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by Hache

오랫동안 가보지 못했다. 안 갔다.

의도적으로 피한 것이다. 그곳에만 가면 소외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대는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장소이다.


스무 해가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 사이 그도 세상을 지나갔다.

어머니의 아버지도 쉰 가까운 나이었을 때가 있었을 테지. 아주 어릴 적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 떠올려보니 거울 속 내가 조금 더 늙으면 그쯤 되어 보일 것만 같다.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코로나 직후쯤이었을 것이다. 손님은 주로 가족들, 교회사람들 정도였다. 망설였지만 기차에서 내려 곧장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스무 해 넘어 만난 사촌동생은 훌쩍 자라 아내와 함께 밝게 인사했다. 역시 스무 해 넘어 만난 사촌형은 좀 수척해지고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늘 즐겁던 이모부는 테라스에 나와 담배만 뻑뻑 태워댔다. 권태로움만 가득 찬 얼굴이었다. 자주 좀 보자고 했고 그냥 웃어 보였다. 막내이모는 굳은 표정으로 잘도 웃음 지었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빈소 옆 작은 방에 누워만 계셨다. 만나는 얼굴들마다 오랜만이어서 그랬는지 철부지처럼 웃음만 실실 새어 나왔다. 미친놈처럼 말이다.


식사를 했다. 몇몇 친척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와도 일상의 얘기를 나눴다.

금세 해가 저물었고, 기차를 핑계로 곧장 장례식장을 떠났다. 날이 맑아 밤하늘에 별이 보일 것 같았다. 좌석 등받이를 한껏 눕히고 깊숙이 몸을 뉘었다. 편안했다. 마음도 편안해졌다. 스무 해를 도망치고 또다시 도망쳤다. 더 멀리, 더 멀리.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의 안락한 나의 도시로. 누구도 찾지 못하게 깊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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