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섬의 존재가 있던지, 섬을 찾을때까지 목적없는 항해를 할 튼튼한 뗏목과 충분한 식량을 갖추고 있던지, 그러면 이 섬을 떠날 수 있다."
제주도는 현실이 고달플 때마다 찾게 되는 섬이다. 많은 곳들을 다녀 봤지만 잠시라도 내 몸과 마음, 정신을 쉬게 해줄 수 있는 적절한 장소로 제주만한 곳이 없다. 해외도 물론 좋지만 언어, 금전, 관광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날 쉬지 못하게 한다.
아침엔 알람을 맞춰놓지 않고 자연스레 눈이 떠질때 느즈막이 일어난다. 물론 도시의 관성으로인해 늘 여덟시 즈음에는 눈이 떠지지만 그러면 그런대로 한시간즈음 글을 읽다가 눈과 몸이 졸린 상태가 되면 다시 침대로 향한다. 적막한 실내와 적당한 온습도, 푹신 깔깔한 침구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안잤던것처럼 다시 잠이든다.
절반 정도의 암막 커튼 덕분에 정오가 조금 지나서 눈을 뜨면 무척 상쾌한 기분이다. 잠시 하루가 너무 무의미하게,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급한 마음이 슬쩍 올라오면 의식적으로 살포시 즈려밟아주고 느긋하게 되는대로 하루를 보내겠다 다짐하며 욕실로 들어가 차분히 온수에 잠을 씻어내리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유의미한, 가치있는 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도시의 생활과는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는 제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제주라는 섬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라고 할수있다. 나에게 휴식과 느긋함을 허락해주는 곳으로 스스로 정의내린 이 섬의 존재가 환자에게 주어지는 산소호흡기 같이 나의 몸을 다시 숨쉬게 만들어준다.
현재 나의 직장은 나에게 이런 긍정적인 섬의 느낌을 전혀 주지 못한다. 이미 스스로에게 버려진 섬, 혹은 새로운 섬을 찾지 못해 어쩔수없이 머물고 있는 곳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늘 탈출을 꿈꾼다. 언제, 얼마나 많은 식량을 비축해서 얼마나 긴 항해를 해야하는걸까? 항해를 나서기 전 새로운 섬을 발견할 순 없을까? 아무리 지도를 들여다봐도, 망원경으로 먼 바다를 훑어봐도, 내가 발디딜 또다른 섬의 존재는 쉬이 발견되지 않는다. 현재 유일한 위안은 언제일지 모를 출항을 꿈꾸며 뗏목의 밧줄을 더 튼튼하게 조이고 더 많은 식량을 비축하며 계속해서 다른 섬의 존재를 탐색하는 일뿐.
사실 아직 확신조차 없다. 항해를 나서도 될지, 실패의 두려움, 주위의 시선, 끝끝내 섬이 없으면 난 뭐가 되는거지? 식량이 다 떨어지면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직업에도 제주와 같은 섬이 있었으면 한다. 못찾은건지 없는건지 여전히 모르겠다. 확실한것은 그 섬에는 내가 허락하지 않는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게 할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