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

다시

by Hache

-아웃(out)-

미신을 잘 믿지는 않지만 '이런 게 삼재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2017년은 직장인으로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현재 직군에 몸 담고 있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싫어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곳에서는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옮겨온 곳에서 보란 듯이 희망의 싹은 물론, 그 뿌리 끝까지 활활(!) 불태워 버리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번 아웃(Burn out) 증후군'이라는 병을 현대의 젊은이들이 많이 겪는다는 사실을 네이버 뉴스 헤드라인을 통해서만 접하다가 이것이 내 일이 되어보니 정말 누구라도 나를 이 감옥 같은 평생직장에서 강제로 아웃시켜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나날들이었다.


-휴식-

그래도 시간은 흘러 또 새해가 되었고 사건들은 원래 없었던 일들처럼 시간 너머로 흘러갔다. 남겨진 것은 나의 찢긴 감정들 뿐, 여전히 소용돌이 속을 살던 2018년의 1월, 겨울, 다시 살기 위해서 뒤덮인 감정의 허물을 벗어던져야 했다. 따뜻한 남쪽의 두 도시, 제주와 오키나와로를 향했다. 제주는 이미 6~7회 다녀오며 올레길 걷기를 진행한 바 있어 낯선 장소도 아니고 전혀 설레는 느낌도 아닌, 오히려 집보다 마음의 여유와 안정을 주는 곳이었기에 희망과 생명을 불어넣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습관처럼 남은 올레길을 계획해서 걸었다. 혹독한 추위로 인해 충분히 많은 거리는 아니었지만 생각을 단순화시키고 평온한 감정의 상태를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끝낼 때가 됐다.'


감정이 식어버린, 이미 오래전 이별을 예견했지만 질긴 세월의 끈을 미련하게 놓지 못하고 있는 오래된 부부들처럼 수년을 모른 척 지내왔다. 대충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그 정도면 좋은 삶이라고 얘기했던 주변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결국 내 용기의 부족,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은 나였다. 한 걸음 뒤로 낭떠러지를 보고 나서야 잘못된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니 그래도 떨어지기 전이라 다행인 것일까?


-꿈-

이제라도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스물아홉이었던 젊은 날의 그때, 꿈꾸었던 삶으로의 문 앞에서 마지막 한걸음의 용기가 부족해 결국 제 발로 돌아와 버렸던, 그 길을 다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다. 내가 만든 규칙 아래 돌아가는 자그맣지만 완전한 나의 세상, 창조의 기쁨이란 것을 처음 알게 해 준 일이었다. 몰입의 즐거움이란 표현이 결코 허세나 객기 어린 말이 아니라 실제임을 알게 해 준 일이었다. 누가 알려주지도, 하라고 하지도 않았지만 마치 중력의 그것처럼 대학 2학년의 여름방학부터 5년간 나를 줄곧 붙들었던, 오래 살진 않았지만 어쨌건 평생 유일하게 하기 원한 일이었다. 개발일을 할 때에만 살아있음을 느꼈으니 이건 '운명'이라 믿었다.


배신한 것은 나였다. 운명이라 믿었고 그리 될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 여정을 떠났지만, 그리고 첫 목적지에 도달했지만 들어가지 않은 것은 결국 나였다. 운명을 배신했다. 세상이 두려웠기 때문이었겠지, '평생직장이 아니면, 대기업이 아니면 넌 평생 힘든 삶의 구덩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거야'라고 얘기했던 한국사회, 29년 세월이 온몸과 정신에 새겨놓은 불안이라는 이름의 각인과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1년 후, 난 국가의 '개'가 되었고 그렇게 4년의 세월이 흘렀다.


-거울-

오키나와의 겨울은 한국의 4월과 유사했다. 패딩이 필요 없었다. 가벼운 후드 점퍼 하나면 충분하게 느껴지는 온화한 1월, 마음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북쪽으로 향했다.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큰 아쿠아리움이며 오키나와 하면 '츄라우미'라는 명칭이 꼬리표 같이 따라오니 아니 가볼 수 없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고래가 있다고 했다. 수족관이 얼마나 크면 그리 큰 고래가 살 수 있을까? 조금은 궁금했던 것 같다.


처음엔 신기했다. 세상에 이렇게 큰 생명체가 있을 수 있나, 한참을 보았다. 거점 반시 간은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큰 어항 속, 바다 생명체들, 고래 먹이 쇼는 정해진 시간마다 진행됐다. 먹이를 먹을 때 세로로 서있는 듯 헤엄치는 고래가 무척 거대해 보였다.


그리고 문득 내 모습이 보였다. 어항이 좁아 보였다. 정해진 시간마다 먹이를 주니 고래는 저 안에만 살아도 행복할까? 누가 넣어두었을까? 고래의 의사를 물어봤을까? 바다와는 달리 예측된 상황에, 안전하고 굶지도 않으니 다른 고래들보다 나은 삶일까? 정말 궁금했다. 고래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너, 이대로도 행복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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