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플라워

여전히 꼰대인 '그'들에게

by Hache

'9와 숫자들'의 최신 앨범 '수렴과 발산'에 수록된 곡들 중 '드라이플라워'라는 노래가 있다. 최근 이태원 산책을 나갔다가 들른 현대카드 바이닐 앤 플라스틱에서 찾아 듣게 된 노래인데 왠지 이 노래, 가사 중 무척 깊숙이 뇌리에 박히는 부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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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날 지켜내고 싶어도
창틀에 말려두진 말아요
향기와 색을 잃을 바에는
다시 필 날을 꿈 꾸며 시들게요
"


가사를 들으며 자유를 박탈당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최근 들은 한 여성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뇌리에 스쳤다.

그녀는 미술을 전공하였고,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서울에서 일하며 살고 있었다. 작년 그녀는 결혼하게 되었는데 동시에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이름도 기억이 잘 안나는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럼 여기서 그녀에게 Q&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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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은? 그만두래.
왜? 지방에서,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 이래.
그럼 일면식도 없는 남에 동네에서 뭐하면서 살래? 아침밥을 비롯한 집안일을 해주라고 했고, 내가 일 안 해도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준대.
돈 무지 많이 버는 직장이야? 아니, 그냥 평범해.
그럼 어떻게 하고 싶은 것 다 하게 해줘? 내가 하고 싶은 게 그냥 집에서 그림 그리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나 봐.
애도 낳을 거래? 응 그러고 싶대.
넌? 모르겠어.
요즘은 어때? 우울하고 답답해.
"


서울에서 본연의 향기를 내는 꽃을 피우려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젊은 청춘을 고스란히 꺾어서 생전 처음 가본 동네의 자그마한 집안에 꺾어다 놓은 격이다. 남자의 말은 아마 이런 것이었으리라.

"
넌 여기서도 꽃피울 수 있어. 내 말만 잘 들으면 네가 힘쓰지 않아도 내가 매일 물을 줄 테니깐. 그러니깐 넌 여기 내가 정해준 꽃병 안에만 가만히 있어. 그럼 넌 행복해질 거야.
"


이미 꺾인 꽃에 물을 준들 며칠이나 더 살 수 있을까, 시들해질 때쯤 잘 말려서, '9와 숫자들'의 노래처럼 향기와 색을 잃게 하고 평생 집에 두면 과연 꽃은 행복할까?


누구나 자기가 내는 색과 향기가 있다. 지속해서 그 색, 향기를 유지하려면 살아있어야 한다. 육체적 생존만을 위해 삼시 세 끼의 식사로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살아있음의 본질적 의미는 아닐 것이다. 진짜 살아있기 위해서는 자기 본연의 가치를 지키며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가정을 지키는 일로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과거에는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사회일을 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이 대다수다. 그러므로 그녀들의(남성의 경우에도 물론) 색과 향은 원래 속해있던,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비로소 발현되는 것이다.

부디, 복종하는 하녀 기계 한대 사서 자신의 터전으로 가져가 자신만의 삶을 윤택하게 하려는 남성 중심적 결혼이 당연하다, 혹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라는 착각에서 꼭 벗어나길, 그리고 결혼 이후에도 여전히 나는 나인채, 너는 너인 채로 살아가게 된다는 아주 심플한 진실을 직시하고 서로의 독자적 삶을 존중하길, 그래서 각자가 피울 수 있는 꽃으로 아름다운 색과 향기를 세상에 남기며 살아가길 바란다.


결혼 이후에도 삶은, 행복은 언제나 셀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