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격 외 03

범생이 시스템

by Hache

학생 때 내 모습을 겪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한 단어로 나를 묘사한다. 범생이. 글쎄. 이 말은 반만 맞는 말이란 걸 또 어떤 사람들은 알지도 모른다. 마음속 깊이 반항을, 탈출을 꿈꾸며 그 시간들을 그저 탈출에 조금 더 유리한 위치로 만들려 할 수 있는 한도에서 애를 쓴 것뿐이니깐. 시간이 조금 흘러서는 사람들이 나를 다른 단어로 나를 묘사했다. 변했다. 나의 언어로는 원래의 나를 찾아가는 중이다, 쯤 되겠지.


답이 정해진 문제를 받아 든다. 문제의 신뢰도를 따지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다. 더 많은 정(해진) 답을 맞히는 사람이 사회 시스템의 우위를 점한다. 답을 덜 맞힌 사람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함을 탓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이 만들어낸 규칙, 시스템. 2025년은 30년간 이런 규칙에 길들여진 사회 속 내가 마주친 시험 결과이다. 100점 맞은 사람은 100점만큼 행복해졌나? 80점은 80점만큼 행복해졌나? 20점만큼 남을 부러워하도록 됐나? 50점은 불행해졌나? 10점은 자살했나? 0점은 사회 전복을 꿈꾸나? 아마 대충 맞을 것이다. 나는 이를 범생이 시스템이라 명명한다.


내가 성인으로, 직업인으로 겪은 사회는 총 2종류이다. 점수로 사람을 길들이는 시스템을 그대로 후대에 양산해 내는 학교, 그리고 점수로 길들여진 채 성장한 사람들이 모인 회사. 학교와 회사. 이 두 곳을 각각 5년, 7년간 경험하며 점수사회가 얼마나 가치편향적 인간을 만들어 내는지, 학교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더 높은 점수만을 위해 무비판적으로 애쓰게 되는지, 서로를 여전히도 점수로 착취하게 되는지 볼 수 있었다. 교육계는 결과를 보지 않고 이른 성공파티를 벌인다. 졸업시키면, 스코어에 맞는 위치의 대학에 보내는 것으로 성공여부를 가늠한다. 5년 후, 10년 후 모여서 벌이는 잔인한 촌극은 관심 없다. 아니, 애초에 모른다. 학교 밖 사회를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집단이기 때문에.


범생이들은 평생 시험을, 평가를, 점수를 기반한 시스템과 프레임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살아가고 강요한다. 나 역시 적당한 스코어로 적당히 이 시스템에 편승해 돈을 벌고 먹고 살아가고 있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면, 나를 갉아먹는 이 시스템을 그냥 인정해 버리면, 적당히 맞춰진 부픔이 되도록 손가락 하나를 부러 뜨러 버리면, 뇌를 없애 버리면, 마음을 불태워버리면 시간은 더 이어질 것이다. 근데, 그게 안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마찬가지. 나는 10점이었나? 아니다. 아직 자살하지 않았다. 그럼 0점이었나? 아니다. 이 사회가 고쳐쓸 수 없을 만큼 망가졌다 생각하지만 전복을 시도하진 않는다. 난 90점 언저리의 인간이 맞나? 아니다. 난 마이너스 점수가 되고 싶다. 학교가 벌이는 파티는, 회사가 벌이는 파티는 나와는 무관하다. 내가 되고 싶은 건 나. 내가 살아가고 싶은 시간은 나의 시간. 범생이 시스템의 잣대로 나의 시간을 보내고 평가받도록 두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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