걸어나와 바깥 세상으로 향했을때 역시 마음 속 품고있던 직군에 안착하는데 비교적 수월했다. 하지만 문제는 문턱을 넘는 일이 아니었다라는 것. 나는 늘 버티기가 안됐다. 어떤 연유로든 사회 조직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나를 반쯤 버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끝내 빋아들이지 못한 탓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받아들이는 성정으로 인해 나를 버려야 유지할 수 있는 상황들에서 내면의 갈등은 잦아들 줄 몰랐다. 종종 생각한다. 요즘식 표현으로 ‘흐린눈’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외부에 대해서, 아니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대해서. 모른척, 아닌척, 흘러가는 시간을 관조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깨진 유리잔은 다시 붙지 않는다. 흘러간 시간 역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실패를 했냐 묻는다면 ‘아니오’ 이다. 사회의 눈을 통해 볼 땐 톱니바퀴 33번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탑골공원에서 출근한 척 신문을 뒤적이며 하루를 보내지 않는다. 중간중간 덜그럭 덜그럭 아구가 안맞아서 기계의 동작을 지연시킬때도 있지만 대체로 ‘양호’한 제품이다. 아웃 오브 스탠다드 까지는 아니어서 썩 맘에 들진 않지만 대충 끼워 쓸만한 도구인 것. 확신이 드는 것은 실패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통 기계에 끼워 쓸 정도의 정합도를 가지는 부품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맞지 않았던 부분이 마모되어 어느 순간 ‘맞는‘ 부품이 된다. 소위 ’성공‘일 것이다. 과장이 되고 부서장이 되고 연봉이 1억을 찍고 수도권 학군좋은 어딘가에 집을 사고 하는 등, 학교가, 언론이 주입한 성공이란 명제에 가까워진다. 일주일 중 5일 이상의 시간을 오롯이 일터에 바치고 집에서는 간신히 야식, 잠만 떼우는. 주말 하루정도 간신히 외곽 호텔에서, 봄가을이면 서울 어느 공원의 뮤직페스티벌에 가며, 삼겹살집에 모여 소주를 기울이며 ’좋다!‘, ’이정도면 성공한 삶이지!’, ‘인생 뭐 있어?!’, ‘내 연봉이 얼만데!’ 자위한다. 행복한 자위. 닳고 마모되어, 시스템에 맞는 부품이 되어 ‘성공’한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
난 성공하고 싶지 않다. 그들에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 시스템에 맞추고 싶지 않다. 닳고 마모되고 싶지 않다. 내 뾰족한 형태를 잃고싶지 않다. 서른에도 그랬고 마흔에 가까워도 여전히 그렇다. 싫은건 싫은것. 사회적으로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며 ‘실패하지 않는’ 삶을 사는건 이제 충분하다 느낀다. 기꺼이 나의 선택으로 실패하고 싶다. 그래서 난 실패했다. 실패해나가고 있다. 실패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