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하게 바라보기
요즘은 그나마 주례 없는 예식을 하나, 둘 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도 '나이 든 사람이 해주는 주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좋은 주례사도 많다. 하지만 내가 들어본 주례사들은 대개가 별로였으며 충격적인 대본도 상당했다. 어떤 것들이 그랬냐,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또는 순종)하며...",
결혼이 하녀 로봇 한대 들이는 일인가? 자의지를 가진 인격체에게 복종 혹은 순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 대상을 자신보다 낮은 존재, 혹은 소유물로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삐딱하게 풀어 말하면 '시집와서 남편 말 잘 듣는 개가 되어라.'이다.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미친 주례사가 아닐 수 없지 않은가? 또 다른 예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함께하며...",
이런 고정관념 때문에 불행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참기만 하며 살아온 이들(대부분은 여성)이 상당할 것이다. 결혼이 사랑의 목적지이자 유토피아가 되어야 한다는 한국사회가 부여하는 사회적 강박이 결혼 이후에 발생하는 각종 불행한 사건들(극단적으로는 폭언, 폭력, 강요된 직업의 포기로부터 자아정체성의 상실을 가져오는 자신과 맞지 않는 결혼생활에 이르기까지)의 피해자들(이 또한 대부분 여성)을 숨죽이며 꾸역꾸역 살게 하는 주홍글씨가 되어온 것은 아닐까? 황혼 이혼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면 이러한 생각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두 주례사 모두 대개는 여성의 잠정적 피해를 예견하며, 동시에 남성의 가해를 무마시키려는 암묵적 동의를 여성에게 구하고 있다.
보통 주례사에 포함된 내용들은 한국인이 내면화시켜온 (유교) 사상에 바탕을 둔 왜곡된 도덕성이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착하고 바른 여성은 어떤 상황에도 아내로서의 자리를 평생에 걸쳐 지키며(과거엔 이를 '조강지처'라는 단어로 불러 불행과 족쇄를 평생에 지고 온 여성에게 속 빈 지위를 부여하여 남성의 각종 가해를 무마시키는 사상 주입을 하였었다) 이 룰을 어긴 이, 즉 이혼한 여성은 소위 '마녀'가 되어 각종 사회적 불이익과 주변의 비난을 감내해야 한다. 마치 범죄를 저지른 것과 같은 취급이다. 예전에는 당연스럽게 그러했고 알파고가 나온 작금의 시대에도 이러한 풍토가 한국사회에는 남아있다.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괜히 학생들이 '헬조선'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다)
주례사는 다분히 여성에게 가학적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남성에게도 동등한 도덕률을 부여하는 것이 일반화됐으므로 남성에게도 역시 가학적이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게 왜곡된 사회규범을 따르게 유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악하다. 그러므로 꼭 결혼식을 하겠다면 주례 없는 결혼식을 추천한다.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두 젊은이의 인생을 이래라저래라 이야기하게 두지 말고, 성인으로서 자신의 인생관을 만인 앞에 펼치고 '나'로서 살아감을 선언하는 자리로 주례를 대신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