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히어로
설 명절에 양가 부모님 댁에 다니면서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인 중증외상 센터를 보게 되었다. TV 시리즈물 전체 1위 작품이라 손이 갔는데 금세 빠져들 만큼 몰입도가 큰 작품이었다. 찾아보니 웹 소설과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었다. 주지훈이라는 걸쭉한 배우의 캐스팅과 탄탄한 스토리가 더해져 총 8회의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멍하니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리즈를 시청하면서 군 시절 아덴만 여명작전이 떠올랐고, 주지훈이 연기한 백강혁이라는 가상인물과 이국종이라는 현실 인물이 계속 오버랩되었다. 어쩌면 난 시리즈를 보면서 14년 전 긴박했던 그 순간이 떠올라 더욱 긴장감을 느낀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중증외상 센터라는 시리즈물에 왜 이토록 열광을 할까?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 탄탄한 스토리는 기본이다. 다른 매력 포인트가 있는 것이다. 난 지금 우리 시대의 백강혁이라는 인물이 꼭 필요한 히어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의대 정원 문제부터 의료사고를 종종 접하는 요즘,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백강혁이라는 캐릭터는 천재적인 실력을 갖추고 생명을 누구보다 소중히 다룬다. 이런 점에서 우린 가상의 인물이지만 통쾌함을 느끼며 그 인물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현실의 어두운 이면이 떠오르며 아쉬운 마음이 한편에 자리 잡았다. 바로 이국종이라는 의사의 삶이었다. 이국종 교수의 중증외상센터장으로서의 삶은 누구보다 존경받아야 함은 당연했다. 언론 매체에서도 이따금씩 인터뷰를 통해 그의 활약상을 보도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가 사라졌을 때의 히어로는 고통스럽고 외로운 게 현실이던가. 그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병원 내에서는 적자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었고, 주변 시민들에겐 그의 영웅 됨보단 당장의 헬기 소음이 더 크게 다가와 민원을 줄기차게 받아내야만 했다.
가상의 현실에선 이토록 열광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실제 우리 삶에 함께 살고 있으면 감사함보다는 불편함에 불평을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이국종 교수와 같이 훌륭한 히어로도 지금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군 병원장으로 근무하고 계시니 말이다.
볼거리가 많아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중증외상 센터라는 작품은 나에게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고, 우리 사회의 히어로가 사라져 가는 이유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었다. 우리 사회의 히어로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이유도 아마 모난 돌이 정 맞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이번 중증외상 센터를 보는 내내 씁쓸한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과연 언제쯤이면 모난 정들이 사회 곳곳에서 우리의 히어로로 활약하고,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을까?
잊지 마세요. 오늘도 당신은 향기로울 거예요.
Go together